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가참약했다.어릴적길을지나다죽은쥐가있거나뱀또는동물의사체를보면몇끼니는몸살을앓다시피했다.그동물의사체가떠올라제대로먹지를못했다.그런버릇은장년이되도록버려지지않았다.
가가까운친인척의죽음(부고)을접하고문상을했던것은내나이30대후반장인이돌아가셨기때문이다.그이전엔아버지어머니살아계셨으니두분의몫이거나가신분들에대한문상은늘마음뿐이었다.지금이야사람이죽으면모두장례식장으로모시지만,초상이났다고대문앞에켜놓은근조(謹弔)라고쓰인등만보아도기겁을하고돌아설정도였다.
장인이돌아가셨지만처남들이그때없었다.더구나당시로는하나밖에없는동서(손윗)라는작자도이혼한지가얼마되지않은터라처가식솔중사내라곤내가유일했다.그런데정말원치않은일이었지만가신양반의염을도울수밖에없는입장이되었다.
주검앞에(하다못해동물까지도…)경건했던건지아니면지독한겁쟁이든지…그런데그사태(장인어른을염했다는사실은당시의나로선큰사건이고사태였다)를겪은뒤그버릇이많이개선이되었다.당연히부음을받으면꼭조문을해야할곳은피하지를않았으니.
장인어른돌아가시고30년의성상이더흘렀으니얼마나많은다른죽음을맞이했을까?수백은아니더라도수십은족히되리라.아버지어머니삼촌고모들심지어멀쩡하던조카(생질)4촌8촌..더이상의친인척의죽음.그래서단련(?)이되어갔다.
엊그제영농을열심히하고있는데전화기가무엇에놀랐는지바르르떤다.문자판을보니사촌동생이다.옴마!일마가무슨일로???솔직히사촌이고또예의상명단에올려놓기는했지만,정말어쩌다업무상(보험)외에는전화주고받을일없는데면데면한사이다.그런친구가전화를했다.그리곤날씨,건강,농사는잘되느냐….이친구가돈을꿔달라고그러나?난돈거래절대않는데….후덥지근한날씨에비닐하우스안에서전화를받았으니속으로짜증이날때쯤“형!엄마가돌아가셨어..”란다.원!사람싱겁기는…그래!?화들짝놀라그길로부랴사랴모셔져있는장례식장으로달려갔다.
돌아가신작은아버지장교로625참전을했지만멀쩡히살아돌아오셔서현충원엔못가시고호국원에안치되셨는데,국가에서그아내되는이까지특전을부여하는모양이다.그러나법에의하여함께안치되려면매장이아니고화장을한연후그뼈가루로만되어야하는것이다.사실살아생전숙모님‘나죽으면절대화장은하지말라’고입버릇처럼그러는걸여러차례들은적이있었는데….내가따질일도아니고방법이없었나보다.
양제동쪽청계산아래서울추모공원,수년전내동네에만은혐오시설안된다고연일데모에반정부시위까지하던곳이다.우여곡절끝에화장터가들어섰다고뉴스를보았지만그동안갈기회가한번도없었다.숙모님덕분에어제그곳을난생처음가게된것이다.
여러군데의화장터를가보았지만타의추종을불허할만큼그위용(?)과정결함이마치무슨도서관이나관공서에민원을넣으러온듯한기분이든다.이런게어째서혐오시설이란말인가?옛날같으면상상도못할호감이가는시설이다.
작은어머니운구를자청하고세상의홍진을다태우고뼈가되어가는과정을현장중계까지해주는대기실에서분쇄기에뼈가루빻는과정까지보여주는것을하나도놓치지않고볼수있었던것은틀림없이내가늙었음이다.그리고마음속으로다짐을해본다.‘음~~~다음은우리세대차례군…’언제가될진모르지만.
덧붙임,
죽음에초연해진다는것은나이가들었음일것입니다.
나이가들어감에죽음이두렵지않은것을보면,,,,
또우리의장례문화가지나치게엄숙하고슬픈느낌을가졌습니다.
이거좀개선해야할과제인것같습니다.
한줌재로만들기직전유가족대표인사(대체적으로장남이나장녀?)를
하는과정에서우리사촌형짤막하게“어머니!아버지곁에편히가세요!”
라고하더군요.
작은어머니를작은아버지곁에안치하고돌아서내려올때
제가그랬습니다.“형!형은작은어머니께마지막불효를했어!”라고.
우리사촌형눈이동그래집디다.“그게어째서..??”
“아!저세상까지찾아가싸우시라는게말이돼?”
두분솔직히사이가별로였거든요.
우리작은아버지워낙가부장적권위주의자이셨거든요.
마누라를쥐잡듯하는….아무튼두양반싸우지나마셔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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