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전 어느 날의 산골일기에서 행복에 겨운 나머지 스스로에게‘이렇게 행복해도 돼?’라는 자문의 썰을 푼 적이 있었다. 그 썰을 풀 때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기분(일시적이 아닌…)에 젖어 올린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완벽한(?) 행복이란 없는가 보다.
자랑이나 장담이 아니라 젊은 시절 꽤 큰 시련이 있었으나 결코 좌절하지 않고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극복해 나가며 3남매 잘 키워 시집장가 보냈고, 부모 자식 간 손 벌리지 않을 정도로 각기 앞가림 충분하게 하고, 은퇴 후엔 젊은 시절의 로망이었든 귀촌(전원생활)을 하여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만큼 여유롭고, 특히 물질적 풍요 보다는 가화만사성이라고 가끔은 가부장적 행태를 보이는,,, 그것 때문에 아내와 부부싸움을 1년에 한두 차례 부정기 적으로 하지만 그래도 남편으로 또 아비로서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한 것이다.
가끔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해 나름 분석해 보는 경우가 있다. 뭐… 다른 이들은 행복의 기준을 어디다 두는지 모르겠지만 내 나름 행복의 기준은 부부화합(적령기에 미혼인 사람들은 이런 기준이 애매모호하거나 가당치 않은 표현일 수 있겠지만, 곧 7순에 접어든 나 자신을 반추해 봤을 때를 말 함이다. 또 그런 즉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티격태격 살아가며 노년에 이런 행복감을 느껴 보라는 권장의 의미이기도 하다.)에 있다고 단정(斷定)할 수 있다.
나는 가끔 부부화합을 위해 아내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한다. 노골적인 표현을 하자면 처가에 정성을 다 하는 것이다. 우리 속언에‘마누라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보고 절 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래서가 아니라 누구이든 남편 되는 자가 처가를 무시하면 그 마누라가 시집식구에 잘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이 말을 뒤집어 표현하면 마누라가 시집식구에게 함부로 한다면 그 남편인들 처가에 정성을 다 할까?
고리타분한 얘기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명심보감 부행편(婦行編)에 이런 대목이 있다. ‘현부화육친 녕부파육친(賢婦和六親 侫婦破六親) 즉, 어진 부인은 육친을 화목하게 하고, 간악한 부인은 육친의 화목을 깨트린다.’라는 것이다.
아내는 세파에 휘둘리며 방어적 본능으로 거칠어(?)지긴 했지만 나와 결혼 할 때부터 다소곳한 요조숙녀 타입이었으며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육친의 화목에 모범을 보였었다. 결국 내가 처가에 정성을 다 하는 것은 아내가 오가(吳哥)네로 시집와서 현부(賢婦)의 역할을 다 했기로 그에 대한 상대적 보상(?)차원이기도 한 것이다.
처가는 5남매다. 처남 둘은 손위다.(작은처남은 나 보다 세 살 아래지만 처갓집 촌수에 따라 손위가 된 경우다)그 아래로 처형(또한 다섯 살 아래다)이 있고 막내로 처제가 있으니 아내는 4번의 순차다.
처갓집은 언제나 문제는 큰처남과 처형에 있다. 두 사람은 세상을 가벼이 보고 말썽을 부리는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그 두 사람이 내게 직접 어떤 말썽을 부리거나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니다. 문제점을 만들어 놓고 코가 댓 자 빠져 있으면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아내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물질(금전)을 전달해 주는 것이다. 두 사람은 늘 그랬다. 화급을 다툰다며 도움을 요청할 땐 가장 공손한 자세로 오지만, 여태 단 한 푼도 되돌려 받지 못한 금액이 억대가 훨씬 넘는다. 다행인 것은 두 사람 다 이즈음엔 생활이 안정되어 잘 살고 있고 어쩌다 만나면‘돈을 갚아야 하는데…’라지만 기십 년 쌓여온 것들이라 주면 고맙고 안 준다고 달라거나 채근을 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더 이상 나의 자발적 지원(?)없음에 안도한다.
그래도 좀 거시기한 것은, 3천여 평의 오미자 농사를(내가 만들어 준 근거다)5년째 지으며 오미자 진액을 단 1cc도 맛을 안 보이기에 농담 삼아‘아따! 정말 지독하구먼…’했던 얘기가 귀에 들어갔는지 작년 가을 2L 팻트 병 하나를 보내왔고 두 달 전 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복분자 5kg와 불루베리5kg을 장모님 즉, 어머니 뵈러 오는 김에 가져왔기에 하도 신기하여 아내에게‘오래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라며 자랑까지 했었다.
아이고! 아이고! ‘장모님’얘기를 한다는 게 엉뚱한 서썰(序說)이 길었다. 본격적인 장모님에 대한 얘기는 내일로 미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