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내와 외식을 하기로 했다. 외식이라고 해봐야 늘 그러하지만 보리밥 집이나 냉면집 그리고 해장국집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어릴 적부터 빈한한 집에 태나 고급스런 음식을 대해 보지 못해 언제나 서민적인 곳만 찾아다닌다. 한 편으론 식성이 까다롭기도 하고…
약간의 고민을 하다가 1k 남짓한 거리의 해장국집으로 정하고 아내와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으며 해장국집에 도착한 시각이 5시 쯤. 해장국집은 북한산 구기동 산행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늘 붐볐다. 특히 주말이면 등산객들 때문에 더 붐볐다. 마침 구석진 곳에 우리 부부가 앉을 곳이 있어 좌정을 했다.
평소대로“해장국 둘! 하나는(내 것) 선지랑 양 빼고 우거지 좀 더 주시고!!!” 라며 주문을 하고 앉아 있는데 어째 식당이 손님 수에 비해 조용하고 시선이 한 방향으로 꽂혀있다. 손님들의 시선을 따라 나 역시 뒤돌아 앉으며 그곳을 바라보니 벽걸이용TV에는 볼륨도 없이 광화문에 박근혜 대통령 하야운동 군중이 집결한 모습이 계속 비쳐진다. 뒤돌아 앉아서 저만큼 높이 걸려있는 TV를 보려니 고개도 아프고….자세를 고치려는 바로 그 순간 서울역에서 출발한 대통령 하야 반대집회 군중의 거리 행진모습을 화면의 반을 나누어‘하야반대 : 정권퇴진’하는 식으로 내 보낸다.
그때다. 우리부부와는 저만큼 떨어진 반대쪽의 식탁에, 어찌 보면 부부 같기도 달리 보면 불륜 같은 40대 중후반 또는 50대 초반의 남녀가 앉아 있었는데(식당에서 하도 열심히TV를 보고 있기에 눈여겨봤었음), 갑자기 남자가 한마디 한다.
남: 워미! 저거 보랑게 저 늑다리들 전부 일당 받응겨…(참 거시기 하지만 듣는 늑다리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그보다 그의 억양이 더 맘에 안 들었다.)그래서….
나: 아따! 뭔 말씸을 고렇게 한답디요?(덩치가 남산만 해서 잘못 걸리면 험한 꼴 당할 거 같아 그 친구랑 같은 억양으로…) 그러자….
남: 아자씨! 쩌게 안 보이요? 하나 같이 늑다리들 아닝게라? 저 사람들이 뭔 힘이 있어 저러코롬 하겠능게라?(돌아보니 카메라를 포커스를 그렇게 맞췄는지 모르지만 진짜 늙은이 뿐이다.) 그렇지만….
나: 옴마? 젊은 슨상 욱껴뿐져요이. 늑다리는 애국심도 업답디요? 그라고 늑다리만 일당 받고 집회한답디요?(저는 안 늙을 것 같이 늑다리 늑다리 하기에 성질이 좀 났음.)그러니까 일마가…
남:(밑도 끝도 없이) 어미! 오살헐 늑다리들 늙으면 죽어야제! 돈을 받고 저런다냐?(분명히 이 놈도 약이 좀 올라 있다.)
나: 젊은 슨상 어째 그래쌌소? 이쪽(광화문)은 알바가 없을 거 같소?(그랬더니 일마가 성질을 벌컥내며)
남: 아자씨! 저 많은 사람을 뭔 수로 일당을 다 주겄쏘이~?(늑다리는 인원이 적으니 일당쟁이 란다. 말이 말 같아야…) 그 말을 받아서…
나:(막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하려는데 아내가 식탁 밑으로 내 발을 꽉 밟으며 동시“그만해요!”라고 나직이 속삭인다. 글 마랑 승강이(?)할 때는 몰랐는데 놈의 식탁에는‘장수 막걸리’빈 병이 4개나 서 있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세상이 워낙 험악하니….
잠시 후 주문한 해장국이 나왔고 뜨거운 해장국에 열중 하다 보니 아까 그 남녀는 보이지 않는다. 벽에 붙어 있는 TV에서는 계속 양진영의 시위대를 보여 주고… 해장국을 다 먹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좀 억울한 기분이 든다. 바로 옆에 역시 40대 초반의 사나이가 해장국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화면에 열중 하고 있다. 아까 그 친구 보다는 좀 만만해 보인다. 그리고 혼자다. 계산대로 나가며“저 상황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라고 정중하게 물었다.
졸지에 늑다리로부터 질문을 받은 그 젊은이“뭐…저야… 빨리 내려오지 않으니…”라며 떠듬거린다. 애꿎은 젊은이에게 성질을 벌컥 냈다.“아니지요! 아니지요! 박근혜가 백 번 천 번 잘못 했다고 칩시다. 야3당이라는 놈들 저 미쳐 날뛰는 군중들 저 게 시윕니까? 뭐, 평화시위 어쩌고 하지만 웃고 즐기잖아요? 시국이 희희닥거리고 즐길 땝니까? 대통령의 실정이 그리 재미있어요? 저 놈들이 진정으로 나라의 위기라고 생각하면 표정관리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 놈들 하는 꼬라지를 보십시오. 국난이 아니라 국가의 경삽니다. 맨날 국경일 경축하는 거 같지 않습니까? 게/ 새/ 끼들!!!”
아내가(오늘 저녁은 내가 사려고 했는데 그 사이 아내가 계산을 했다.) 팔소매를 잡아끌지 않았다면 좀 더 험한 욕을 하고 싶었는데….또 혼자 해장국을 먹으러 온 젊은이가 무슨 죄가 있어…“아이고! 젊은 선생! 제가 좀 오버했나 봅니다. 해장국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이거 죄송합니다.”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이 늑다리가 떠들어 죄송합니다. 식사 맛나게 하십시요들!!!” 그러고 보니 나도 장수 막걸리 한 병을 혼자 다 마셨다. 요즘 세상이 빙빙 돈다. 내 머리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