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군 미쳤어! 도대체가 말이야..!! 평생 보탬이 되는 일 한 번 않고…이젠 아주 xx육갑까지 하고 자빠졌군. 어휴! 속 터져 즈~응말!!!”감정의 기복이 심한 내 입에선 거미 x구멍에서 뽑아져 나오는 거미줄처럼 육두문자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차마 이런 게시판에 발설할 수 없을 고강도의 육두를 포함하여….)전혀 어떠한 예고나 귀띔도 없는 처형의 돌출행동에 나는 분노하며 그렇게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것으로 울분을 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은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는 아침이었다. 아마도 1950년 6월25일 선전포고 없던 동란이 발발하기 전의 고요함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폭풍전야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나는 그 날 새벽‘산골일기: 장모님(끝)’편을 몇 곳의 게시판에 올리고 모자라는 새벽잠을(이젠 거의 일상으로 굳어버린….썰을 풀고 꼭 다시 잠자리에 든다)채우고 오랜만에 평화롭고 느긋한 아침 햇살을 마주하기 전의 상황인 것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전날 오후 이곳에 내려온 아내가 모자라는 새벽잠을 보충하고 있는 나의 잠이라도 깨울 게 두렵다는 듯 그러나 역시 아내도 처형의 돌출행동에 어이없어 하며 최대한 감정을 삭이는 절제된 전화통화 그러나 격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큰 소리를 낸 것이 내 귀를 자극했고 그 바람에 잠을 깨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일요일 그날이 어떤 날인가? ‘산골일기: 장모님’편을 끝내는 날이기도 했지만 그날 처가식솔을 포함하여 2차 6자회담이 개최되기로 한 날이 아니던가. 장모님 사태(?)를 좋은 방향으로 매듭짓기 위해 다각적인 아이디어가 백출(百出)될 것을 기대한 것과 달리 회담이 열리기 전 초장부터 초를 치는 사태가 처형의 돌출행동으로 시작된 것이다.
거실 쪽의 소란에 잠이 깬 내가 나타난 것을 의식한 아내가 통화 볼륨을 약간 줄이기는 했지만 굳이 귀를 기우리지 않아도 내용은 속속들이 나의 귓속으로 빨려 들었으나 중간부터 듣자니 내용의 의미가 잘 연결 되지 않아 아내를 바라보며“누구야?”라며 조심스럽게 입모양을 그리자“언니!!”라며 송화구를 막으며 답을 한 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듯“진이 아빠 깼어! 하여튼 난 몰라! 알아서 해!” 최후통첩 같기도…. 아내가 약간은 강제에 의한 통화를 끝내자“왜 그래!? 처형이 또 뭔 사고를 쳤는데…??”은근히 불안한 조짐을 느낀 내 질문에 아내는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다.
처형, 이젠 산골일기에 배역 높은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여인. 산골일기를 써 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화제를 제공해 주는 여인. ‘산골일기: 장모님’편의 주인공이신 장모님 보다 더 주인공다운, 어쩌면‘산골일기: 장모님’편을 제공한 원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여인이 처형이다. 그 처형이 또 일을 저지를 모양이다.
아내의 자초지종 얘기는 이랬다. 6자회담을 기획하고 연출까지 했던 나의 통보를 다른 식솔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고라도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어나 오로지 원수 같은 그녀가 펑크를 내겠다는 통보였다. 하긴 제 오빠들이나 동생들 더불어 제부인 내 얼굴 보기가 쑥스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집안의 중대사를 논하는 급박한 회담에 그것도 당일 아침에 갑자기 배신 때리는 것은 언제나 예측불허의 돌출행동을 벌이는 그녀의 장기이자 전매특허인 관계로 그녀가 없으면 없는 대로 치를 예정이었으나 나의 분노는 아내의 그 다음 사연을 옮기는데 있었다.
고모, 처고모가 종로 사직동과 여의도에 살고 있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들었었지만 아내와 결혼생활 40여 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처고모 두 양반은 큰 부자로 살고 있다고도 했었다. 아무리 콩가루 집구석이라도 처고모 댁을 단 한 번도….??? 라고 의아해 하겠지만 사실은……
바위
2016년 11월 4일 at 11:25 오전
가족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십니다.
때론 가슴속 엉어리를 글로 풀다보면 개운해지기도 하지요.
지난 댓글에서 제천에서 뵙길 청했는데, 일정이 제천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있다기에 그날 뵙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글을 통해 자주 뵙겠습니다.
ss8000
2016년 11월 4일 at 12:02 오후
아하!
오랜만에 먼 발치에서나마 존안을 뵐까 했는데
좀 아쉽습니다. 그러나 또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해 보렵니다.
늘 강녕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