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주위가 시끄러운 것 같기도…무슨 악몽을 꾸고 있었다. 악몽을 꾸면서도 이건 꿈이다 빨리 깨어야지….하는 경우가 있다. 비몽사몽간에‘응! 오빠! 아빠 지금 주무시는데…’하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잠결에“왜 그래!?”그러자 딸아이는 소신이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아! 오빠! 아빠 일어나셨어..”그리고 희미한 수면 등불 아래로 제 핸드폰을 내밀며“아빠! xx오빠야!!”
xx오빠라는 놈은 나의 생질 즉, 재작년에 이곳 천등산에서 암치료를 한다며 정착하러 왔다가 무슨 속셈인지 서방(매형)만 남겨 둔 채 서울로 올라가 1년도 채 못 되어 죽은 큰누나의 아들이다. 결국 내 딸아이와는 고종사촌 관계이고 그 놈 입장에선 외사촌 관계이다.
시간을 보니 캐나다 현지시각으로 정확하게 새벽1시였다. 놈이 얼마나 다급했으면…하긴 그런 거 따질 계제(階梯)나 예의도 없는 놈이지만 그 시각에 전화를 다했을까. 전화통화를 안 해도 집히는 데가 있고 왜 전화를 했는지 알겠다.
여하튼 누나 부부는 젊은 시절부터 이름만 부부였지 각각 따로 노는 따로국밥이었다. 매형은 천애고아였다. 머리가 좋았는지 KS출신이었고 평생 무슨 출판업을 한다며 떠들었으나 항상 궁핍했다. 그런 매형을 아버지 어머니는 시집식구가 없어 시집살이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시켰는데, 시집살이 대신 미용기술이 있던 누나가 살림살이를 전적으로 맡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운명적이었다. 시집살이 대신 살림살이가 버거웠을까? 무슨 구원을 얻겠다며 종교에 심취 했는데 이게 사회에서 떠드는 이단이었다. 누나는 그것에 심취하고 빠져 들었다. 이른바 광신도가 된 것이다. 자식도 남편도 눈에 없었다.
부부사이엔 원래 아들 둘을 두었어나, 제 아비를 닮아 머리가 좋았던 작은 놈은 명문대를 나와 재벌기업에 취직도 하고 전도가 양양해 보이더니 직장생활 3-4년 만에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뜨고 한 줌 재로 변했다. 그런 아들 주검 앞에서도 하느님이 귀한 데(광신도들의 이 말 뜻을 나는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쓰려고 데려 갔다며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던 독종이었다.
살림살이를 맡았던 누나의 광신적 행동으로 집안은 개판이 됐고 아들 두 놈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다. 특히 캐나다로 전화를 한 생질 놈은 천방지축으로 살았다. 가끔 만나도 대가리 숙이며 인사하는 걸 못 봤다. 늘 소 닭 보듯….그럴 때마다 누나에게‘애 새끼 가정교육 더럽게 시키네..’라며 지청구를 보냈지만 히죽이 웃고만 만다. 하긴 그게 누나만의 책임은 아니란 걸 나는 안다.
그랬던 누나가 위암이란다. 수술을 않고 기도로 고쳐 보겠다기에 마뜩치는 않았지만, 그럴 거라면 산수경계 좋은 이곳으로 오라고 종용을 했고…. 이곳 면소재지의 교회를 다녔지만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종의 종교관 때문에 도저히 있을 곳이 못 된다고 그렇게 매형만 남겨 둔 채 누나는 상경했고 8개월 만인가? 역시 한 줌의 재로 변하여 하느님의 부름과 역사에 부응했는지 아니면 근 10년 전 먼저 간 작은아들 곁으로 갔는지….
누나 내외가 이곳으로 내려 올 즈음 장모님도 와 계셨다. 누나가 이곳을 떠나자 아래 채 반을 나누는 공사 끝에 뒤쪽은 매형 앞 쪽은 장모님 그렇게 이곳 생활이 시작 되었다.
사돈지간인 두 양반 다 별났다. 겉으로는 예의를 지키는 듯 했지만, 장모님은‘뒷방 늙은이 서울로 빨리 올려 보내’라며 압력을 넣기도 때로는 시위를 했고, 매형은 아침부터 눈을 뜨면 소주 한 병은 마셔야 하는 등 하루 3-4병의 소주가 필요한 중독자였다.(그렇다고 주사를 부리거나 깽판을 치는 것은 아니었다. 술이 들어가야 정신이 맑아지는 듯….)
80 다 되가는 매형이 매일 소주3-4병을 마셔 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리가 붓고 복수가 차고…간경화라고 했다. 한 달에 두세 번 약을 타러 간다며 서울을 다녀오곤 했다. 약 먹고 술 먹고….아니 술로 약을 먹었다고 봐야 한다.‘그렇게 술을 잡수면 약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지만‘의사 선생이 괜찮다’고 한다며…..가끔 의사들은 죽을 날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게 하고 싶은 거 죽기 전 실컷 하라는 심정으로 그런 얘기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겁이 덜컥 났다. 저러다 죽으면 그 뒷감당을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하루는 아래 채 툇마루에서 장모님과 매형이 함께 도란도란 얘기(겉으로는 두 분 다 오누이처럼 대화를 자주 나눴었다)하는 모습을 보자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정답게(?)살면 될 것을 장모님은‘뒷방 늙은이 타령’을 하는 게 화가 났던 것이다.
장모님께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이렇게 사시면 될 걸 왜? 자꾸 매형에게 방을 빼라고 하세요!?’라는 식으로….나의 시비에 장모님도 매형도 함께 뜨악했다. 그 다음날 몹시 화가 난 것처럼 매형에게 달려가‘여태 말을 안 해서 그렇지….매일 장모님 등살에 힘듭니다. 그러니 방 좀 비워주세요’그리고 허름한 단간 방 보증금과 이사비용은 내가 대주며 매형을 쫓아내다시피 서울로 올려 보냈던 게 작년8월이었다.
이사하던 날 생질 놈은 첨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다. 소소한 이삿짐은 제 차에 싣고 매형을 태우러 온다는 전갈을 받았었다. 어차피 이삿짐센터를 통해 하는 이사이기에 이삿짐을 싣는 동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떤 일인가에 매달려 일을 하고 아래채에 내려가 보니 이삿짐도 차도 없다. 머리가 띵 한다. 배신감이 확 든다. 이런! 개 같은…. 듣는 사람 없건만 거친 내 입에서 육두가 튀어 나온다. 그리고 매형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섭섭해도 그렇지…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따지듯 울분을 토하듯 전화를 했다. 달리 전화한 게 아니었다. 이사비용 사글세 보증금을 대 주어서가 아니다.
데레사
2017년 4월 6일 at 8:42 오전
매형분 돌아가신 겁니까?
아들이 새벽에 해외로 전화까지 거는걸 보면요.
왜 이런 쪽으로 생각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새벽전화라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 같아요.
ss8000
2017년 4월 6일 at 8:21 오전
네, 돌아 가셨어요.
제가 캐나다 있는 동안…
그렇게 살다 갈 거를,..,.
술로 인생을 보냈습니다.
그냥 죽은 게 아닙니다.
비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