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산골일기를 쓰는 가운데 장모님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멋모르고 잠옷 차림으로 나갔다 얼어 죽는 줄 알았다. 노인네가 추위도(하긴 인삼을 한 달에 두어 재는 잡수신다.)안 타는지…그러나 단호하게 못 들어오게 하며 그랬다.“이젠 이곳에 올라오지도 마십시오! 진이 어미 오거든 오세요! 빨리 내려가세요!”그리고 문을 닫아걸었다. 또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나름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장모님은 정말 많이 변 하셨다. 혹자는 이런 부분을‘치매’의 전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는 속에서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앞에선‘아이고! 사위 미안해! 또는 나 때문에 고생 많지!?’라며 정말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었는데….이젠 아주 막나가자는 거 같다. 그러나 나는 이러시는 장모님께 앞으로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어떤 전조(前兆)를 느낀 게 있다.
추석날 처가식솔들과 그동안 나의 억울함을 만방에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식들의 장모님에 대한 성토로 그날의 모임을 성황리로 몰고 갔으나 결국은 어느 누구도 장모님을 모시겠다고 나오는 자식 없이 모두 제 발길을 돌리던 때다. 나와 아내가 옆에 있음에도 장모님은 단호한 어조로“그래!? 그렇다면 다른 머리를 좀 굴려 봐야지…”무심결의 독백인지 아니면 우리더러 들어 라고 하시는 얘긴지 약간의 홍조를 띠며 결기까지 보인다. 더 하여 그제 고함이 오갈 때 우리 장모님‘나는 내 방식대로 살 꺼여!’라는 발언에 나와 아내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아연하기도 했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장모님이 그런 현대식(?)표현을 하는지….
아무튼 그 결기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오늘날 벌어지는 사태가 장모님의 ‘다른 머리 굴리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그랬다. 반추해 보건대 장모님 원했던 게 안 된 게 없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안 된 일이 없었다. 어쩌면 조근 조근 했다가는 사위 놈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씀이다. 내 비록 장모님 보다 19살 연하지만 나름 산전수전에 세상의 온갖 풍상 다 겪으며 내일이면 70성상을 살아온 싸나이가 아니든가.
우리 면의 유일한 약국은 매월 말이면 바쁘다. 뿐만 아니라 내 차도 그날은 특별히 약간의 중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우황청심원(알약이 아닌 물약 한 병6천원) 한 병, 쌍화탕(우황청심원과 쌍화탕은 광동제약 것 아니면 안 됨. 난리 남) 세 병, 판피린 세 병, 이상 장모님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셔야 하는 약품들이다. 아! 또 하나 있다. 베지밀 세 통이다. 일종의 중독이다. 이것들은 반드시, 꼭, 틀림없이 매일 먹고 마셔야 한다. 생각만 해도 독한 의약품(?) 같은데….그럼에도 의사 양반들은 이상이 없단다. 또 끼니마다 생선이나 육류 없으면 식사를 못하신다. 인삼은 어쩌고….쌀은??? 참 먹는 거 가지고 치사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쌀만 해도 그렇다. 나는 정부미(지방미)에 잡곡을 섞는데 장모님은 경기도 某처의 최고급 쌀이라야 한다. 노인네가 먹으면 얼마나 먹느냐고 하겠지만…..
그런데 이것들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턱 없이 모자라는 금액이 장모님께 매월 들어오는 게 있다. 국가에서 노인들에게 지급해 주는 21만원인가 하는 금액. 가끔 우황청심원은 처제가 사서 보낸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하고 어떤 놈이든 큰 딸년이든 쌍화탕 한 병 제 어미에게 사주는 법이 없다. 기타 공과금 난방비 전기료 시청료 소소한 것들은 아내가 내 준다. 돈이 들고 경비가 지출 된다고 해서도 또 이런 걸 탓하자는 게 아니다. 당장 현금을 안 드리니 장모님은 이런 것을 의식 못한다.
나는(우리 집안은)기제나 차례 상에 꼭 배추전과 무전을 올린다. 조상님들이 그걸 워낙 좋아 하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고향의 풍습이고 전통이다. 추석 전전날 마트에서 제수를 마련하는데 배추가 보인다. 한 통 사려고 가격을 보니 7천 원이다. 깜짝 놀라 집었던 배추를 버리다 시피 던지고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문전옥답에서 자라는 아직도 푸른 잎밖에 없는 배추 몇 포기를 뽑아 제수로 삼았다. 물론 차례를 지내며‘죄송해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사죄를 드렸고 내년엔 결코 이런 일 없기를 바랐을 뿐이다.
추석이 지난 며칠 후 아래채 툇마루에 실한 배추 한 망(세 통)과 파, 양파 등 김치 거리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