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3부)

장모님의 자식욕 며느리 욕이 너무도 듣기 싫어 가끔은 장모님께‘장모님! 장모님 속으로 낳은 딸들도 셋씩이나 됩니다. 그 딸들이 장모님처럼 시집에서 천대 받고 욕을 먹으면 어쩌시려고..?’해보지만 내가 하는 얘기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요즘은 그 얘기를 꺼내려 들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두 번 다시 그런 얘기하시면 장모님 안 봅니다.’라고 벌컥 화를 내면 ‘알았어! 알았어! 내 다시는 안 하지….’하며 말끝을 흐리지만 사흘이 안 간다. 그냥 내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런 욕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나도 처음엔 장모님의 그 넋두리에 아들놈들과 며느리 년들이 제 어미 시어미를 제대로 못 모시거나 안 모시는 것으로 알고 두 처남에게 가끔 전화를 하여 호통을 치며(둘 다 손위처남이지만…내가 조폭이나 깡패가 아님에도 나를 무척 어려워한다.)어떨 땐 그 벌 무엇으로 받으려고 그러느냐며 질타를 하곤 했었다.

기왕 푸는 썰, 처갓집 사정을 좀 더 해야겠다. 처가의 원 고향은 천안이 아니라 경기도 용인이었다. 용인 하고도 가장 중심지인‘김양장리’초등학교 개울건너 시장 통에 수백 평의 땅이 있었고 그곳에서 식당을 했었는데(언젠가 아내의 동창회 때 동행하여 가 보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장모님이 몽땅 팔아서 천안으로 내려간 게 70년대 초 전국적으로 개발바람이 한창 불던 때였단다. 장모님은 그곳에서 소위 집장사를 시작했는데, 머리는 좋은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일자무식(무학)꾼인 당신이 그만 사기를 당하고 거의 알거지가 된 상태였는데 그나마 내 아내가 된 딸과 둘째처남(인쇄소 직공)의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던 것이다.(어제 얘기 속에….아내를 만났을 때 늘 궁핍해 보였던 이유가 월급을 받으면 용돈은커녕 몽땅 장모님의 수중으로..그랬던 것이다)

장인어른은 소아적에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그냥 매달려 있는 듯, 요즘의 지체부자유자셨다. 그 윗대 어르신이 외아들의 그런 모습에 장모님을 민며느리처럼 데려와 혼인을 시키고 오히려 며느리를 극진히(?)대해 주셨고, 당초 고추보다 맵다는 시집살이는커녕 일찌감치 곳간의 열쇠를 며느리에게 맡기고 모든 살림을 맡아 보게 했는데, 통 큰(?)며느리가 시부모 돌아가시자 전횡을 부리기 시작하며 그 요지의 넓은 땅을 팔고 당신의 친정(온양) 근처로 이주를 하며 그런 낭패를 본 것이다.

장인어른은 당신의 사정이 그래서 그랬던지 정말 과묵한 분이셨다. 어쩌다 처가엘 가도 ‘왔더냐?’그리고 처갓집을 나서며 안녕을 고하면‘그래! 오냐!’라는 말씀밖에 아니 하셨다. 장모님의 전횡에도 쓰다 달다 말씀 한마디 없으셨다는 것이다. 그랬던 장인께서 65세란 젊은 나이에 간경화(술 한 잔을 못 잡숫는 데도…)로 돌아가신 후 장모님의 전횡(?)은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지경까지 된 것이다.

처고모가 한 분 계셨다. 지금은 세종시가 된 곳에서 정육점을 했는데 수완이 좋았는지 장사가 잘 됐는지 요지의 땅을 사들이고 6층 빌딩 겸 상가를 짓고 세를 받아들이고…처 고모부라는 인사는 무위도식하는 백수였는데 마누라가 돈을 잘 버니 매일 낚시나 다니거나 기방출입을 하며 계집 낚기에 몰두 하더니 그예 어떤 계집에게서 사내아이 하나를 낳아가지고(사실 처고모는 석녀였다)들어 온 것을 거금을 아이 친모에게 주고 그 아이를 입적시켜 금이야 옥이야 길렀는데 그만 역시 간암(아무래도 가족력 같다)으로 55세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처고모가 세상을 뜨기 수년 전 친정오빠를 위해 방화동에 제법 너른 단독주택 한 채를 사주었는데 그 마저도 장인영감 돌아가시고 얼마 뒤 장모님과 처형이 해 치운 것이다.

‘다른 집은 자식이 속을 썩이는데 우리 집은 엄마가 자식 속 썩여요!!’라는 처 이질녀의 하소연이 있을 만큼 처형의 행각은 개판이다. 사업 한다던 첫 남편 성남의 사글세방에서 연탄가스로 잃고 남매를 버리고 재가를 했다. 말하자면 나와는 두 번째 동서되는 이 친구가 대전에서 자동차정비업을 했었고, 장인어른이 남긴 처가의 집을 담보로 일을 크게 벌이다 결국 그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일을 겪으며(이 역시 장인이나 아들들 몰래 장모님과 처형이 저지른 일이다) 오래 살지도 못하고 다시 이혼을 하여 집안에 평지풍파와 분란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되어 뻑 하면 자식들에게 손을 지금도 벌이고 있는데…. 차마 뒷얘기는….

 

처형 얘기는 다음에 또 나올지 모르지만 이쯤에서 그치고….장모님과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기막힌 일이 지금도 가슴에 잔상으로 남아 있다.

1 Comment

  1. 데레사

    2016년 9월 22일 at 9:02 오전

    세상에, 참 고약들 합니다.
    재산을 지키지는 못할 망정 그렇게 없애 버리다니요.
    그래놓고도 욕만 하고… 못 말리는 할매입니다.

    그러나 그걸 다 견디면서 장모님도 처혐도 보살피는
    우리 종씨님 같은분도 세상에 없을겁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