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든가? ‘극한 직업’이라는 다큐 프로가 있다. 말 그대로 각종 직업 가운데 소위 3D업종 중에도 더 힘들고 위험 군에 속하는 직종을 찾아 그런 가운데서도 땀을 흘리고 열심히 사는 산업역군들을 소개하는 프로다. 인간의 한계를 인내하고 극복하는 장면도 나오고 감동과 감명을 주는 프로이기도 하여 일부러 찾아보기도 한다.
산골에 정착을 해가며 해가 갈수록 적응해 가는 내 자신이 어떨 땐 자긍심 비슷한 걸 느끼기도 한다. 특히 농사라는 걸 환갑 진갑 넘어 짓기 시작했지만 서툰 대로 하나씩 배우고 익혀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뭐, 큰소리나 흰소리가 아니라 놀고 먹는다하여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하루저녁 이쑤시개 값이 얼마니 하며 낭비하지만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몇 십 년 놀고먹어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무엇을 위하여 무엇 때문에 그리 살까.
올핸 고추농사를 지었고 그 고추농사에 보다 주력한(사실 주력했다고는 하지만 다른 작물에 비해 좀 더 신경을 썼을 뿐이다.) 결과 큰돈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성과를 올려 내년엔 더 큰 유휴농지에 본격적인 고추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그럴 자신도 있고….
농사를 짓기 전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농부들은 어떻게 그 뜨거운 여름에도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경이로운 생각. 가만히 있어도 물 흐르듯 땀이 흐르는 고역을 어찌 이겨낼까? 할아버지가 그랬고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러했기에 난 죽어도 농사는 못 짓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농사꾼이야말로 그 어떤 직업보다 가장 힘든 직업으로 간주 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이제 바꾸기로 했다.
고추수확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개 9월 중순부터 시작이 된다. 특히 홍고추(말리지 않은 붉은 고추)수확은 그 보다 한 달 빨리 수확이 시작된다. 결국 계절적으로 염천지절(炎天之節)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 계절엔 아무리 부지런하고 뛰어난 농사꾼이라도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하여 농부들은 먼동이 으슴프레 밝아오면 논밭으로 나가는 게 일상생활이고 그렇게 태양이 중천에 걸리고 한낮의 열기가 오를 때쯤 그날의 일을 마감하는 것이다.
올 여름 홍고추를 수확하며 느낀 경험담이다. 나 역시 신성한 노동을 하기 위해 먼동이 터기 전 밭으로 나갔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저 많은 고추를 언제 다 따지? 하는 생각을 가지지만 정작 하나둘 고추 따기에 몰입하면 그야말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즉,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뜨거운 햇살도 그 탓에 흘러내리는 땀으로 걸친 옷은 물속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젖어 온 몸을 휘감아도 땀이 흘러내리는지, 젖은 옷이 칙칙하고 불편한 줄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조반도 들지 않았건만 배고픔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핸드폰 액정에 나타나는 시간을 보면 보통은 오후 한 시 때론 두 시까지 고통도 모르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그 순간만은 세상에 미워 할 일도 미운 사람도 없음이다.
득도(得道)란 게 별거일까? 무아의 경지가 득도이고 그 경지에 도달하니 고통도 배고픔도 미움도 없는 지경이 득도 아닐까? 득도를 함으로 또한 이런저런 치유를 하는 게 아닐까? 따라서 그 득도의 경지를 내년엔 보다 크고 깊게 오래 맛보기 위해 고추농사를 확대하기로 마음먹고 있다.
나의 이런 득도의 경험을 이웃 최공(崔公)에게 말해 주며 당신도 한 번 느껴보고 치유해 보라고 했더니 최공은 가여운 듯 나를 쳐다보더니‘일사병이나 열사병이 다른 건 줄 압니까? 노인네들 그러다 죽는 거예요’라며 김새는 소리를 한다.
그렇지만 최공의 그런 충고도 나의 의지는 꺾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년에도 고추농사를 지으며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아(無我)의 경지로 득도(得道)의 길을 열 것이다. 득도의 길에서 스러진다하여 아쉬울 게 무엇인가? 득도를 하고 죽는 것은 죽었다고 하지 않는다. 열반(涅槃)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십 년 죽을 때까지 도를 닦고 면벽수도를 한 고승들도 열반에 이르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데 고추농사 짓다가 열반을 한다면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