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관람記.(1부)
계산을해보니42년만의극장구경이다.내가굳이영화구경이라고하지않고‘극장’이라는표현을하는것은,순전히아내를의식한때문이다.아내와는부서만다를뿐같은직장에서1974년하고도춘삼월꽃피고새우는계절첫대면을하여아주공개적으로3년가까이연애를하며사내결혼을했었다.말인즉연애를처음시작할때아내의손을잡고영화몇편본게전부였으며,그것마저도첫해(?1974년)가지난뒤,많이부끄러운일이지만아내와함께극장을갔던적은전무하다.요즘‘하우스푸어’라는용어가자주등장하지만,이런식으로보면우리부부는’컬쳐(culture)푸어’가틀림없고,그래서그한을풀기위해某某한컬쳐(cultured)업에종사하다가은퇴후귀농을하여아가리컬쳐(agriculture)에힘을쏟고있는지모르겠다.어쨌든그후로아내와는극장근처에도가지않았다가모처럼(?)42년만에아내와극장엘갔으니‘극장구경’이라고하는것이다.

사실이마저도가고싶은생각이전혀없었다.그런데어느날‘듣보잡’젊은친구의영화평이신문과방송그리고포털에나돌기시작하나했는데급기야는국민밉상겸촉새‘진중권’까지가세하며이영화는갑자기유명세를타는것이었다.물론이전에도촉새가지독한오물이상의평을내린영화들이있었으나애국이나국익과는상관없는것들이라아예무시를해왔으나,이번’국제시장’만큼은먼저본분들의이런저런평이나의구미를자극하고드디어는42년만에아내의손을다시잡게한것이다.(이점국민밉상진중권에게고마움을전하고싶다.)그마저도우리부부만가기엔쑥스러워(42년만에가는것이니극장이눈을홀길것같아서…)윗마을의한권사부부와옆집최공내외를저녁까지거하게쏴주겠다며살살꼬드겨갔다.(참고,장소는충주시내의매가박스였는데,,,,요즘극장이그런식(멀티관?)으로바뀐거처음알았음.또한권사님내외와나는민증을까보이니6천원에해주었고,저녁식사비가무려20만원가까이나왔으니,누구말적으로독박쓴기분이지만그래도즐거운하루였다.)썰의삔트가많이벗어났다.

나자신을스스로평가할때성질이좀더럽고급한놈이지만반면정이많고눈물또한많다.이런걸감정의기복이심하다고하는가?어쨌든연속극을보다가도책을읽다가도슬픈장면에눈물을펑펑쏟아지는편이며노년이되자그심도가더깊어졌다.많은분들이지난날우리네의슬픈자화상이라는말씀에처음부터지레겁(?)을먹고휴대용티슈를지참했다.그리고과연…시종눈물샘을자극해왔지만특히세장면에는거의통곡에가깝게꺽꺽거려져정말쪽이팔렸다.그러나덕분에수일간메주쑤느라쌓인스트레스가확풀렸다.이쯤하고본론으로들어가보자.

덕수,주인공덕수씨는나보다일곱살많은형님과같은존재였다.그는내게아버지도삼촌도아닌형님뻘이었다.개인적으로내형님의삶을전부이해하지못하지만철이들며어렴풋느끼며함께살아왔으니주인공덕수씨는우리나이또래의형님이다.실제우리형님은625때초등3년이었고928수복당일날오폭으로인해다리가절단되었다.

그런형님때문에흘린첫번째눈물,막순이를등에업고‘메리디스빅토리호’뱃전으로기어오르던형님은그만막순이를잃어버리고만다.그막순이를찾겠다며아버지는하선을하기전,형님에게당부한다.“이아비가없는동안너는가장이고가장은가정을지켜야한다.따라서너의엄마와동생들을꼭지켜야한다.”며이별을고한다.물론그것이아버지와영원한이별이되고말지만….나는그순간어떤선입견부터가지고본이영화를거두절미하고,한가정의이야기고너와나어쩌면우리가함께공감했던모두의역사라고단정지었다.

장남,우리네가정사의장남이라는명사는두부류로나눌수있을것이다.부모를대신하여동생들을보살피고자신을희생하며뒷바라지하는영화속덕수形장남,가부장적제도(?)아래오로지부모님의과도한보살핌을받고동생들은어찌되든저만호의호식하며집안을(家傳之物)말아먹는파락호形장남.나는덕수형의아버지가당부하는그장면에서눈과코로민망할정도로주체할수없는액체가쏟아져내리면서도진중권이떠올랐다.과연그자는장남일까?아닐까?장남이라면어떤부류일까?이도저도아니라면덕수형님의동생일까?꼴에서울대학그것도그자가지원했을당시정원미달이거나커트라인도없을것같은미학과출신이라고형을사지(베트남전장)로몰아내는동생일까?그생각을하느라영화에집중이되지않았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