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녘에 악몽을 꾸었다. 스토리가 뚜렷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깨어보니 암튼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과 꿈속에서 대화를 했고 그 대화 속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화들짝 깨었다. 온 몸은 식은땀으로 젖었고 차 던진 이불 때문인지 한기가 치밀었다. 어둠속을 더듬거려 수건을 찾아 젖은 몸을 닦아내고 꿈 내용을 되새김 했으나 스토리가 형성이 안 된다. 침대 발아래 둔 핸폰을 열어 보니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다. 그러나 어쨌든 악몽이고 개꿈이다. 누구지? 얼마 전에 떠난 큰누나 같기도 했고…. 밖은 빗소리가 세차다. 가야지…..
간단하게 세수를 마치고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으며 생각을 바꾸었다. 빗속을 달려야 하니 아마도 조심하라는… 평소보다 살살 달리라는 경고성 개꿈일 거라고…. 그리고 거실의 소파에 잠들어 있는 아내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하고“깨지 말고 자~! 나 내려갈게!!”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비몽사몽간에 아내는“네, 조심해서 내려가요!”원래 우리 마누라 한 번 잠들면 세상모르는데 꿈속에서 환송을 해 주니 고맙기까지 하다. 암튼 한 시간 여 빗속을 달려 내려오자마자 깊은 심연으로 빠지듯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 아침 그랬다.
그러나 하루 종일 쏟아지는 빗속에서 온 삭신이 쑤시고 특히 가래톳까지 생겨 걸음걸이가 원만치 못하다. 이 모든 게 어제의 후유증이다. 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모험(?)은 거금을 준대도 죽인대도 못할 것이다. 아니 안 할 것이다.
어제는 약간의 볼 일이 있어 오랜만에 서울 집을 갔다. 저녁 아내가 올 때까지(퇴근) 시간이 너무 많다. 서울 집에 갈 때부터 생각을 했다. 아내의 퇴근시간까지 어떻게 보낼까? 며느리에게 짐은 되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며느리가 먼저 부담이 될까봐 오랜만에 북한산이 오를 계획으로 등산복과 신발을 준비하고 갔다.
북한산, 현재 서울 집이 북한산 지류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기에 북한산은 우리 집 앞산 격이다. 젊은 시절 북한산을 오를 땐 우이동 쪽에서 오르기도 당시는 캠핑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북한산과는 인연이 끊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중년이 되어 위암판정과 수술 후 땅을 밟겠다는 욕심에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구하다 무슨 인연인지 우연하게도 이 집을‘막일꾼 선배님’에게 사게 되었고 그 후 앞산 격인 북한산을 일주일에 3.4회 많게는 4.5회 오르기 시작하며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이겨냈던 만큼 북한산은 나의 치유 장소였던 것이다.
이곳에 내려온 게 6년 차이니 북한산과는 최소한 6년 간 인연을 끊은 셈이다. 그래도 반겨 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집을 나서며 오늘의 목적지는 승가사에서, 더하여 체력이 남고 기분이 좋으면 사모바위나 비봉 정도로 가볍게 다녀오리라고 현관문을 나서는대(아무것도 없이 스틱 하나만 들고…)며느리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물 한 병이라도 가져가시라며 물 한 병을 준다. 며느리의 성의도 있고 받기는 받았지만 마땅히 넣고 갈 주머니가 없기에 현관 신발장 위에 몰래 두고 나왔던 것이다.
늘 그러했지만 나의 북한산 산행은 구기동 방향으로 한다.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산에 인접한 동네는 마치 샹그릴라처럼 한 발짝만 벗어나면 태고의 전설과 현실이 공존한다. 서울 집 인근에 구기동도 그러하지만 백사실계곡 또한 그렇다.(서울 하고도 종로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우선 구기동 계곡을 오르면서 실망이 앞선다. 계곡에 물이 없다. 정말 맑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었는데… 아주 바싹 말랐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여름이면 개구쟁이들의 놀이 터였고 지금 같은 늦가을이라도 낙엽이 부빙처럼 떠다니든 그런 계곡이었는데… 어쩌다가???
아무리 갈수기라도 사시사철 넘치던 계곡이었는데…..
이렇게 건천化 하다니 아쉽다 못해 안타깝다.,
땀이 나면 세수도 하고…그랬던 장소가…. 어쩌다????
이런 산 길은 수 백년 전 어쩌면 천 년 전에도 만들어 졌을 거라는 상상…
그 때 선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걸었을까?
사실 어제 따라 정말 이 길을 오르는 이도 내려 오는 이도 없었다. 조금 무서웠다. 그 옛날의 산도적은 안 타나날지? 아니며 맷돼지는? 요즘 한참 뉴스꺼리인 들개는??? 짚고 가는 스틱에 힘을 더 주었다.
이곳을 자주 올 때 내가 붙인 깔딱고개다. 순전히 바위투성이의 오르막 길이다. 저기 아래
등산객 하나 발견. 반갑기까지 하다.(하여 사진을 찍고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인사를 나누었다)
이곳까지 오르면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그래서 깔딱고개라고 하는 곳이다.
깔딱고개만 오르면 바로… 이정표가 있는 이곳이 삼거리 갈림 길이다.
승가사, 비봉, 사모바위 방향과 문수사와 대남문 방향.
집을 나설 때부터 오늘은 가볍게 승가사 아니면 체력이 남으면 사모바위와 비봉 방향을 택했기에 주저 없이 좌측 승가사 방향으로…그리고 그 길을 오르면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이곳에서 200여M 오르면 난락장송은 아니지만 바위를 뚫고 자라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놈이 아직 살아있는지??? 그게 궁금했다.
아! 있다. 그런데 예전엔 똑 바로 섰던 놈인데 어쩌다??? 세파에 휘둘렸나? 많이 굽었다.
그러나 어떠하리…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데… 저 굽은 놈이 북한산을 지키는지…누가 알까?
그렇게 승가사 입구까지 올랐다. 어라??!! 세상에~!!저 곳이 약수터 자리였는데 약수터가 말끔히 없어졌다.
며느리가 물 한 병 줄때 몰래 두고 나온 것은 저 약수터를 생각하고 올라 온 것인데 약수터가 없어지다니…?? 사실 나는 약수터를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약수터의 약수라는 걸 마셔 본 적이 없다. 우선 바가지 하나로 수십 수백명이 입을 대는 거 자체가 싫다. 나는 이곳에서도 끓이지 않는 한 지하수도 믿지 않고 생수를 사 마신다. 다만 손으로 받아 입술이라도 추기려 했는데.. 저게 없어 지다니? 목이 몹시 탄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얼마간 쉬다보니 산 위에서 부는 가을바람 덕분에 땀이 마르고 오히려 한기가 든다. 얼마를 그렇게 앉아 있으니 이곳까지 오른 피로와 목마름도 풀린다. 새로운 의욕이 샘 솟는다. 그래!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오랜 만에 사모바위와 비봉도 배알 하자!!
하여 발 길을 비봉을 향해 돌렸다.
데레사
2016년 10월 25일 at 9:14 오후
비봉까지 갔을까 못갔을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죽다가 살아났으니 고생을 많이 하셨나 봅니다.
오랜만에 무리한 산행을 하면 다리가 엄청
아플텐데 오늘도 밭 일 했습니까?
ss8000
2016년 10월 26일 at 6:12 오전
누님! 2부를 참고 하시어요.
정말 골로 갈 뻔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