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오늘도 걷는다 마는…..

산골의 겨울은 워낙 을씨년스럽다. 간간이 특용작물(약재)을 하는 몇 농가를 빼곤 거의 활동을 정지하고 방에 들어앉은 형국이다. 어떤 이는 겨우내 모습을 볼 수 없다가 농사철이나 돼야 얼굴을 보며 서로“아이고! 그 새 이사 간 줄 알았네!”라며 너스레를 떨거나 농담을 한다. 그만큼 활동량이 적다는 의미다.

벌써 작년 봄인가? 몸이 아무래도 묵지근하여 체중계에 올라섰더니 자그마치 내가 알고 있던 체중보다 7-8k는 더 나간다. 그러고 보니 숨결도 고르지 못한 거 같고.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바르지 못해도 즉, 개똥밭에 굴러도 천국보다 이승이라 하지 않든가. 더구나 100세 시대에…안 되겠다 싶어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산골에서 운동한다고 요란을 떨면 좀 거시기 할 것 같아 먼저 집 안을 돌기로 했다.

매년 벌어지는 풀과의 싸움이 지겨워 마당과 경내를 전부 아스콘 포장을 했다. 그곳을 지그재그 왕복으로 한 바퀴 돌면 700보 전후, 처음 얼마간은 10바퀴, 차츰 늘여 나가며15바퀴를 돌면 일단 걸음 수로 만보(萬步)가 넘고 시간은 대충 시간 반에서 40분 그리고 마음이 내키면 20바퀴도…

두세 달 뒤(물론 거의 매일 운동을 마친 후 점검 하지만…)체중계의 눈금이 6-7k감량이 된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 때만하더라도 순수 운동으로 감량이 된 것은 아니다. 명색 농사짓는 농부가 아니던가. 결론은 농번기에 땀을 흘려가며 많이 움직인 효과도 있다. 농번기가 끝나고 여전히 경내 돌기 운동을 하는 가운데 그 모습이 집 앞을 오가는 마을 분들의 눈에 뜨여“에~에이~! 운동을 하려면 바깥으로 나가야지..”비아냥 인지 권고인지….

요~오씨! 하루는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섰다. 그리고 무작정 걷기를 시작했다.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마치 노래가사의 정처 없는 나그네처럼. 한참을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면소재지(마을에서 4~5k 거리) 동네가 저만큼 보인다. ‘옳거니… 그래 저곳을 왕복으로 매일 걷는 거야’라고 다짐을 하고 시작했던 게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마을입구를 빠져나가면 면소재지 가는 길은 두 군데고 다시 좀 더 나가면 두세 가닥으로 갈라져 다양한 코스로 목적지를 돌아올 수 있다.(코스에 따라 10k로를 훨씬 상회하는…)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가끔 운동 중독?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별 걸 다 과장한다고 생각했다. ‘하다 곧 중지하면 아니함만 못하리라’는 말은 있어도 그런다고 하여 누가 때려죽이는 것도 아니고, 매일 면소재지를 향해 걷지 않으면, 해야 할 숙제를 안 한 것같이 뒤가 캥기고 어떨 땐 병이라도 날 것 같은 조바심이 든다. 이런 게 아마 중독이 아닐까? 내가 중독에 걸린 듯하다.

그 증세는 어쩌다 서울 집에 며칠 묵으러 가면 하루 밤을 자고나면 그만‘아이고! 운동을 해야 하는데…’물론 서울 길을 걷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상상을 해보면 그런 억지춘양은 없다. 집 근처에 있는 북한산 등산도 해 보고 북악스카이웨이도 올라 보지만 우선 숨이 답답해 운동보다 몸을 망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하룻밤만 자면 마누라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새벽에 빠져나와 냅다 이곳으로 달려 내려온다.

요즘 이곳 날씨가 영하 10도 이상으로 내려간다. 더구나 얼마 전 눈까지 내려 빙판길이다. 마을 양반들 눈엔 어지간히 오래 살려고 극성을 뜬다고 할지 모르지만 단순히 운동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뜨거운 여름 먼동이 트면서 고추를 따며 무념무상 무아지경에 빠져 득도한 기분을 썰로 푼 적이 있지만, 걷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길을 걸으며 무념무상에 빠질 수 있다. 길을 걸을 때 땅만 보고 걷는다. 아무생각 없이 땅만 보고 걸으면 지루하지가 않다. 특히 산골길은 도시와 달리 전봇대도 장애물도 차량도 없으니 땅만 보고 걷는 게 가능하다. 그렇게 오늘도 심신을 살 지우며 걷고 또 걷는다.

아직은 그런 적이 없지만 땅만 보며 걷다보면 떨어진 동전 줍는 날도 있을 거다. 운동되고 동전 줍고…그날을 위하여 오늘도 정처 없이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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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03걸음.  언젠가 올렸던 그 날의 최대 걸음이다. 작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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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76걸음. 1월10일 위의 최고 기록을 며칠 전에 깼다. 거리가 17k 조금 넘는 것으로 표시 됐다.

이날 다리가 좀 아팠다. 그러나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거 아닌가? 조만간 이 기록도 깨질 것이다.

2 Comments

  1. journeyman

    2017년 1월 18일 at 5:39 오후

    저는 걷기 예찬론자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걷다보면 무념무상에 빠지는 매력도 있구요.
    근데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다보면 지겹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슬럼프인 거 같은데 그럴 때는 없으셨는지요?

    • ss8000

      2017년 1월 19일 at 12:16 오전

      좋은 질문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 썰에도 밝혔지만,
      매일 코스를 달리합니다.

      확실히 매일 똑 같은 곳을 다니니까
      마치 짐승 아니 다람쥐가 된 거 같았습니다.
      짐승은 제 길만 다니다가 덫도 밟고 올무에 걸리잖아요.

      가령 팀장님이 다니든 길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곳은 여전히 도심일 테니 오늘은 교차로를 건너 반대 편으로 다음 날은
      다시 그 반대 편으로…
      또는 거리를 좀 더 늘인다거나.
      저는 중학교 때 가회동에서 서울역 염천교를 지나
      봉래동까지 걸어 다녔습니다.

      버스 회수권 한 달치 사 주시는 거로
      만화 다 봤거든요.ㅠㅠ…

      슬럼프 그 거 본인이 극복해야지 아무리 좋은
      멘토가 있어도 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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