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별로 춥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추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독하게 더웠거나 추웠거나 그 당시의 혹독함을 어찌 다 기억할 수 있을까. 문득 사람 사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어찌 평탄하기만 할까.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인 삶에 혹서(酷暑)시기도 엄동(嚴冬)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至難)했던 시기나 시절을 어떻게든 버티고 지나오면, 별로 춥지 않았다거나 참을만한 더위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내가 그랬다. 내 인생에 사계(四季)가 있다면, 살기 좋은 봄. 가을은 아주 짧았거나 별로 느낌이 없었던 것 같다. 하던 일이 잘 되는가 싶으면 틀어지고 재기 했나 하면 다시 고난의 길로. 그럴 때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마누라와 아들딸 3남매가 올망졸망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덥거나 춥다고 나 하나 포기하면, 내 식솔들은 그나마 북풍한설이 몰아칠 땐 바람막이가 됐고 찌는 태양 아래 산(傘)이 되 주었는데…생각해 보면 뭐, 고급스런 표현으로 책임감(責任感)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무조건 살고 싶었다. 살아야 된다고 다짐을 했다.
각 가정엔 가훈(있는 가정도 있고 무시하는 가정도 있지만…)이 있고, 학교엔 교훈 그리고 직장엔 사훈이 있듯, 인간 개개인에게는 자신의 목표나 지침이 될 수 있는 금언(金言)이나 격언(格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맨토 한 사람쯤….
솔직히 당시는 전혀 몰랐다. 그가 나의 맨토가 될 줄은… 그는 외국인이고 어쩌면 적국(敵國)의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랬던 그가 언제부터인지 내 삶의 한가운데서 꿈과 희망 그리고 절대 포기 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스승이자 또는 지엄한 명(命)을 내리는 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가끔 꽁지머리를 하는 남자들을 본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예술(Art)계통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가운데도 산골이나 농촌에 사는 사람(예인)들이 주로 그러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산골짜기에서 이발소가 있는 시. 읍. 면으로 나가려면 불편하고 귀찮다. 나 자신도 산골로 온 후 그 귀차니즘 때문에 가끔 꽁지머리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뭐…내가 예인도 아니고.
날짜가 정해 진 건 아니지만 대충 한 달 한 번은 이발소를 간다. 그제도 이발을 했다. 산골 면소재지의 이발관이라는 게 그렇고 그런 재래식(?) 이발소지만 그런 속에도 아직도 옛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고수하는 시설물(?) 아니면 장식품이 있다. 조발 의자에 앉으면 정면 벽 위쪽에 스승님의 훈시(訓示)가 아닌 훈시(訓詩) 말씀이 걸려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푸시킨 스승님 지음-
내 삶이 고달플 때마다 전국 어느 이발관엘 가나 스승님의 말씀은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내가 그 고난의 길을 참고 버티며 살아온 것은 순전히 스승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켜온 탓이다.
언제 와도 좋은 봄(솔직히 게으른 농사꾼에겐 별로 이지만…), 금년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내가 스승님의 훈시(訓詩)를 가슴에 간직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봄날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매년 똑 같이 찾아오는 봄, 내 삶의 봄은 이렇게 왔다가 또 가고 있는 것이다. 떨어지는 꽃잎이 아쉽기는 하지만 내 인생의 봄날은 간다.
덧붙임,
젊은이들이여~!!!
재래식 동네 이발관에서 이발을 하라!!!
그대들을 빈기는 스승이 계실지니….
이곳 산골의 봄은 언제나 늦다. 다른 곳엔 벌써 개나리가 졌을 텐데…
봄이 오는 건 좋지만…아이고! 죽었다고 복창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지난 달 이곳에 장모님이 누워 계시던 곳이다. 드나들 때마다 스산하고 허전 해서 다알리아를…
매년 똑 같은 장면의 봄이 오지만 지겹거나 지루하지 않다. 지금은 꽃잔디가, 영산홍이 망울을 맺고 기다리고..
살구꽃
자두꽃
복숭아
배꽃
머위는 지천으로….올 핸 머위 짱아치를 만들어 봐야지….
집안에 봄이 완연 하다.
금년 농사(영농) 준비 완료. 시작해 보는 거야….
데레사
2017년 4월 22일 at 8:37 오전
집을 꽃대궐로 만들어 놓으셨으니 꽃놀이 갈
일도 없겠어요.
한 때 푸쉬킨의 저 시를 입에 달고 살은적도
있어요. 슬퍼하지도 노여워 하지도 말자고
다짐 하면서요.
ss8000
2017년 4월 22일 at 12:45 오후
농담이 아니라 저는 저 싯귀를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참고를 하며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요즘 젊은 아이들 특히 백수들이 한 번 쯤
읊조려 볼 만한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