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마을지씨형님(82)이위암판정을받은것은재작년여름이니지금까지일년반을투병하고있는셈이다.비록연세는나보다10여세많지만그래도위암환자선배로서가끔조언을드리고있다.이따금이런저런쥬스나음료를사들고댁으로찾아가‘그저열심히잡수십시오.잡숫는게남는거고숟가락놓는날인생끝나는것이니입맛이나밥맛없다고하지마시고억지로라도잡수십시오.’라며반농반진으로말씀드리곤했다.
이제확실히늙어가는모양이다.시력자체는아직양쪽다1.0인데이놈들없이는글씨하나를제대로못읽으니.책상위에,각방에,소파뒤에,거실에…온통널려있다.아마도서울집에도서너개?
지난가을농번기에그몸으로벼를베고타작을하는모습에잔잔한감동까지받았을때는그래도살피듬이붙어있어환자같은기분도안들고저만하면한두해는너끈하시리라생각이들었다.그후추수도끝나고겨울이오며솔직히그양반의일은까맣게잊고있었다.그리고신년이며칠지난뒤그양반이거의식음을전폐하다시피한다는소문에아차싶어큰사위가하는노인및중환자용영양음료를두박스택배시켜들고갔던것인데,뵙는순간몇달사이에사람모습이아니다.체내의수분이다빠진듯피골이상접하여살짝무섭기까지했다.이런저런인사를닦고가져간음료가혹시입에맞으면연락을달라고하며,아주머니가조금잡숴보라며내놓은한과와음료는손끝도안대고도망치듯나왔던것이다.
지난가을추수때의모습도있지만,참대단한노인네다.평소자신의농사외에일당벌이가있다면몸안사리고동네의농사일은도맡아다니는것은물론이고서울의某병원에서항암치료를받고오자마자논밭으로나가일하는것은당연하고자신이죽더라도남아있는아주머니를위해두릅이며오갈피나무기타소득이될만한약재나무를집주위에빼곡히심고있단다.
슬하엔4형제를두었단다.좋지는않아도모두지방대학을나오고성혼을하여경인지역에산다고했다.언젠가는둘째와셋째를우리집까지데려와소개를시켜주시기에반갑게인사를나누었지만,이또한솔직히한동네사는것도아니고또언제볼지모르는아들들까지머릿속에입력해두기엔나의두뇌용량이모자란다.언제어디서무엇이되어만날지라도전혀몰라볼것이라는얘기다.
문제는자식들이다.뼈빠지게(사실이양반새우등처럼휘었다)일해대학까지교육시키고장가까지보냈으면저희늙은부모단둘이사는외딴집을자주찾거나농번기에농사일이라도좀도와주어야하건만,내가이곳에정착한게5년차가되어가도큰아들과막내아들은꼴도못봤고둘째와셋째도일부러소개시키러왔을때와무슨명절인가에한번다녀갔다는소문을들은게전부다.
엊저녁식탁에마주앉은아내가“지씨아저씨어제원주에있는요양원으로가셨다는데…”,“그래~애!?아이고!어쩌면그양반살아계신모습은이제못보겠구만.”,“그런데아들들은모른데…”,“그건또뭔소리?자식들몰래갔단말이야?”,“그게아니고오늘낼하는데한번다녀가라고자식들에게연락했지만자꾸미루기만하고안온데…”,“참~집구석,남의집구석이지만아새끼들어떻게그렇게키웠을까?”
그런데더충격적인얘기는아주머니는집에있고,환자를옆집에사는영술씨(새마을지도자)가입원을시켰다는것이다.평생을같이한서방님께서어차피마지막으로요양원으로간다면그곳에서함께생활하며병간은못할망정그곳까지배웅정도는할수있는것아닐까?싸가지없는자식놈들은자식놈들이고아내로서마지막역할은해주어야할텐데….
수술전엔약(감기약외에)이라곤입에댄적이없었는데수술의후유증인지매일먹어야하는고혈압약,기타보조제.오래살려고몸부림치는건지?덜아프게살려고하는건지?
‘뭐솔직히남의집안사정을다아는것도아니고또나름무슨곡절이있을수도있겠으나그래도남들에게드러나는겉모습이그리탐탁한것은아닌듯하다.’고생각하며“정말웃기는여편네네!자기남편이죽어도울지도않을여자같아!”하고아내의뒷모습을(식사를먼저끝낸아내는식기를설거지하고있었다)보며문득나자신을돌아보았다.‘그렇담저여자는나를위해울어줄까?’하는생각이들며내자식들은…???밥먹다말고남의집안얘기끝에나자신을돌아보는고민이시작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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