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류나 생선 없인 식사를 못하시는 우리 장모님, 더불어 하루에 우황청심원(5천원) 1병, 쌍화탕 1병, 판피린 1병 두유 세 팩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잡숫는 양반. 이런 건 직접생활비라고 하고, 며칠 전에도 난방용 기름 50여만 원, 매월 전기세 5-6만원, 병원 및 약값, 몇 푼 안 되지만 기타 제세공과금 등등. 아무리 작게 잡아도 장모님께 국가에서 지급되는 노인연금 그 이상의 금액이 지출 된다. 그러나 솔직히 그 정도는 부담할 여유도 있고 불만도 없다. 이곳에 내려오시기 전 매월 사글세 30만원(처제10만 포함)도 15년 가까이 우리 부부가 부담하지 않았던가. 그 금액을 그대로 부담한다고 치부하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개자식들(큰처남 포함)의 의식과 태도다. 21만원이 국가에서 지급 되고 그 돈이면 노인네에게 충분할 것이라는 의식 그런 즉 더 이상의 돈이 왜 필요하냐며 우거지상을 쓰며 따지는 태도. 그러니 내 입에서 개xx라는 욕이 안 튀어 나오겠는가?
작은처남, 젊은 시절부터 독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대부재천(大富在天) 소부근면(小富勤勉)이라든가? 천성이 술 담배 전혀 입에 대지 않고 김포공항 근처에서 가구점을 하며 오로지 앞만 보고 열심히 근면성실하게 일하여 비록 서울의 외곽지역이지만 아들 놈 장가가며 아파트 한 채 떼 주고도 아직 두 채가 남아있고 처가(강릉)근처에 땅도 제법 사두었다는 소문이다. 뭐, 한마디로 먹고살만하고 한 달10만 원 정도는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형편이고 처지다. 그런데 10만 원 보태라고 한 내게 인상을 쓰고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여태 잘해 오다가 돈10만 원이 무에 아쉬워 그 돈을 부탁했다가 10만 원은커녕 반 푼어치의 양심이나 인성도 없는 놈에게 면박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자괴감과 자존심에 생채기가 난 것에 더 화가 치밀고 분노한 것이다. 돈 10만 원이 뭐라고…..아무리 근면성실하게 살아왔어도 그렇지…. 제 어미를 보다 편히 모시겠다고 어렵게 꺼낸 얘긴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할 말은 있다. 나는 어쩌다 저희 집에 가면 빈손으로 갈 수 없어 하다못해 두루마리 휴지든 사과 한 박스든 손에 잡혀야 들어서는데, 결혼생활 40년이 넘었지만 사탕 한 봉지 구경을 못했고, 지난 1년 저희 형제들 제 어미 못 모시겠다고 서로 떠미는 꼬라지가 한심하여 자청해 제 어미를 이곳으로 모셔왔건만 그동안 너댓(그것도 반강제 소집령)차례 오며 꽁치 한 마리 사들고 오는 걸 못 봤다. 그게 꼭 먹어서 맛이 아니다. 야! 이 足같은 개xx들아!!
큰처남이라는 놈도 마찬가지다. 빵땅 처먹은 돈 포함하면 억대 가까이 뜯어가고도 오미자 농사를 3천 평을 하네 5천평을 하네 하며 오미자 진액 한 병 안 들고 오는 개xx다. 단 돈 한 푼이라도 지 껀 지꺼고 남의 것도 지꺼인 도둑놈. 무골호인이신 장인어르신에게서 어째서 저런 개xx들이 태났는지 불가사의 하다. 아마도 저희들 엄마나 외할매 닮아서 그런 것일 것이다.
수년 전 작은처남이라는 놈과는 이런 에피쏘드도 있다. 큰딸아이가 용돈 벌이라도 한다며 의료기기(안마기, 발사지기 등등)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딸아이가 그런 장사를 시작했으니 아비로서 보탬을 주고 싶어 알만한 곳 또는 내가 부탁을 하면 들어 줄만한 분들에게 전화를 드려 소위 연고판매를 해 주었는데 그 중 리스트에 오른 인물이 작은처남이었다. 전화를 해서 여차여차 해서 그 발마사지 기계 하나만 사주십사 부탁을 했다. 그 때도 딱 한마디 일언지하“필요도 없는 걸 왜 삽니까?”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얼굴은 홍당무로 변하고 말았다. 다만 전화였기에 그 붉어진 얼굴을 적에게 들키지 않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자신 있게 전화를 했던 이유는 아들딸 3남매 시집장가 보내며 신혼살림 가구는 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몽땅 그 개xx가게에서 사들였고(수천만 원이 훨씬 넘는…)친인척 결혼식 혼수장만 할 때 또한 작은처남 가구점을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 개망신을 당하고 애꿎은 마누라를 불러서 니 네 오빠는 개xx, 足같은 놈, C八놈….아무튼 갖은 욕을 다 해댔다. 성질이 난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제 오빠에게 그 사정을 얘기 했던 모양이고 며칠 뒤‘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며 세 대(저희 처갓집과 친척용으로..)사 갔던 적이 있었다. 이 얘기를 블로그에 올렸더니 김포사돈어른이 한 대 또 그걸 보시고 광고를 낸 덕분에 스위스에 계시는‘권수영님’이 별도로 두 대를 스위스에서 주문을 해 수출까지 했던 일도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