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모세의 기적.

충북 청주의 한 터널에서 양수가 터진 임신부를 태우고 달리는 구급차를 위해 차량들이 일제히 길을 비켜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당시는 퇴근 시간이어서 차량들로 터널이 꽉 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충북 증평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5시40분쯤 증평군 증평읍에서 임신부 A(33)씨의 양수가 터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는 A씨를 태우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청주 병원으로 향하던 구급차가 상리터널에 접어들어 사이렌을 울리자 편도 2차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이 지역은 출퇴근길 상습 정체구역이지만 임신부를 위해 운전자들이 길을 터준 덕에 구급차는 25분 만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A씨는 아이를 무사히 순산한 것으로 알려졌다.(하략)

이 뉴스는 어제 KBS 충북 뉴스시간에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다. 그 정도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조선일보 전국 판(?)까지 보도 되었다. 그리고 기사 아래 달린 댓글 99%가 감동적인 얘기다, 눈물 난다, 가슴이 찡하다. 더 나아가 ‘민들의 민심은 이렇게 선량하거늘 청와대의 오만불손은 하늘을 찌를 듯 하니,,,’ 아니면‘정치인이 나라 말아먹는 짓거리해도 국민은 이렇게 따뜻한 마음 가지며 생활하고 있다.’ 등등. 정말 눈물 없인 못 볼 감동적인 댓글이 올라와 있다. 다만 나 자신만 감동적이지 않았기에 99%라고 하는 것이다.

근데 뭐지? 이거 당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임산부가 양수가 터졌는지 뇌졸중이나 심장 또는 어떤 중병에 걸린 위급상황의 환자가 있는지? 그거 알 필요가 있을까? ‘삐까~ 삐까’ 경적이 울리면 자동적으로 피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얼마나 그런 위급상황에 대처를 하지 않았으면‘모세의 기적’이라는 표현을 했을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다가 엉겁결에 행동하고 스스로 놀라고 얼마나 신기했으면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얼마 전엔 이런 뉴스도 있었다. 어떤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생이 음식 그릇을 찾으러 갔다가 손님의 배려에 감동한 사연이라며‘자신이 그릇 찾으러 갔다가 정말 감동 받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방학 기간에 알바 하는 청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제가 오늘 평소처럼 그릇 회수하러 갔다가, 깨끗하게 씻긴 그릇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연이 뉴스化 된 것이다. 역시 똑 같이 감동을 받았다는 댓글이 줄줄이 올라 왔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감동 받은 것은 기사 내용이 아니다. 감동이란 늘 행해지는 것엔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즉, 늘 행해져야 할 것들이 행해 지지 않다가 우연히 보거나 발견 했을 때 감동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감동을 받은 것은 바로 일본에 사신다는 재일교포분의 댓글에 감동을 먹었다. “일본엔 가장 기본적인 국민상식 입니다. 국민수준 인거죠!! 좋은 건 쫌 본 받읍시다!!”였다.

어쨌든 다행히도 양수가 터진 A씨는 감동적인 청주시민들의 협조로 아이를 무사히 순산했다니 감동은 감동이다. 그러나 당연히 행해 졌어야 할 것들을 우연히 행동하고 스스로 감동을 먹는다면 그것은 공치사고 자화자찬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 꺼리도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 개를 물면 이변이고 뉴스 꺼리가 맞다. ‘모세의 기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쪽 팔린다. 기적의 사전적 의미는 상식으론 생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누구든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을 두고 감동씩이나 먹고 기적(奇蹟)이라고 호들갑 떨며 공영방송 뉴스 꺼리고 1등 신문이라고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기사 꺼리가 된 것도 씁쓸하다. 그래서‘씁쓸한 모세의 기적.’이라고 해 보는 것이다.

3 Comments

  1. 김 수남

    2017년 4월 7일 at 7:54 오전

    네,정말 선생님의 말씀에 많이 공감이 됩니다.그런 중에도 조금 다른 생각도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에 표현이 지나친 면은 없잖습니다.캐나다에서도 너무도 기본적인 상식입니다.싸이렌이 울리면 모든 차는 길을 만들어 최대한 곁으로 비키며 모두 그 자리에 정지합니다.우선으로 갈 수 있게 하고요.

    ‘모세의 기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도 잘 하고 있는 중이겠지만 퇴근 시간에 평소에 너무도 정체가 심한 그것도 터널 안에서의 시민들의 동참이었기에 그런 표현을 했을 수 있다 싶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민 의식이 많이 나아지고 있기에 점점 더욱 자연스런 모습으로 정착되리라 기대됩니다.

    긴급 상황 중에서도 양수가 터진 산모의 이야기이고 아가가 무사히 잘 태어난 기쁨이
    ‘모세의 기적’이란 표현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쁜 미담은 그 어떤 일이든 뉴스마다 나눠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도 상식적인 일이지만 이런 뉴스를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는 충분히 잘 이해했습니다.
    말씀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캐나다 다녀가신 여독은 이제 다 잘 풀리셨지요?

  2. 김 수남

    2017년 4월 7일 at 7:56 오전

    선생님! 댓글이 안 올라가기에 몇차례 계속 클릭했더니 이렇게 한꺼번에 다 올라갔습니다.죄송해요.6개는 지우셔야겠습니다.감사합니다.

    • ss8000

      2017년 4월 7일 at 8:33 오전

      ㅎㅎㅎ.. 가끔 생기는 현상인가 합니다.
      자우느라 힘이 좀 들었답니다. ㅎㅎㅎㅎ….

      수남 님의 말씀에도 전적 공감합니다.
      다만 공영방송이 그런 뉴스에 지나치게 대대적으로
      보도 하기에 오히려 우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
      비위가 좀 상했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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