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의 갈등이 쌓이고 쌓여 천등산(해발800여m)정상만큼 쌓인 어느 날, 큰 깨달음으로 득도(得道)를 한 후, 요즘은 대오각성 하는 마음으로 그 쌓인 갈등을 한 겹씩 벗겨내는데 주력 하고 있다.
꼬깃거리는 5만 원 권을 내밀며 삼겹살 두 근을 사 오라시기에 남은 잔돈과 건네 드렸더니 ‘이거 진이 아범 들라고 산거야! 오늘 비도 오고하니 크게 할 일도 없을 테니 이거 구워서 막걸리 한 잔 하라고..’하셨던 그 다음날이다.
요즘은 날씨가 초겨울에 접어들려고 그러는지 계속 꾸물거리고 을씨년스럽다. 콩 농사를 지은 농가를 빼곤(사실 나도 콩을 약500평에 뿌렸는데 돌보지 않아 풀인지 콩인지 구분이 안 가 추수는 포기 했다.) 산골마을의 추수는 거의 끝났다고 봐야한다. 그래도 나의 문전옥답엔 빨갛게 매달린 고추와 희나리가 제법 매달려 있다. 음~! 오늘은 저 놈 수확을 해야겠군.
출근복장(작업모. 작업복. 장갑. 장화)을 완벽히 하고 밭으로 향하는데 장모님이 또 툇마루에 앉아 계시다. 빵긋 웃으며 목례를 드리고 수저로 밥 먹는 흉내를 내며“조반 드셨어요!?”라며 인사를 여쭙자 그 기엔 대답도 않고 당장“어디가!?”부터 외치신다. 어쩔 수 없이“고추 밭에요~!!”를 천등산이 떠나가듯 외치자“이!? 나도 가야지…내가 좀 도와줄게”,“아이고!! 안 돼요!! 절대 나오지 마세요!!”인상을 찌푸려가며 소리를 질렀다. 솔직히 신경 쓰이고 방해 될 게 분명하니까. 그리곤 뚜벅뚜벅 보무도 당당히 내 갈 길을 갔는데….
한참 무아지경으로 고추를 따고 있는데 짜증나게 새우등처럼 휜 허리의 장모님 그예 고추밭으로 오셨다. “아이! 참!! 날씨도 찬데 왜 나오셔가지고 신경 쓰이게 하십니까? 어여! 들어가세요!”라고 짜증 섞인 나의 말투엔 아랑곳 않고“나이 들면 자꾸 움직여야 혀! 내가 운동 삼아 하는 거니께 신경 쓸 거 없어! 저 통이나 하나 같다줘!”아주 단호한 어조로 말씀을 하시니“에에이! 씨! 쯧쯧..”진짜 제대로 짜증을 내고 내 할 일을 하는 수밖에. 그리곤‘몇 개 따다 들어 가시겠지..’기왕 대오각성 하고 갈등 벗겨내는 마당에 져 드렸다.
나는 이쪽 고랑 장모님은 저 쪽 고랑에서 고추를 한 시간 정도 땄을까? “진이 아범! 일루 와봐!” 라는 장모님의 호출이 있다. 속으로‘저 노인네가 또 무슨 사고를 쳤나…??’중간 쯤 가는데“나 통(고추 담는 박스)하나만 더 갖다 줘!!!”라며 소리를 지르신다. ‘아니 이 노인네가 정신 줄을 놨나? 갑자기 또 다른 통은….?’ 역시 속으로 장모님이 못 마땅하지만 그곳으로 향하다가 나는 그 자리에서 졸도를 할 뻔 했다.
세상에~!! 정말 세상에~!! 노란 통(원래 과수농가에서 쓰는 박스다)에 빨간 고추가 넘치도록 담겨져 있다. 내가 졸도하고 싶었던 것은 나는 장모님 보다 대충2-30분 먼저 고추를 따기 시작했음에도 아직 반도 못 채웠는데… 형편없이 꼬부라진 새우등의 호호백발 노인네가 무게로 따지거나 양으로 따지거나 족히 나의 세 배 가까이 고추를 따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니 다물 수가 없었다. 첫째는 놀라서 둘째는 너무 좋아서….저걸 언제 다하나??? 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니 더더욱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이다.
이곳은 어제 벌써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갔다. 거실의 대형 유리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잿빛이다 못해 검은 빛이 돌며 음산한 기분이 든다. 뭔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지만 게으름을 피우며 노닥거리고 있는데 또 현관문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린다. 100% 틀림없는 장모님의 호출이다. ‘아이고! 저 노인네가 왜? 또?’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현관문 부서질 것이 두려워 급히 뛰어가 문을 열어 드렸다. 현관문이 열리는 사이로 빼꼼 모습을 드러낸 장모님 대뜸“사우!(장모님의 나에 대한 호칭은 수시로 바뀐다)이것 좀 먹어봐!”라며 웬만한 세수 대야보다 더 큰 냄비에 뭔가 가져 오셨다. “그게 뭔데요?”, “사골 곤 거여!”, “아후!! 저 이런 거 안 먹는 거 잘 아시잖아요!?”소용이 없다. 노인네 고집 이기는 놈 봤는가? 깊이 한 숨을 쉬며 받아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이번 주말 아내와 며느리가 김장하러 온다니 그때나 먹으라고 해야겠다. 장모님 아래채로 내가가시며“사람이 풀만 먹고 어찌 살아! 이런 거도 가끔 먹어 조야지…”사위 걱정하시는 마음 씀씀이에 눈물이 핑 돈다. 내가 어째서 저런 양반과 갈등을 쌓아 나갔을까???
사실 지난 토요일 장모님은 또 인근 시(충주)관내의 도축장에 데려다 달라고 생떼를 쓰셨다. 처음엔‘아이! 못 가요! 안 가요! 다음에 가요!’라고 토를 달다가 아차! 하고 모시고 갔었던 것이다. 사골이며 도가니며 살코기 등 10여만 원어치의 재료(?)들을 사오셨다. 그걸 달이고 고 은 모양이다. 아이고!! 참!!! 우리 장모님 정말 왜 이러시나???
사람이 어찌 풀만 먹고 사느냐시며 사위 생각에 밤새 고은 사골. 흑흑흑….
덧붙임,
그런데 정말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어제 날씨도 꾸물거리고 하여 밖엘 안 나갔다. 그리고 오후에 운동 겸하여 소일거리를 찾아 나섰는데 또 세상에!! 아직도 수확하다 남은 몇 고랑의 고추와 희나리를 묵묵하니 다 따 놓으셨다. 아이고! 우리 장모님 자꾸 이러시면 안 되는데… 왜 이러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