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성상(星霜)을넘어70가까이살아오며지난날을반추(反芻)해보면귀족적삶은아니지만그래도부끄러울것없고,후회도없습니다.
부모님께서먹여주고입혀주시던시절을졸업하고,삶에게도전장을내고험악한(?)사회에첫발을내딛고세파에흔들리며가져본직업이….(무순)자가용기사,을지로타일가게배달원,건설회사잡역,장판도배데모도(보조원?),광천수배달,탄소공장화부,큰처남식당써빙,작은처남가구점배달원,세차장미화원,내화벽돌공장잡역,가구회사영업사원등등,아마도더있지만기억이나지않습니다.
위에나열한직종은세번의창업과세번의파산(?)이있은뒤제가가진직업들입니다.이미얘기했지만더있을것같은데,지난날피눈물날정도로어렵고힘든시기를망각하려노력한탓에이정도만기억에남는것입니다.
위직업은물론이요체계적조직을갖춘,소위회사라는곳을네군데취업및이직해보았습니다.스리랑카에가보면그곳에서대통령다음으로귀하게신분을보호받는한분이계셨습니다.그곳에서한때가장크게사업을벌이신양반인데그분의회사가국내에있을때,첫직장을잡고약3년을근무하다퇴직을했었지요.퇴직사유가운영방침과정실인사가마음에안들기때문이었습니다.몇번인가시정요청을상신했지만받아들여지지않았고,결국신출내기사회초년병이고위층과대판맞짱붙은뒤사직서를집어던졌습니다.
얼마뒤부산에본사를둔K화학(페인트)계열사에한3년조용히근무를하였습니다.뭐그런대로맘에드는회사였지만그회사가수익성이없다며사주가직장폐쇄를하면서,절마는일좀할줄안다고본사(서울사무소)로발령을내며구제(?)를해주기에가봤더니,맨날바깥으로나돌던부서에있던놈을총무부서에발령을내며책상지킴이를하라니도저히생리에맞질않는것입니다.두달남짓다니다또사직서를썼습니다.
그리고그동안직장다니며푼푼이모은것을털어넣고창업을했지만반년만에홀라당까먹었답니다.그래도산입에거미줄칠수는없는법,위에나열한직종을몇군데전전하며세월을죽이는과정에서재일교포가운영하는某기업에근무를했지만이또한회사운영방침이내가생각하는것과는거리가멀었습니다.2년여를다니다대책도없이그만둡니다.역시위에나열한직종두어군데전전하다,다시심기일전한다며집팔고대출받고이웃과친지에빚얻어서자그만무역업을시작하지만3년을못버티고또폭삭망합니다.어쩌겠습니까.
그후직장을찾아다니다우연하게가회동한동네사시는某재벌회장님의벤츠운전기사를했는데차를너무험하게몬다고사직을할시간도없이,내발이아닌타의에의해한달도못채우고처음으로쫓겨났답니다.당시는할수있는일이라곤‘운전’밖에없었고,해서같은회사에있던선배기사님이그런내가가련했던지그분의소개로다른기업체사장님의차를몰았답니다.이인간이(나보단나이가3살아래였다)나만큼이나술을좋아하는작자라,밤이면밤마다요정이나술집으로다니며술집앞에보초를(대기시키는것)세우고무슨짓을하고나오는지새벽에나되어야집구석엘들어가는데,그기까지는참을만하지만세월이흐를수록인간대접을않는것입니다.하루는청계천고가에올라가며시비(?)가붙었는데성질이나서중간에차세우고키던지고내려오며(이인간운전못함.)1년도못채우고그만두었답니다.그덕분에약20일치급료포기했습니다.
얼마간룸펜생활을하며시간을죽이다,본가(本家),처가(妻家)할것없이쳐들어가(?)담판을지은뒤,본.처가집잡히고형제친지이웃에빚얻고인천에하꼬방같은공장을짓고또창업을합니다.정말잘나가더라고요.공장도더키우고,지금은Y대원주캠퍼스가됐지만그일대에분공장도세우고…세상이내꺼같았고이젠평안한생활을하는것같았습니다.6-7년잘나는것같았는데,무슨마가끼었는지대형부도를내고,법망을피해쫓겨다니고결국민.형사상책임을졌고,..
