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장모님(13부)

옛날 살아생전 우리 어머니가 그랬다. 나이 듦에 어디 노인정 얘기라도 꺼내면 거의 짜증을 내다시피 하며‘냄새나는 늙은이들과 어찌 함께…’라며 말을 잘라냈다. 장모님 이곳에 오시고 난 뒤 노인네(할매들) 몇 분이 그래도 전임 마을부녀회장 친정어머니가 왔다고 방문을 했던 모양이다. 그 분들이 다녀가고 난 후‘노인 냄새’ 난다고 몇 차례 투덜거리시는 걸 본 것은 차치하고, 본인 스스로 옆 집 x씨의 집을 가서 그의 어머니와 잠시 만나 대화를 한 후‘머리도 안 감고 지저분한 할망구’라며 역시 비하하는 말씀을 하신다. 두 양반의 공통점이 있다. 천성이 워낙 깔끔하여 쓸고 닦는 게 도가 지나쳐 주위 사람들이 불편할 정도다.

이제 하는 얘기지만 장모님 방엘 들어가면 정말 쿰쿰한 냄새가 몹시 난다. 쓸고 닦고를 그리 하셔도 주방과 거실이 함께 붙어있는 오늘날의 주거형태 때문인지 모르지만, 한 끼도 생선이나 고기 없인 식사를 못하는 양반이라 아무리 창문을 열어 놓고 조리를 해도 그 냄새들이 실내에 박히고 쩔어 붙어 역한 냄새로 변한 모양이다. 주위의 가재도구는 빛이 반짝거릴 정도로 윤이 나지만 냄새는 어쩔 수 없음에도 본인만 모르고 이웃 할머니들에게서 냄새가 난다든가 머리를 감지 않았다든가 하며 타박을 한다.

말인 즉 하루 종일 TV와 씨름 하시는 게 안타까워‘마을회관에라도 모셔다 드릴까요? 라고 여쭤보면 어디 양노원에라도 가자고 하는 양 펄쩍 뛰시며 본인만 지고지순 독야청청 홀로 왕따를 자초하고 계시는 것이다. 사실 마을회관도 그렇다. 친정 조카가 살고 있는 옥천으로 가셨을 때도 그곳 마을회관에서 10원 짜리 고스톱을 치시다가 할매 한 분을 패서 파출소에 가고 입건이 되고 얼마 간 돈을 들여 합의를 보고 했는데, 그 후 방화동 작은 아들집 근처에 사시며 또 그런 사건이 벌어져 아예 그곳 노인정에 출입금지령이 내려 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은 장모님과는 태생적이거나 생리적(?)이거나 화합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노인복지 시설인지도 모르겠다. 더하여 아내는 마을회관 얘기에 더욱 예민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웃 할머니들과 친교가 맺어지면 예의‘대가리에 똥밖에 안 든 자식들과 며느리 욕부터 시작해서 딸년들과 사위 욕도 보너스로 할 텐데…어디라고 그 길 데려다 주느냐’며 펄쩍 뛰기까지 한다.

이제까지는 썰(글)로 풀었으니 읽는 분들이 적당히 알아서 느끼고 이해하고 해석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장모님은 귀가 몹시 어둡다. 오래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이곳에 오실 때 보청기를 하나 해 드리자고 했지만 웬일인지 아내를 포함하여 처가식솔들 심지어 장모님 당신도 ‘돈만 들었지 웅웅 대는 잡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며’부정적인 견해라 보청기 얘기는 무산이 되었던 것인데, 그 보청기는 장모님을 위한 것 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웬만한 소리로 대화를 나누어선“뭐라고? 안 들려!”를 반복 하시는데 평소엔 그래도 주파수를 높이지 않고 서로의 뜻이 오가지만, 나 자신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때(장모님 때문에…)엔 자동적으로 주파수를 올려야 하고 그날따라 장모님의 엉뚱한“뭐라고? 안 들려!”예의 반문 메아리는 더욱 거칠게 들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환장하는 것은 처가식솔들과 전화를 주고받을 때는 소곤소곤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모습은 가끔 아래채 앞을 지날 때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와 아내와 대화를 할 때만 고함을 질러야 하니, 동네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오죽했으면 아내에게 큰소리로 대화 나누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지만 오히려 그 옐로우 카드는 나 자신에게 해당이 되는 것이다. 나의 고함에 가까운(본시 내 목소리 자체가 크다) 소리에 장모 모신다고 데려와 소리나 치고 학대 내지 박대나 한다고 소문이라도 날까 두려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번지고 말았다. 언젠가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곤‘자네 여기 좀 앉아 보게’그리고 툇마루에 앉은 나를‘자네 요즘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땍땍거리나?’나로선 할 말을 잃고 멍청히 과연 내가 소리를 지르고 땍땍 거렸는지를 머릿속으로 그리기만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순간을 아랫마을 양반이 예초기를 빌려 달라고 왔다가 그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을 한 것이다. 그가 예초기를 빌리러 왔기에 함께 장모님 앞을 지나가는 그 순간에….. 하필이면 입이 가벼운….. 정말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날이 추석을 며칠 앞 둔 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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