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10부)

사실 이번 산골일기의 주제를‘장모님’으로 잡은 것은 어제도 밝혔지만 이렇게라도 하소연하고 쌓이는 스트레스에 대한 심리적 보상을 받고 싶어서이다. 물론 아내는 장모님과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행태나 사건(?)에 대해 내게 너무 미안해하고 때론 내 입막음을 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선수를 치며 장모님께 큰소리 내는 걸 가끔 목격한다. 그럴 때마다‘큰소리 내지마라, 누가 들으면 제 어미 모신다고 데려와 구박하는 줄 알겠다.’며 내가 말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모님의 납득 안가는 행동을 직접 대해야 하는 요즈음이 너무 괴로운 것이다.

무슨 얘긴 고 하니, 아내와는 지난 8월부터 주말부부가 되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언제가 될지 알 수 없고 기약 없는 주말부부가 된 것이다. 토요일 저녁 늦게 도착한 후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서울 집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아내가 이곳에 있을 땐 장모님의 엉뚱한 언사나 행동들은 1차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나도 다 아는 사실을 어떤 것은 재방송처럼 아내를 통하여 듣기도 또 아내의 등 뒤에서 지켜봤었지만, 아내가 없는 요즈음은 그 어떤 것도 휠터링 되거나 순화되지 않은 채 원천적, 각색이 되지 않은 원본(?)그대로 내 5척 남짓한 단신에 파고들고 꽂혀 드는 것이다.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장모님의 병원 타령이다. 당신이라고 멀쩡하게 살아있고 잘 사는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사위 눈치 보는 더부살이가 어찌 마음이 편하실까. 장모님의 병은 스스로 자초한 마음의 병이고 화병이지 육체적 고통이 동반되는 그런 병이 아니다. 밤낮을 통하여 불현 듯 자식 놈들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고 가슴이 답답하신 모양이다. 그런 증상이 도지면 한밤중에도 고요한 산골의 문짝을 두드리면 자다가 깜짝놀라 깨어 나가보면‘내가 지금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게 죽겠네. 병원 좀 데려가줘!(항상 똑 같은 메뉴다)’ 뻔 한 병을 119구급차를 부를 수도 없고‘내일 아침에 꼭 모시고 갈 테니 일단 주무십시오.’그렇게 달래지만…그 스트레스를 어찌 필설로 표현할까. 그리고 준비를 마친 뒤 아침에 병원가자고 하면‘자고 일어났더니 괜찮네.’ 그 말씀에 그만 맥이 빠지고고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때로는 지나가는 나를 ‘사위! 이리 와봐!’반 명령조로 불러 툇마루에 앉히고 병원 얘기를 하시면“어머니! 어머니는 몸이 아프신 게 아닙니다. 마음이 아프신 게지요. 어머님 연세가 낼모레면 90이세요. 이제 뭘 더 바라십니까? 자식들이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하시고 마음을 다스리세요. 치밀어 오르는 울화는 자식 원망 같은 거 하지마시고 다 내려놓으면 편하십니다. 네?? 우리 그렇게 사십시다. 제가 잘 모실 게요‘라며 마음에도 없는 부처님 같은 말씀을 드려보지만 그때는 해탈하고 득도한 노승처럼’맞는 말이고말고…나는 사위 앞에서 죽을 껴…‘ 그러나 돌아서면 또 그 타령. 차라리 치매라면 처가 식솔들과 상의하여 노인병원이든 요양소든 모시겠는데…. 억장이 무너지고 환장할 지경이다.

 

병원도 그렇다. 아내가 있을 땐 아내 차로 내가 운전하며 모시고 가려면 한사코 내 차로 가잔다. 말씀인즉 아내 차는 흔들리고 멀미가 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병원이 골목 안에 있어 주차를 할 수 없다. 주차를 하게 되면 다른 차량이 소통이 안 된다. 따라서 병원 문 앞에 내려드리고 20-30m 전방의 농협마당에 주차를 시킨다. 한 번은 아내에게 그러시더란다.‘저게 남의 자식이라..ㅉㅉㅉ.. 혀를 차며 차를 병원 앞에 안 댄다.’며 투덜거리시기에 아내가‘여기 차대면 다른 차가 못 다니는데…’라며 소리를 냅다 질렀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우리 마누라 최고!’라며 농담한 적도 있었지만, 또한 병원에 도착하면 의사선생의 진료를 받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화병이라고 자가진단을 의사선생님 앞에서 시작하고 수십 년 전의 가정 사를 꺼내‘대가리에 똥 밖에 안든….’ 며느리며 자식욕을 일장연설처럼 하기 시작하면 시골병원 의사라 그런지 아니면 노인네들을 주로 다루는 의사라 그런지, 뒤에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도 많건만 웃기만 하고 그 하소연을 다 들어 주고 어떨 땐 30분 40분도 좋다. 그럴 땐 솔직히 의사선생님에게 죄스럽고 황송해서‘장모님 그만 하시죠!’라고 하면 그 의사선생은 오히려‘그냥 두세요. 이게 치룝니다’라고 하며 ‘울화병에 무슨 약이 필요하겠습니까?’란다.

 

이 모든 게 아내가 있을 땐 병원을 나와 차에서 기다리기라도 하지만 아내가 없으니 고스란히 내 몫이 된 것이다. 이런 날이 연속 되다 보니 의사선생이 뭐라는 게 아니라 중간에 간호사가 말리며 다른 병원으로 가 보시는 게 어떠냐고 퇴짜까지 맞는 것이다.(그래서 요즘은 이웃面 다른 병원으로 다니고 있고 그곳은 주차장이 있다)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진료를 받고 한 달치 약을 타오면 삼사일 뒤엔 약이 듣지 않는다며 또 병원에 가자며 재촉을 하시는 거다. 돈 들여 타 온 약을 삼사일 먹고 버리기를 얼마이든가. 약이 듣지 않으면 큰 병원(제천 시내나 충주 대학병원)에 가자면‘아니야! 내 병 내가 알아!’라며 큰 병원은 죽어도 못 간단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장모님은 아파서 아픈 게 아니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아내와 주말부부가 된 후이다. 사나흘 도리로 병원에 가자고 조르면 아니 갈 수 없어 모시고 가지만, 때가 어느 때인가? 추수를 앞 둔 농사철(특히 고추수확)에 병원에 모시고 다녀오면 뜨거워 일을 할 수가 없다. 어떨 땐 이렇게 잡썰을 게시판에 올려놓고 먼동이 터기를 기다려 밭으로 가지만 마음이 바쁘기만 하고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결국 그 날의 영농은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장모님은 자식이고 딸이고 사위고 그 누구에게도 배려가 없다. 평생을 당신 멋대로 사신 분이다. 그러는 사이 아주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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