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본인의 썰 보다는 다른 이의 귀한 글을 올려 보겠다. 아래 글은 2010년8월 광복절 다음 날 쯤 올라온 조선일보 선우정 도쿄특파원이 쓴 칼럼이다. 난 이 칼럼이 너무 좋아 무슨 가보처럼 글 모음에 보관해 두고 있다. 글을 쓴 선우정 특파원은 귀국하여 현재 논설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선우정 논설위원이 내가 옛날 존경심을 금치 못했던‘선우휘’선생과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선우휘 선생’만큼 세상을 바로 본 칼럼이다. 아직도 그의 칼럼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필칭 정론직필이라고들 하지만 이런 게 진정한 정론 직필이다.
제목: [특파원칼럼]일본열도10만㎞
작은 기록을 하나 세웠다. 5년 전 일본에서 산 자동차주행거리가 지난주10만㎞를 넘었다. 홋카이도 북단에서 가고시마 남단까지. 찻길이 없어 항공편을 이용한 오키나와를 포함해 일본47개 광역자치구를 빠짐없이 돌아봤다. 틈나는 대로 돌다보니 제법 두꺼운 여행일기가 생겼다.
전국여행을 결심한 것은 일본 부임8개 월 뒤인2006년2월 시마네(島根)란 곳에서 였다. 시마네현이 제정한’다케시마(독도)의 날’1주년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다. 일본의 시골이었다.”시골사람들이 무슨 영토 불평이야….”이런 기분이 앞섰다. 작은 시골의 퍼포먼스를 취재하러 온 기자 자신도 솔직히 한심했다. 하지만 기사만큼은 세게 보낸듯하다. 한국의 독도 영유권이 당장 위기에 빠진 것처럼….
타지에 가면 밤이든, 새벽이든 운동삼아 동네를 뛴다. 시마네현 마쓰에(松江)시에선 새벽에 뛰었다. 한참을 뛰다가 방향을 잃었다. 개천가 서민동네에 잘못 들어갔다. 하지만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보도블록 한 장 엇나가고 울퉁불퉁한 것이 없었다. 쓰레기 하나 굴러다니지 않았다. 허름한 목조주택은 쓰러질 듯 했지만, 깔끔히 정리돼 있었다.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는 화단에 물을 주고, 이웃 할아버지는 골목을 쓸었다.
일본 시골의 서민동네가 그렇게 깔끔했다. 동네를 빙빙 돌았다.”일본에서 무엇을 보고, 한국에 무엇을 전해야 할까?”’다케시마의 날’을 기념하는 소수의 시마네 보다 밑바닥까지 성실한 다수의 시마네가 더 절실히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전하지 못했다. 정돈된 골목, 부지런한 노인이’다케시마’로 흥분한 한국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 괘씸한 일본일 뿐이다.
시마네 골목에서”일본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여행을 시작했다. 어디를 가나’멋진 일본’과’나쁜 일본’이 교차했다. 교토 히가시야마(東山)의 멋진 문화유산 뒤에는 한국인의 귀무덤이 있었고, 나가사키의 장대한 산업유산 뒤에는 한국징용자의 유골이 묻혀있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아리타(有田)도자기 마을의 사찰은 끌려온 한국인 도공의 한(恨)을 달랬다. 일본은 땅 전체가’시마네’같았다. 감동과 분노가 오락가락하는….
하지만 줄곧”일본은 큰 나라”란 생각을 했다. 타국에 기대지 않아도 홀로 생존할 수 있는 땅이었다. 지역 반목도 없었다. 국민은 성실했다. 메이지(明治)유신처럼 국가시스템을 바꾸면 언제든 대국이 될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일본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100년 전 상처받은 국가의 영혼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일본열도를 달리면서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보고, 단점보다 장점을 챙기는 것이 우리를 위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과거에 대한 분노를 거두면 수많은 장점이 부각되는 나라가 일본이다.일본의 장점을 배울수록 우리가 강해졌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섬나라 일본은 비뚤어진 역사관을 가져도 존립할 수 있지만, 문명과 세력이 교차하는 반도(半島)한국은 과거에 집착하고 이웃과 반목 할수록 국가 기반이 허물어진다. 100년 전에도 그랬고, 10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특파원 생활을 연말에 끝낸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에서10만㎞여행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아래는 그 칼럼을 읽고 난 나의 사족이다.
이 칼럼의 소제가“일본교토 여행중 나를 분노하게 만든’한국인귀무덤’이었습니다. 도쿄특파원이 분노했다는 대목의 소제만 보고 그 분노의 원인을 알아보고자 본문을 클릭했고, 그런 속에서 그 분노의 원인에 대한 또 다른 분노를 폭발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엊그제가 광복절입니다. 요즘 사람들 특히 좌경빨/갱/이들은 일본을 무조건 혐오만 하면 지식인이고 애국자인양 합니다. 그리곤 분노를 마구 합니다. 특히3.1절이니 815니 하는 때면 그런 혐오와 분노를 더욱 가열차게 뿜어냅니다. 물론 독도 문제라던가 지난 날 아직도 앙금처럼 남아있는 강점기시절의 사과 등의 문제로 우리의 공분을 사고 남는 일본의 행태가 있긴하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고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요?
솔직히 분노를 아무리 활화산처럼 내뿜어도 일본열도와 일본인은 전혀 관계가 나이데쓰입니다. 분노를 보내기 전 그들을 향해‘요오씨~!우리도 언젠가 너희만큼 살아 보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무조건 분노만하고 욕지거리만 보낸다고 그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분노는 마음 한구석에 두고 그들의 장점을 배우자는 겁니다. 저는 일본의 국민성을 볼 때마다 초한 시대의 한신을 떠 올리곤 합니다. 2차 대전의 패망으로 미조리함상에서 항복조인식을 하며 고개를 꺾었지만 그들은 오늘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광복을 맞았다고 기고만장 했던 우리는 어땠습니까.
분노 속에는 어떤 다짐이 필요한 것입니다. 분노를 분노로만 승화시키면 한.일은 없고 원수만 되는거죠. 일본의 질서 일본의 인내심 그런 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덕목입니다. 그런 게 있어야 극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젠가 그제 일본을5-10년 사이에 따라 잡을 수 있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그 따위 숫자 놀음에서 따라잡고 이겨본들 참극일은 아닙니다. 부처님 같고 공자님 같은 얘기지만, 진짜 그들을 이기기 위해선 분노 뒤의 다짐과 그들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배우는데 있습니다. 특파원의 느낌대로 분노는 하되 감동을 할 것은 해야합니다. 그 게 일본처럼 또는 일본을 이기는 겁니다. 일본의 감동을 못 느끼고 배우지 않고는5-10년에 일본 따라잡겠다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