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조강지처(糟糠之妻)2.

중국에 어떤 거래처가 있었습니다. 저와 처음 거래할 때는 정말 초라한 업체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 공장도 커지고 제법 돈을 벌었던가 보더군요. 공장도 확장하고 우선 A사장이라는 친구 차부터 달라지더군요. 중국 자체 생산 차량 중에도 하급에 속하는 중고차를 세계 유수의‘M’사 차량으로 바꾸는 걸 봐도 벌긴 번 모양입니다. 그 친구와 거래가 시나브로 끝나고 가끔 조우하면 멀리서 손이나 흔들고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를 아는 또 다른 B거래처가 있습니다. 그 친구의 전언에 의하면 A사장이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충 얘기를 듣고 본즉 A가 바람이 났다는 겁니다. 그때 B와 제가 나눈 대화가 그랬습니다.“돈이 없을 땐 둘이 열심히 일하다가 돈 많이 버니 조강지처 버리고 바람났다”라고. 어느 사회나 있음직한 얘기지요. 그런데 얼마 뒤 더 기막힌 소식을 들었습니다. A의 부인이 맞바람을 피웠고 무슨 연유인지 그 후로 A가 자살을 했다는 겁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바람을 피운 결과 벌을 받은 거지요. 미리 밝히지만 요즘 A의 부인은 산동성 칭따오에서 재혼도 하고 아주 잘 살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조강지처에게 죄 지은 결과 같아서 드리는 말씀 입니다.

제 경우는 중국에 제조업을 하러 갔다가 여의치 않아 보따리 장사로 변신 했습니다. 변신을 하면서 깊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더 이상 기댈 곳도 비빌 곳도 없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걸 내 위주로 해서는 안 된다. 나는 2선으로 물러나자.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그 생각은 제 스스로도 미스터리 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새롭게 사업자 등록을 하면서 아내 이름으로 해 주었습니다. 서양은 보통 가족 또는 가문 명의 아니면 개인의 이름으로 상호를 많이 만듭니다. 뭐 우리네도 ‘됴(조)고약 아니면 이명래 고약’또… 그런 상호가 있긴 합니다. BYS상사 ‘도소매, 무역업’. 그렇게 등록을 했습니다. BYS는 아내 이름의 영문 이니셜 입니다. 이 상호를 내 걸고 byc라는 관계도 없는 내복업체와 혼동을 하고 찾아 온 손님도 많았고 덕도 좀 봤습니다. 1995년도의 얘기니 벌써 20년이 넘었나요?

당시 저는 중국에 상주하며 아내가 원하는 물건을 구하러 중국 오지를 찾아 다니며 즉, 구매를 담당 했고 아내는 남대문에 가게를 차리고 판매를 담당 했던 것입니다. 어쩌다 귀국을 하면 저는 다시 아내 가게의 샤타맨이 되어 출퇴근을 시켜주는 충실한 호위무사 역할도 했습니다만, 이미 그 때부터 조강지처인 아내에게 곳간 열쇠 뿐 아니라 모든 걸 넘겨주기로 작정 했던 것입니다. 아니 조강지처에게 제 앞날의 모든 운명을 맡겼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마지막 단 한 번의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 후 1부에서 미리 말씀 드렸지만‘사정이 확 바뀌더군요. 굳은 땅에 물고이듯 자꾸 고여 나가고 공든 탑 쌓듯 자꾸 쌓아내는 겁니다.’조강지처에 대한 믿음이 그런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그 결과 흰소리가 아니라 저는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울 게 없는 놈입니다. 수백 수천억 하는 부자나 재벌과 비교 할 수 없지만 나름 빚 없이 남에게 돈 안 꾸고 살아갑니다. 더 부유하기를 더 호사롭기를 바라면 도둑놈 심보 일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촌치도 가식 없고 틀림없는 얘깁니다.

그런 마누라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왜 그런 사람 있지요. 아무리 비싼 옷을 입혀놔도 옷 매무새 즉 뽀다구 안 나는 사람. 마누라가 그런 부류입니다. 가끔은 백화점으로 데려가 나름대로 코디를 해 주며 비싼 모피와 정장도 사 주지만 처음 며칠 입고 다니다간 아예 장롱 깊숙이 짱 박아 버립니다.

그리고는 남대문표 아니면 동대문표를 주로 선호합니다. 근데 그렇게 고생한 마누라를 근간 가만히 돌아보니 주름살도 많아졌고 팍삭 늙은 듯 보입니다. 그래서 가끔 남들 보기 쪽 팔리니 미용에도 좀 신경 쓰라고 해 보지만 씨도 안 먹힙니다. 그러나 만약 언제고 마누라가 미용을 위해 어떤 시술을 한다거나 무슨 주사를 맞는다든가 한다면 결코 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생해가며 우리 가정을 세우고 이끌어 온 조강지처에게 그 정도의 자격은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호사도 못합니까?

4 Comments

  1. 데레사

    2016년 12월 31일 at 9:17 오전

    사모님에 대한 애정이 팍팍 묻어 나는 글입니다.
    두분 잘 만났어요.
    내년에도 햄복하고 건강 하세요.

    • ss8000

      2016년 12월 31일 at 2:51 오후

      감사합니다. 누님! 덕담.
      해가 갈수록 마누라가 점점 더 사랑스러워 집니다.
      ㅋㅋㅋ… 닭살 돋지요? ㅋㅋㅋ..

      누님 닭살 돋거나 말거나
      사실인 걸 우짭니까?

      다가오는 새해 보다 건강 하시고
      보다 행복한 나랄 되소서.

  2. journeyman

    2017년 1월 1일 at 9:59 오후

    다혈질이라고 하셨던 오선생님께서 애처가시라니 조금은 의외라 생각되는군요.
    장모님 문제도 그렇고 사모님께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 ss8000

      2017년 1월 2일 at 6:37 오전

      허걱~!
      팀장님이 인생을 덜 사셨네.
      그게 나이가 먹을수록 마누라에게 꼼짝 못하게 됩니다.
      애처가라기 보다는 엄처시하 즉 공처가가 되는 거지요.

      애처가든 공처가든 집안 조용 해지려면 재빨리 선택하고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농담 아닙니다.

      글고 나이가 들수록 마누라밖에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듭니다.
      조금 더 살아 보십시오. 팅장님… 그나 걱정 않습니다. 두 분은 이미
      잘 살아 나가는 게 확실합니다. 글에서 묻어 납니다. ^^
      감사합니다. 팀장님도 금년엔 복 많이 받으십시오.
      건강에도 유념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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