얼마후가구점하는작은처남의소개로某가구회사영업사원으로일을하며전국방방곡곡을안돌아다닌데가없이장똘뱅이(급료는둘째치고쏘다니는게그리도좋아만족한시절이었음.)생활을한것입니다.그러구러2년여를열심히근무하고있었습니다.그런데영업이사라는양반하루는날부르더니만,회사형편상영업부직원두사람을잘라야하는데당신생각에는누구를내보냈으면좋겠냐고난감한질문을하기에,꼭그렇게해야한다면내가먼저나갈테니한사람은회사에서알아서하라며또대책없는사직을했답니다.그해가1994년으로내나이40후반에들어섰고중국으로생활터전을옮긴해이기도하답니다.이정도면대충간략한제자서전이됐나요?이런얘기를하려는게아니었는데앞으로풀어야할썰의이해를돕기위해그만……
제가경멸하는군상이여러부류있지만,그중하나가노동착취하는기업주들입니다.이런놈들색출하고잡아다빨/갱이처형하듯저자거리에서공개처형해야합니다.이런놈들은자신의종업원나아가국민의피를빨아부를축적하고저희들가족만배불리는흡혈귀입니다.반면일은않고배때기두드려가며노동쟁의를일삼는귀족노조간부및노조원들입니다.이놈들도노동착취하는기업주와진배없는빨/갱이같은놈들입니다.이놈들역시대한민국에살명분조차주어서는안됩니다.모조리아오지탄광으로보내노동의참의미를깨우쳐주어야합니다.그리고마지막으로귀족노조간부에저희돈까지보태주며부화뇌동하는3류도못되는찌꺼기인생들입니다.이인간들영혼도없는인간들입니다.
길을가다보면가끔씩저희가다니던회사사옥앞에진을치고,노래방꾸며놓고삼현육각울리며질펀하게유희를즐기는작자들을봅니다.(좌빨정권10년당시조선일보사옥앞에서도그런부류들이있었다.)그런모습을발견하고저는조소를보냅니다.“어휴~!비~잉신들!가지가지하네….”하며.다니던직장으로부터쫓겨나거나퇴출당했다는것은본인들은인지못하겠지만,하다못해실낱같은이유라도있을겁니다.남아있는동료에비해무능하거나,상사나동료와융화가안되든지,인간성이더러워회사이미지를실추시키지는않았는지,어떤비리가없었는지….등.
제가첫직장에서사표를쓰고집으로돌아온그날저녁,사장님의동생이자전무되는양반을집으로보내사표를반려시키며승진과승급을보장하겠다며회유하더군요.기왕사직서썼는데,접시물에코를박고죽으면죽었지그리는못하겠다고돌려보냈습니다.두번째직장에서사표를내자영업부서로발령을낼테니사직하지말라며권유하더군요.그래도그만둔다니까,을지로통에있는직영대리점한곳을맡으라는겁니다.솔직히탐나는자리였지만패기만가지고할노릇은아니라고생각한후정중히거절했습니다.남의회사망칠일있습니까?
세번째재일교포회장님께서경영하던회사에서는,이양반은모국에기여하겠다는진정한기업가정신이있는양반이아니고회사경영은뒷전이고,이양반이일본오사카에서제일큰게이샤하우스를운영하며,그곳으로우리의아리따운미녀들을선별하여일본정객들의노리개감으로만드는것이본업이었고또어떤사이비목사와짜고우리의국보급문화재를일본으로몰래빼돌리는작태를벌이기에제가그사이비목사를경찰과문화재당국에고발을했습니다.기억이아물거리지만78년,79년도이든가?그사건으로‘조선일보’사회면을며칠대문짝만한기사로장식할정도였습니다.엄한썰이길었습니다.
저는결코능력있는사람은아닙니다.다만똑같이주어진조건이라면무슨일을하더라도끝장을보고야마는,최선을다한다는평가는받았습니다.그리고직장다니는것을늘연인사귀듯하는심정으로다녔습니다.연인끼리사랑이깊을때는서로간의과실과오도묻어두고용서가됩니다.그러나정나미떨어지기시작하면걷잡을수없이돌아서는관계가아니던가요?그럴때는타이밍이중요한것입니다.울고불고매달려도소용없다면차이기전에먼저차라는겁니다.그래야만심리적보상을얻을수있거든요.그리고마음으로비록헤어지지만‘잘살아라,행복하라!’며빌어준다면얼마나좋습니까.정말복받습니다.절대로복받습니다.
죽자사자좋아하다가어느날차였다고,지거시기가힘이없거나조루인줄은모르고,분풀이로옛연인을험담하며우유통이짝짝이네,궁둥이가오리궁둥이네험담을해본들,누가알아줍니까?동네망신살만뻗치는거죠.
회사를그만두며진심으로연인의행복을빌듯,그회사가잘되기를빌었습니다.가끔씩전직장에놀러가서옛동료들과술잔도나누고그랬습니다.오래전비즈니스로스리랑카를갔을때,일부러옛사장님을찾았습니다.그전국내에서어떤호텔에서동일한바이어를두고상담관계로두어차례조우를했지만,30년이훨씬넘는시간이흘렀음에도‘Mr.오!어서와!’하시며반겨주셨습니다.뭐저녁한끼였지만제가다니던회사가해외에서국빈대우를받아가며반석같이튼튼히경영되는것을보고오히려뿌듯한긍지를느꼈습니다.
저는직장을그만두었을때,다니던회사를상대로불만을토하거나저주를퍼붓지않았습니다.저자신이운영하던구멍가게가파산이닥쳐왔어도좌절하거나희망을잃지않았습니다.중이절이싫어떠난다고제가기거하고수양을닦던절을향해‘불이나콱나버려라,산사태나나버려라!’한다면우선마음은풀릴는지모르지만죄받습니다.부처님이가만계시겠어요?썰을정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