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산골일기에도 얘기 했지만, 요즘은 어디든 걷지 않고는 몸이 근질 거려 배겨날 수가 없다. 하여 눈이오나, 비가 오나(X이건 아니다. 비 오는 날은 쉰다), 바람 불거나 이곳에 있는 한 걷고 또 걷는다. 특히 눈이 오는 날도 걷지만 눈이 오는 날보다 적당히 쌓인 눈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 보다 아무도 걷지 않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눈길을 나만의 발자국을 내며 걷는 기분은 성취감이랄까? 아니면 프론티어나 파이오니어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도 앞서 나가지 않은 미지(?)의 눈길을 헤쳐 나가다 보면 그만큼 눈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곳은 일부러 만든 허방다리는 아니라도 움푹 파인 곳을 거쳐 지나가며 뒤 따라오는 누군가에게 경종을 울려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도 든다.
열심히 걷다가 오던 눈길을 돌아본다. 그러고 보니 문득 눈길은 인생이고 삶 같은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살아온 발자취를 반추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아보니 내가 걸어 온 눈길이 곧지만은 않다. 비뚤 배뚤 지그재그다. 나름 똑바로 걸어 왔고 걸어 온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바른 길로만 살아 왔는지? 과연 내 삶이 정의로웠는지? 아니면 발자국에 파인 눈의 깊이가 다르듯 오만하지 않았는지? 때론 비겁하지 않았는지? 똑 같이 걸어 온 눈길이건만 보폭도 다르다. 서둘다 미끄러지기도 뛰다가 넘어지기도 그리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기도….내가 걸어 온 눈길에 내 인생의 희로애락과 길흉화복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저만큼엔 이미 누군가가 앞서간 발자국이 어지러이 남겨져 있다. 세상은 혼탁한 것. 순백의 눈도 마냥 지고지순한 것만은 아니다. 앞서 간 사람 뒤따르는 사람들이 어지럽힌 탓이다. 돌아보면 굴곡진 삶이기도 하다. 바른 길 정의로운 길만 온 것은 아니지만, 오만하고 때론 비겁했지만, 넘어지고 일어나며 살아온 길, 이런저런 무리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혼탁하고 굴곡진 세상을 살아 왔지만 아주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고 이만큼이라도 내 삶을 지켜온 나 자신이 부끄럽지만은 않다.
자화자찬이 아니다. 눈길을 돌아보며 내 삶을 반추할 만큼 성장이 아닌 그 사실에 수긍할 만큼 이 자리에 서 있는 내가 대견 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 자식들이 그리고 자식의 자식들은 나 보다는 더 똑바로 눈길을 걸었으면 한다.
이 길은 전인미답의 길을 내 혼자 며칠을 걸었다. 아무도 걷지 않는 농로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발걸음도 똑 바르지는 않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똑 바른 줄만 알 거다.
내가 걸오 온 길이라고 바르지 않다. 어지러운 발길들이 마치 혼탁한 세상 같다. 원래 세상은 순백한 것이었지만, 저 순백한 세상을 인간들이 어지럽힌 것이다. 세상이,삶이 모두 바르고 정의롭지만은 않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그게 인간의 삶이다.
어제도 걷고 또 걸었다. 이젠 병들어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걸을 것이다.
데레사
2017년 1월 19일 at 8:55 오전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제목의 책도 있어요.
참 잘 하십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건강 유지에 제일 좋은 운동입니다만
미끄러울때는 조심하세요.
ss8000
2017년 1월 19일 at 9:42 오전
아! 누님! 그런 책도 있습니까?
저는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수저들 힘만 있으면 무조건 먹어라!
병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먹으면 살고 안 먹으면 죽는다. 라고 해 줍니다.
사람이 죽으면 숫가락 놓는다고 합니다.
숫가락 들 힘만 있다면 그것은 아직 살아 있음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