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도 아닌데 며칠 간 너무도 가정적인 썰을 좀 풀었더니 카페 할배들이 완죤 주눅이 드셨나 봅니다. 솔직히 그거 다 말짱 헛것입니다. 썰은 그렇게 풀었지만 저로선 생존에 관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가끔 표현했습니다마는 제 식성이 좀 까다롭습니다. 생선과 육류를 즐기지 않으니 쉬운 것 같아도 마누라 표현을 빌리자면 그게 더 힘들답니다. 풀(야채)을 재료로 한 반찬 만들기엔 한계가 있다며 가끔 지청구를 합니다. 마누라는 저와 식성이 정 반대거든요. 물론 지금은 40년 넘게 살다보니 제 식성을 기본으로 하고 약간의 변동이 있긴 하지만, 사실 제 식성 때문에 아이들까지 젓갈과 생선을 안 먹고 특히 둘째 딸아이는 육류는 입에 대지도 않을 뿐 아니라 김포 시댁의 사부인께서 정성껏 만들어 주신 김장(젓갈 든…) 대신 제 엄마가 만든 것으로 대체해 먹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쌍둥이 중 언니 수아도 벌써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래도 제 나름 살 길을(섭생) 찾아 나서겠지요.
지금이야 나이가 들어 가끔 생선을 굽습니다마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마누라가 밥상이나 식탁에 생선 올리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마치 몰래 훔쳐 먹 듯 밥상 아래 두고 먹거나 식탁 저 끝에 두고 제 눈치를 봐가며 먹었습니다. 제가 우선 생선 굽는 냄새부터 싫어합니다. 생선을 구우려면 바깥에서(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구워야 합니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마누라 입장에선‘더러워 차라리 안 먹고 말지….’이게 습관화 되다보니 식습관마저 변하고 바뀐 거지요. 그래서 약간의 여유가 생긴 오늘날은 마누라를 위해 이곳엔 주방을 두 개 들여놓고 이따금 생선을 굽고 지지고 한답니다.
이런 표현도 가끔 했습니다마는 제가 중국에 15년 가까이 상주했지만 중국본토 음식을 잘못 먹습니다. 느끼하고 먹고 나면 속이 부대끼고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중국출장을 갈 때면 고추장(튜브)을 꼭 지참하고 갑니다. 욕먹을 얘기지만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에도 주로 쌀밥이나 죽을 그리고 그기에 고추장을 가미하고, 중국 친구들 가정집에 초대를 받아도 양해를 구하고 고추장을 발라서 먹습니다. 미안 하지요.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야 먹을 수 있고 그렇게라도 먹어야 생존을 하니까요.
사업을 한답시고 중국에 상주할 때 조선족교포 아줌마들을 고용해서 주방을 맡겨 봤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결국 제가 직접 끓여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국제전화비 많이 나갔습니다. 소위 레시피(?)를 몰라 전화기를 귀에 대고 마누라에게 물어가며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사투하며 생존해 왔습니다.
아들과 둘째 딸아이는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습니다. 두 살 터울의 둘째 딸부터 아들까지 6-7년을 기숙사에 보내지 않고 제가 직접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그 정도의 경력이면 음식점 주방까지는 못 가더라도 가족 정도는 충분히 챙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귀국 후 위암수술 받고 모든 일에서 손을 놨습니다. 마누라가 가장이 된 거지요. 그때 소위 밥하는 아줌마를 고용도 해 보고 백수건달인 여동생을 채용도 해 보고… 역시 제 입맛이 아니었습니다. 먹고 살려니 어쩌겠습니까.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누라도 아이들도 반응이 괜찮더군요.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專業主夫)가 된 겁니다. 그거 재밌더군요. 그때 마누라로부터 월급을150만원(용돈이라고 합시다)을 받고, 반찬값 조금씩 올려서 삥땅 뜯고 5-6년 모으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차를 살 수 있더군요. 이런 좋은 직업이 어딨습니까.
지금 제가 김치 담그고 직접 밥을 짓고 이런저런 반찬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위의 기막힌 사연이 있어서입니다. 결론은 죽지 않으려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 친 결과요 그 연장인 것입니다.
할배들요! 특히 삼식이 할배들요! 저의 삶이 처절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저처럼 치열하게 살아 보기는 하셨습니까? 당신들은 평생을 아내 분들에게 길들여 진 것입니다. 아내 분들이 해 주는 대로 단 한 번도 거부감 없이 순종하며 길들여져 왔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나머지 삶을 어찌 살아나가시렵니까? 우리 속언에 홀아비3년에 이가 서 말이요 과부 3년에 구슬이 서 말이라고 했습니다. 마누라들이 먼저 갈지 할배들이 먼저 갈지 모릅니다. 어떤 통계에 보니까 부부가 해로 하다가 둘 중 먼저가면 할매는 오히려 장수를 하는데 할배들은 3년 버티기가 힘든 답니다. 마누라들에게 평생 길들여져 껌 딱지처럼 붙어 살아왔으니 할 수 있는 게 뭐 있어야지요. 그것보다는 차려주는 밥상만 받았으니 귀찮아서 안 먹고 덜 먹으면 신체를 체력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또 살아 있어도 서 말씩이나 되는 이와 어떻게 사시렵니까?
이게 바로 3식이들의 비애인 것입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마누라들 해방시켜 주고 주방에서 직접 서툴면 서툰 대로 무엇이든 시작해 봅시다. 김치를 만들며 얘기 했지만, 아내를 위하는 일이 나를 위한 일입니다. 아내를 해방 시켜주는 게 나를 해방 시키는 것입니다.
남의 생존기에 입을 비죽거리거나 주눅 들어 하지 마시고 오늘부터라도 시작해 보십시오. 할배들 새 삶의 지평을 열어 보십시오. 하루하루가 즐거워 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