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을 이곳으로 모시고 온 게 꼭 1년 전이었다. 그야말로 장모님 관계 되는 일이라면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서울의 작은 처남에게 무조건 쳐들어갔다가 아무른 성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신 장모님. 몇 차례인가 요구도 하지 않은 다짐을 스스로 하신다.“내가 다시는 서울 안 갈 껴! 이젠 정말 사우 앞에서 죽을 껴!”그 말씀 끝에 나는 당연히“네! 그렇게 하세요. 이젠 정말 이곳에서 편히 사십시오.” 기왕 마음 내려놓기를 한 터라 나 역시 장모님의 다짐을 믿고 또 그 말씀에 감사해 하고 있고 장모님 역시 단단히 대오각성을 하셨는지 그야말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날들이 계속 되고 있다.

그제 아침이다. 요즘은 농한기에 접어들어 아침 일찍 서둘 일이 별로 없다. 다만 그제는 수확의 뒤 끝 덜 마무리 된 것들을 정리하고 깍두기를 담글 계획을 세우고 문전옥답으로 가려는데 아래채 마당에 웬 화물차 한 대가 서 있다. 며칠 전부터 집 뒤로 농로 포장공사가 시작되어 공사인부들의 차량이 집 앞으로 도로로 잔뜩 서 있기도 어떤 차는 우리 집 대문을 가로막기도 한다. 적당히 주차할 곳을 못 찾은 그 중의 한 대가 우리 마당까지 온 것으로 추측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밭에서 일을 하다가 챙겨야 할 일이 생겨 집으로 들어와 볼 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한 사람이 들어선다. 어!? 예상치도 않은 작은처남이다. 온다간다 기별을 받은바 없으니 놀랍기도 반갑기도“아이고! 어쩐 일이십니까? 마당에 있는 차가 형님(처가촌수 개 촌수라는데 나 보단 네 살 아래지만 손위다. 그래서 꼬박꼬박 형님 호칭을 붙여 준다.)차였어요? 난 또 공사하는 양반들 차인 줄 알았습니다.” 어쨌든 간단한 수인사 주고받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저 덜 엄마(장모님) 버릇 고쳐 놓은 무용담(사실 이때까지 무슨 수단으로 장모님이 다시는 서울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는지 궁금하지만 묻진 않았다.)도 좀 들어주고. 대화가 어지간히 무르익고 잠시 한가한 틈을 타 “형님! 매월10만 원씩만 보내 주십시오.”

사실 오래 전부터 마음 먹어온 게 있었다. 장모님이 이곳에 완전 정착을 하신다면 슬하의 5남매가 십시일반으로 장모님께 생활비 겸 용돈을 드렸으면 했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장모님이 요양병원을 가시게 되면 얼마씩 분담하는 예행연습이랄까? 아무튼 그래서 가장 만만한 처제에게는 이미 10만원을 확약 받았다. 그리고 큰처남과 처형은 5만원 작은 처남은 15만원(능력대로…), 나름 금액을 정해 통보할 참이었다. 물론 나머지는 얼마가 되었든 나와 마누라 몫으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차마15만원을 얘기 못하고 10만원을 얘기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작은처남은 나의 조심스런 타진을 묵살하며“돈이 왜 필요하죠?(처남도 네 살 많은 나에게 말은 안 놓는다.)”까지만 했어도 오늘의 이 썰은 탄생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 이  자 슥이 인상까지 팍 쓴다. 나는 놈의 그런 모습에 순간 분노가 팍 치밀어 올랐다. 15만원도 아니고 10만원 보내라고 했다고 인상을 팍 쓰며‘돈이 왜 필요하냐고 하는 놈’에게 앞뒤 가릴 것 없이 분노가 치민 것이다. “뭐요? 돈이 필요 없다니…???”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졸지에 냉각을 넘어 전장(戰場)되 버렸다. “엄마 노인연금21만원 나오잖아요?”개xx의 이 소리에 기가 딱 막혀온다. 21만원이면 장모님이 살아 나갈 것이라는 개xx….

오래 전부터 마누라 앞에서 공언해 온 게 있었다. 장모님 이곳에 완전 정착하시게 되면 남매들이 십시일반으로 장모님을 봉양케 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처제 외에는 어느 누구도 땡전 한 푼 내 놓을 사람 없다며 단언하는 것이었다. 특히 작은 오빠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라며 장담까지 하기에‘그런 소리 하지마라! 내가 어떻게든 설득 시킬 것이니 걱정 말라!’며 장담 했던 것인데 마누라의 조언대로 첫 마디에 설득은커녕 핀잔과 비웃음까지 사고 보니 나의 감정조절이 불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