요즘조선일보는재미있는르뽀형식의기사를많이올린다.이번것은마침“신중년에일을許하라-취업난심각한신중년”이라는제하의기사가연재되고있다.소제를잠깐살펴보면…..
재취업나선60세와동행해보니-외국계회사임원까지했는데
일자리알선기관11곳가보니고령자엔미화·경비원자리만
기업,신중년채용왜기피하나-"직원들이불편해할것같아"
기업70%는고령자탈락시켜…연공서열깨야일자리열려……..
나는그기사를읽은뒤아래에100자평을달았다.
“정말직장을구하고자하는가?그렇다면얼마전조선일보에연재되었던"서울보다행복한지방强小도시들"을다시한번찬찬히음미해보시라!귀촌3년차다.산골은넓고할일은많다.어째서서울및대처에서만직장을구하려드는가?답답들하다.”라는100자평을달자수식간그에대한댓글이여러개올라온다.그중몇개를골라보면“나는농대를나왔다.그러나농사는힘만들고지을게못된다.”,“농사가쉬운줄아나?토,일요일도쉴수없다.그리고,아무런연고도없는데가는게쉽나~”,“귀농이말처럼쉬운것인가?”등이다.
댓글을읽으며옆에있으면귀싸대기를한대올려붙이고싶은심정이었다.뿐만아니다.‘외국계회사임원까지했는데?고령자엔미화.경비원자리만?’이라는기사의소제다.이게바로망국병의진실이고실체다.농대를나왔다는자신의전공도써먹지않고농사자체를폄하는놈,농사를지으면토.일요일을쉴수없다는놈,외국계회사임원까지?미화원경비원밖에?그냥제목만읽어도화가치미는망국병의현상에나는분노하고있는것이다.나는이사람들이모두쓸데,써먹을데없는대학교를나왔기때문이고군대를안다녀와서예비군복을안입어봤기때문이라고이런현상이일어난다고본다.각설하고…
우여곡절끝에무역부로배치된이후새벽잠을덜자고부단한노력을하며영어단어를외우고어찌어찌독학으로떠듬거리며보따리장사를할때쯤역시대학을졸업하지않았다는이유로천대를받다가더이상은이렇게살수는없다며독립을했고,많지않은돈이지만푼푼이모아저축해서사업자금으로했지만반년을못버티고쫄랑망해백수신세가되었고,다시직장(당시는그래도일자리가많았다)생활을했지만만족할수가없어부모님을졸라집을담보로대출을받아인천에조그만공장을했던것이며…….일일이다상세히기록할수없을만큼의부침이심한생활을했던것이다.
여기서내가강조하고자하는것은어려움이정말많이있었지만좌절하거나포기하지않았다는것이다.좀황당한얘기로들리겠지만마음의‘예비군복’을입고있었기에그렇게할수있었던것이다.그런가운데1990년에크게부도도맞고부도를내고결국부정수표단속법으로기소중지가되며경찰에쫓기는신세로전락했다.집도절도모두잃은채3남매중둘째딸은외가로아들놈은친가로큰딸아이는친구네로뿔뿔이흩어지고마누라와나는대전모처의세차장으로…그렇게3년을보냈다.물론그런과정속에서자수를하고그에상응하는응분의대가도치르고….
그러한어려움을겪으며왜죽고싶지않았겠는가?살아있다는게너무힘들었다.그러나또웃기는얘기지만내가버틸수있었던것은대학을안나왔기때문에무엇이든지할수있었던것이다.체면차릴계제가아니었다.그리고무엇보다가족에대한책임감이었다.나하나죽음으로나는해방될수있었을것이다.그러나내가죽고나면나를믿고그때까지따라준마누라와아무것도모르는어린것들은무슨죄란말인가?그런가족을생각하면무엇인들못하겠는가.무식했기때문에용감했고그래서투지를불태웠던것이다.남들이할수없는험한곳도다녀왔으니두려울것이없었다.그래서죽고싶은대신더살아야겠다는각오를다졌던것이다.이런무식하지만용감한정신은후일중국진출후그곳에외로이상주하면서도버팀목이되주었다.남들은‘싸스’가창궐한다며귀국을서둘렀으나버텼고,값싸고양질의제품을구하려고다른이들이꺼려하는교통이불편한오지를혼자찾아다니는등각고의노력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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