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우리 매형(2부)

생질 놈 장가갈 때 돈 좀 꿔 달라고 왔었다. 몇 백만 원이 아니었다. 내 돈 꿔가고 갚은 친. 인척 한 사람도 없었다. 내 돈은 票퓰리즘에 물든 정부 돈 같은 거였다. 꿔 가는 놈이 임자.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고, 그래서 그리 못하는 대신 부조금 기백을 매형 손에 쥐어 주었다. 물론 형식적인 부조는 따로 하고… 워낙 혈혈단신이라 폐백 받을 친. 인척도 없다. 외삼촌 되는 우리 부부가 폐백을 받았다. 미우나 고우나 누나의 자식이고 생질이 아니던가.

그랬던 놈인데…제 아비어미 이곳에 내려오고 얼굴 한 번 안 비친 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으면 하다못해 형식적인 인사‘그동안 아빠를 또는 엄마를….’하는 식으로 인사 한마디는 있었어야 했다. 아니 그런 공치사 보다 그냥 대가리 한 번 숙이며 가겠다는 인사만 했어도….두 부자가 도망치듯 떠난 그날 내가 매형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애 새끼 버르장머리 참 더럽게 가르쳤습니다.”였다. ‘캬캬캬…..(뭐 좀 곤란하거나 계면쩍으면 짓는 매형 특유의 웃음소리…)미안해! 내가 워낙 바빠서…캬캬캬..’워낙 바빠서??? 그런 반응에 말을 더 붙였다간 내가 미 친 놈이 될 것이다.

조지장사기명야애 인지장사기언야선(鳥之將死其鳴也哀; 人之將死其言也善)이라는 말이 있다. 그 후 이곳을 떠난 매형은 이곳이 그리웠던가 보다. 가끔 전화를 해서 이곳 동정과 특히 자신을 쫓아내다시피 한 장모님의 안부를 물어 오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황을 얘기한다.“나 요즘 많이 울어…자네 누나 그렇게 떠나보내고 좀 잘해 줄걸…”하며. 즉은, 새가 죽을 땐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땐 그 말이 착하다. 매형의 그 회한에 찬 듯한 착한 말에, 누나는 이미 한 줌의 재로 변했지만 고맙기만 했다.

지난달 11일 장모님이 가셨다. 그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아 매형에게 전화를 했다. 매형은 깜짝 놀란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장모님 살아생전 죄송했었다며 사과도 드리고 말끝에‘장모님 아니 계시니 이제 이곳으로 다시 내려오시는 건 어떤가?’타진을 해 봤다. 아무 말 않는다. 느낌에‘왔으면…’하는 것 같다. 아무튼 이만저만한 일로 캐나다에 약 보름 정도 머물 것이며 다녀와서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는 인사로 전화를 끊었다.

장모님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를 지내고 그 다음날인 16일 나는 캐나다로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새벽1 시에 캐나다로 전화가 온 것이다. 안다. 왜 그런 시간에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는지….음~! 매형이 갔구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판단이 왔다.

놈은 도무지 연락을 취할 데가 없었을 것이다. 외삼촌 외숙모 따위의 전화번호를 알 리가 없었을 것이다. 놈의 인생 어디 바늘구멍 같은 장소에도 우리 내외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너 한 테로 전화가 다 왔냐?’라고 신기해했다. 캐나다에 있는 딸아이의 전화번호를 안 것도 아주 오래 전 우연히 길거리서 만났는데 그 때 전화번호를 서로 교환 했다는 것이다. 어지간히 다급했던 놈은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던 것이고.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매형 장례식 치르자고 귀국할 수도 할 입장도 아니었다. ‘너! 니 외숙모 전화번호 알아!?’당연히 모를 것을 알고도 채근을 했다. 그리고 아내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내가 지금 전화를 해 둘 테니 잠시 후 전화를 하라고 했다. 당연히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덧붙여‘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부의금’을 당부도 했다.

귀국하기 이틀 전에 모든 절차는 끝이 났다. 매형은 누나와 함께 모셔졌단다. 솔직히 이날까지 아직 찾지 않았다. 돈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캐나다까지 다급하게 전화를 했던 놈이 장례가 끝났음에도 전화 한 통 없었다는 것이다. ‘부모가 돼서 아 새끼 버르장머리 더럽게 가르치더만…’캐나다 현지에서 한 밤중 잠깨어 통화를 끝낸 후 큰딸아이 앞에서 읊조린 말이다.

매형의 죽음에 대해 마누라의 전언이다. 캐나다로 출발 전 내가 이곳에 다시 내려올 의향이 없느냐고 전화 했을 때 매형은 복수 찬 것도 가라앉고 요즘은 식욕도 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약간 취한 듯한 목소리였다 혀가 말리고 말도 어눌한 듯한….“매형! 아침부터 또 술 드셨죠?”,“아니야! 캬캬캬….”,“아니긴 뭐가 아녜요? 술 취한 거 같은데…”그 때서야 매형은 정말 조금 마셨다며 변명을 한다. 그리고 또 예의‘주치의가 조금은 괜찮데…“라며 궤변을 널어놓았었다.

어찌 운이 좋아 임대아파트에 당첨된 생질 놈은 제 아비에게 용돈이나 생활비를 줄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매를 두었으니 그 아이들 간수하고 보살피기도 벅찰 것이다. 아비가 간경화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게 자식 된 도리로 자주 찾아 봬야겠지만 저 살기도 바쁜데…그래서 가끔씩 전화를 드렸단다.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더라는 것이다. 외출도 할 수 있을 것이고…다음날 또 전화를 했으나 또(이미 배터리가 방전 된….)통화불가. 병원에 가셨겠지….다시 다음날 또.. 놈은 그때서야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느끼고 제 아비 사는 곳(성남 모래네 시장 근처)으로 달려가 방문을 열어보니 악취… 언제 숨이 끊어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독거노인의 죽음에 대해 많은 뉴스를 보았지만, 매형이야 말로 독거노인의 비참한 죽음을 맞은 것이다. 부보 자식 간에 보다 끈끈한 정이 있었더라면 아니 아 새끼 버르장머리 첨부터 잘 길들였다면…자식 놈은 부모 할 탓이다. 부모가 부모 노릇 제대로 못하면 그렇게 부패 된 주검으로 자식을 맞는 것이다. 그것은 팔자나 운명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저지른 자업자득. 자승자박. 자취지화인 것이다.

 

2 Comments

  1. 김 수남

    2017년 4월 7일 at 8:11 오전

    네,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소식입니다.연이어 장모님도 매형분도 떠나셨군요. 살아 계실 때 선생님께 많은 어려움을 주신 분들이시지만 이 땅에서 이별은 많은 회한이 또 계시니까요.장모님과 친척 분들께 늘 최선을 다하신 선생님이시니 그 분들도 떠나셨지만 많이 감사해하실거에요.생질께서도 아마 표현은 못하지만 분명 외숙부님과,외숙모님에 대한 감사도 살아가면서 알게 될거에요.속히 형편이 잘 펴져서 감사한 분들을 찾아 돌아 볼 수 있는 생질님의 삶도 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을 통해 섬기며 사랑하며 사는 법을 주변 분들도 잘 배워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가족 분들께 위로를 전해드리며 늘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 ss8000

      2017년 4월 7일 at 8:40 오전

      과찬이십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가정교육에 공을 들였더라면
      저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수남 님께서야 전혀 상상이 안가는
      교육이니….

      아무튼 누나고 매형이고 지나치게 아이들을 등한시 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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