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미국 딸네 집에 근 1년을 있다온 개울 건너 이PD가 저녁이나 같이 하자며 전화가 왔다. 11월초든가 중순경에 귀국을 했지만 서로 간 타이밍이 맞지 않아 그동안 식사 자리 한 번 만들지 못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 그러고 보니 그가 귀국하고 얼마 뒤 내가 먼저 귀국 턱을 낸 게 기억나고 그제 저녁 이PD의 저녁초대는 보답 차원의 것이다. 면소재지에 초가을 활어횟집이 개업을 했고 그 때 그곳에서 귀국 턱을 냈으니 똑 같이 그곳에서 저녁6시까지 오라는 것이다.

이즈음 산골의 밤은 5시만 넘으면 캄캄하고 6시면 어둑할 때 켜진 가로등이 졸다못해 잠자리에 들만큼 칠흑의 암흑세계다. 어둠을 뚫고 그곳에 당도하니 이PD는 벌써와 횟집 문 앞에서 담배를 피다가 막 도착한 나를 향해 어서 오라는 인기척을 낸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우리 마을 전 이장이다.

마을 발전을 위해 무던히 애를 많이 썼고, 그런 그가 개인적으로 좋았다. 그의 아내는 면소재지에서 철물 및 농기구 판매업을 한다. 그가 마을 이장 직에 있을 땐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술자리도 꽤 자주 가졌었는데… 그 직을 그만 두고 어쩌다 한 번씩 만나 수인사 나누며 언제 밥이나 한 끼 하자는 헛 약속만 날렸는데 이PD가 그도 함께 초대한 모양이다. 비록 내가 사는 저녁은 아니지만 반갑기 그지없다.

두 사람 다 골초다. 피던 담배가 휠타를 지나 손끝이 타도록 옹골지게 담배를 피우고 함께 들어서니 이미 예약된 방이 있었고 그 방엔 이PD와 전 이장의 아내들이 들어서는 나를 반긴다. 항상 부부동반으로 만남을 가졌는데 주말부부인 나 때문에 나만 홀아비(?)신세가 된 것이다.

내 기억으론 원래 두 사람의 와이프들은 술을 별로 마시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맥주 한두 잔이면 족한 정도였는데 어제 저녁 이장의 와이프는 술 발이 받는지….우리 남정네와 똑 같이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외쳐 대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술잔이 서너 순배 돌았을까? 이즈음 세상 돌아가는 얘기는 산골이라고 다르지 않다. 시국이 어쩌고 정국이 저쩌고…. 종래는 대통령이 어쩌고 순실이가 저쩌고….

전 이장, 원래 이 사람 진짜  골 통 중의  골 통이다. 더구나 박사모 중 박사모다. 어쩌다 박근혜 얘기가 나오면 침을 튀겨가며 자랑하고 존경심을 나타내며 혹시라도 박근혜에게 불리하거나 불편한 얘기라도 나오면 싸움도 마다 않고 대 든다. 또 하나는 나이답지(63세든가?) 않게‘일베’회원이다. 그기에 비하면 나는 일베라는 이름만 들었지 한 번도 그곳에 방문한 적은 없는 온건파다. 광어회를 앞에 두고 온건파(나), 강경파(이장), 중도파(이PD)의 그야말로 썰戰이 벌어진 것이다. 중도파인 이PD는 차치하고 나와 이장의 열띤 썰戰이 횟집이 떠나가도록 전개 되었다.

이즈음의 국정혼란과 난맥상 그리고 대통령에게 종북 빨.갱.이들이 도가 지나쳐 거의 광란 수준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고 대통령을 끝까지 수호해야 한다는 것까지도 합의(?)보았다. 문제는 오늘날의 국정혼란과 난맥상의 원인은 대통령에게 일정부분 있다는 나의 주장에 이장은 티끌만한 잘못이 없다는 반론을 내세우며 자꾸‘일베’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일베라는 곳에 세뇌가 되도 단단히 된 것이다.

곁들여 이번 사태가 일어났을 때 나 역시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어떤 부분은 비판적 태도를 보였고 그 중심에 선 인물들을 내치라는 썰을 자주 풀었던 경험을 얘기하며 내가 다시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썰을 풀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의 사과가 있은 후였다는 점을 상기 시켜 주었어나 그는 대통령은 티끌만한 잘못이 없다는 주장과‘일베’소리를 하는 바람에 의견이 상충하고 고함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내가 그에게 바란 것은 큰 요구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대통령도 잘못이 있다. 하다못해 사람 잘못 사귄 거라도 인정을 하고 썰전을 했으면 그렇게 큰 소리가 나지는 않았을 것인데… 대통령은 티끌만큼도 잘못이 없다는 주장,,,, 그렇다면 명색 일국의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왜 두 번씩이나 했겠느냐는 나의 주장엔 촛불난동이 일어나니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했다며 일베에 그런 글들이 올라와 있다는 대목에선 면상을 한 방 갈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건 무식한 건지 광신도다운 모습인지…

그런데 그 와중에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저럴 땐 꼭 우리 시아버지라니까!! 우리 시아버지가 한 번 뱉은 말은 어떤 경우에라도, 그게 100% 잘못된 것일지라도 절대 번복을 않는다니까요”물론 이장 와이프였다.

즐거운 술자리에 느닷없이 정치 얘기가 끼어들었고 급기야는 한 가정의 가정 사까지 튀 나오며 당장 부부싸움이 되고 만 것이다. 자신의 와이프가 그 정도 했으면 그냥 웃어넘기거나 적당히 마무리 지었으면 될 것을 이장이 발끈하며 갑자기 아버지 얘기는 왜 꺼내고 내가 뭘 잘못 했느냐고 와이프에게 도끼눈을 뜬 것이다.

그런데 이장 와이프가 초반부터 소주잔을 홀짝이더니 술이 많이 됐었던 모양이다. 이장의 반격에“야! 이 새 끼야! 니가 뭘 잘했다고 큰 소리냐? 저 새 끼 좀 패 줘요!”라며 내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저 새 끼 가로 시작하여 최근 노름으로 5천만 원을 탕진한 얘기며 사람을 팬다는 얘기며…그예 이혼 해! 개 새끼야! 등등…그간 이장이 저지른 가정적 비리를 몽땅 털어내고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횟집의 술자리는 파장이 되었고….

위암 수술 후 소주를 안 마시는데 10여 년 만에 소주를 마셨다. 그제 소주병이 10병 이상 굴러 다닌 것 같다. 이장과 썰전을 벌인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집엘 그리고 산길을 어떻게 차를 몰고(죄송! 진짜 음주운전 않는데….단 한 잔의 음주를 해도 꼭 대리기사를 부르는데…산골엔 대리기사도 없다)왔는지 기억이 없다. 아침에 차고에 차를 세운 게 아니고 마당에 삐딱하게….오늘날의 국정혼란이 과음을 부르고 부부싸움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덧붙임,

어제 아침 이장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가서 또 싸운 건 아니지?

안 싸웠단다.  거짓말  아니다.

어제 이장 와이프 가게 문도 안 연 모양이다.

오후 쯤 이PD네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전화를 했다…. 이장 부부 어제 괜찮았더냐고 물어 보았다.

전화기의 행방이 묘연해서 그거 알아보러 왔는데 더 싸우진 않았단다.

전화기는 차 안에 있더란다. 괜히 내가 부부싸움을 만든 것 같아 미안하다.

며칠 있다 저녁을 사며 사과를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