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몽룡 교수에 대한 변명.
BY ss8000 ON 11. 6, 2015
“비천한몸은청상과부이옵니다.뜻하는바가있어불제자가될까하여찾아왔사오니물리지마시고제자로삼아주시옵소서.”라며그녀는가장슬픈표정으로애원을하였다.송도의깊은심산유곡조그만암자에서속세와30년을절연하고살아온스님은난데없는천하절색의출현에당황했다.그리고자신의수양부족을탓하며‘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만열심히되뇌였다.
밤이깊어간다.이젠할말이없다.여인의몸가짐만이등불아래서고요히흔들릴뿐,노스님은자신과결사적인싸움을벌이고있었다.백옥같은살결을훔쳐보며스님은더이상참을수가없었다.요염한교태앞에그만그는무릎을꿇고말았다.30년면벽도하루아침에공염불이된것이다.열반의세계에귀의하려던노스님은오욕이끓는육체의야차로변해버리고말았다.
이상은‘황진이’가30년면벽수행을하던‘지족선사’를자신의육체로시험하던대목이다.그렇게목적을달성한진이는암자를빠져나왔다.지족선사는법복도염주도버리고황진이를찾아헤매었다.송도거리의반광인,반걸인이되었다.그의생사를아는이는아무도없었다.지족선사는송도근교깊은산속암자에서30년이라는긴세월을수도해온노스님이었다.송도사람들은그를생불이라고존경하였지만끝내육욕을이기지못하고파계를한것이다.
국정역사교과서대표집필진최몽룡서울대명예교수가성추행논란으로사퇴하면서국정교과서의첫단추부터어긋나게되었다.집필참여하는것에부담을느끼는상황에서최명예교수의퇴진전례는집필진구성을더욱어렵게만들고있다는것이다.
사태의전말을구성해보자.그날아침최교수의집에는소위제자교수라는놈들이찾아와스승에대한인신공격과비판을퍼부었다는것이다.얼마나…속이상하다못해거의터질지경이었을것이다.결국화를다스리는것은술밖에없다.한잔두잔심지어제자놈들도끼어들어권하는바람에많이취했을것이다.
제자들이돌아가고기자넷,취재를빌미삼아있었단다.넷모두여기자인지발표는없지만넷중두사람은가고두여기자만남았던모양이다.사달은이때부터났을것이다.
제자란놈들아침부터찾아와스승에게교과서집필에참여하지말라고공갈협박을하는과정에속이상한노교수한두잔한것이기자들의취재시까지이어졌고,그것도소주.양주.맥주.포도주(기사에이렇게난듯했다)를짬뽕했으니말술도끄떡않는항우장사나장비인들안취할까?
기자라는것들도웃긴다.취재가끝났으면집구석이나회사로돌아갈것이지대취한양반에게서무슨소리를듣겠다고그자리에있느냐이거다.상판데기가예쁘고말고가없다.대다수의남자들술취하면치마만둘렀다하면다여자로보인다.이런걸착시현상내지심신미약상태라고하는것이다.
그시간에노교수앞에서교태를부렸는지아닌지모르겠지만어쩌면노교수로하여y담이나오게유도를했을수도있다.이를테면노교수는미인계(두기자가과연미인인지는모르겠지만…어쨌든심심미약상태에서는치마만둘러도그렇게보인다.)에걸렸는지도의심해봐야한다.
그나마불행중다행인것은y담으로끝난것이다.지족선사처럼행동으로옮기지않은게다행이다.하다못해스킨십을않은것도안도해야할것이다.이대목에서는워낙추물들이라아무리취했어도참을수밖에없을수도있을것이고.
허균의‘성옹식소록’에서다음과같은대목이있다.황진이는“지족노선은삼십년이나면벽수도를했는데도나한테꺾이었다.화담(서경덕)선생만은나하고몇해를가까이지냈는데도끝내문란한지경에이르지는않았다.”라는….
황진의독백(?)중“화담(서경덕)선생만은나하고몇해를가까이지냈는데도끝내문란한지경에‘이르지는’않았다.”라는대목을곰곰이생각해보면쌍방이y담이나약간의스킨십은있었지않았을까?하고유추해볼만하다.이정도가지고포도청이나의금부에고소했다는대목은보이지않기때문이다.
즉우리최교수님께서는그래도파계한지족선사는아니고역사학계의큰스승님,화담선생급은아닐까?아니화담선생보다급이좀더높을수도있다.아예스킨십조차도없었기에…그렇게변명해드리고싶다.
뭐여?아니라고?
만약그게아니라면두여기자를남으라하고자작극을벌인것일지도모른다.
足같은좌빨들이하도生GR들을하니그런식으로물러나려고…..
그래도그랬다면이건노학자의학문적양심을저버린비겁한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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