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왜 약국에서 팔았는지 모르겠다. ‘요힘빈’, 수컷돼지 흥분제 말이다. 지금도 그것을 약국에서 파는지 아니면 처방전 없이도 매약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어떤 놈은 내 군대생활을 두고 겨우‘따까리’출신이라며 별의 별소리를 다하지만, 그래도 장군‘따까리’하며 배운 게 많았고 내 인생에 보탬이 됐으면 됐지 욕먹거나 폄하 받을 짓(?)은 아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되고 얼마지 않아 내게 주어진 업무는CP당번이었다. 이를테면 단위 최고사령본부의 심부름꾼(전령)인 셈이다. 모타리도 작고 볼 폼 없지만 부대의 높으신 분께서 똑똑하게 보셨던 모양이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사람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양반들 언제고 크게 되실 양반이다. 그 분 나중에 국방부 장관까지 하셨지만…CP당번을 반년쯤 했을까? 이번엔 장군님 숙소로 배치를 시킨다. 부대 앞이지만 영외거주를 하는 것이다. 가끔 외출 시에는 집에서 공수한 사복도 입고… 제법 호기도 부리던 시절도 있었다.
숙소에는 전문 요리 병(둘도 될 수 있었다), 행정차량 겸 작전차량 운전병 하나, 당시엔 자가용 운전은 병이 하는 게 아니라 하사관(중사급)이 했었지만 그는 열외, 그리고 장군님 수발을 드는 진짜 당번병 즉 따까리가 있었는데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았고 그가 나의 선임 격이 되어 장군님께 대한 의전교육을 가르쳤다.
‘권 병장’ 그는 고향이 여수라고 했다. 짙은 전라도 말씨에 비해 경상북도 영주 양반이셨던 장군님은 70년 대 초에 이미 영호남 갈등을 봉합한 분이셨다. 아무튼 내 선임‘권 병장’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내게 친절한 선임이었다.(권 병장은 내가 제대 후 내 직장으로 찾아와 취직 부탁까지 했지만 그럴만한 위치가 못 됐던 게 지금도 안타까웠다.)장군님 따까리를 하며 좋은 점은 필요시 3-4박 길게는 일주일 정도 임시휴가를 갈 수 있는 점이 좋지만 대신 정기휴가는 찾아먹기 힘들다. 장단점이 있었다.
어느 부대든 그렇지만 부대 앞에는 음식점, 주점, 중소형의 마트(주로 숙박업까지 겸하는…)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부대 정문을 벗어나 가장 큰 마트(물론 숙박업도 하는…)엔 과년한 딸을 둔 가게가 있었다. 상하 계급을 합쳐 웬만한 사병들의 공동‘장인어른’은 딸 단속을 열심히 하시는 분 같았다. 그럼에도 그 분의 딸은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권 병장’과 눈이 맞아 가끔 장군님 숙소로 놀러 오기도 하며 그 때마다‘아야! 오 일병 커피 좀 끌여 오더라고이~!’하면 하느님과 동창생인 권 병장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니 말씀하시기 전 나는 커피를 끓여 대령했었다.
‘권 병장’이 제대를 앞 둔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 그는 내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마침 내가 몇 박인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휴가를 갔었고, 귀대 길에 그 놈의 원망스런‘요힘빈’을 꼭 사오라는 명령이었다. 솔직히 요힘빈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 줄 알았다면 감히 살 수가 없었을 것이고‘요힘빈’이라는 단어만 알고 종로5가의 약국골목 어딘가에서‘요힘빈’약명을 대자 쉽게 내 주었던 시절이 있었다.
‘요힘빈’을 권 병장에게 넘겨주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느 날 마트의 딸내미가 또 숙소로 권 병장을 찾아왔었는데 그날따라 권 병장의 ‘아야! 오 일병 커피 좀 끌여 오더라고이~!’가 아니라, 일전 내가 사다 준‘요힘빈’ 한 알을 잘게 부셔서 커피에 타 오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어째서 그런 걸 시키는지 대충이 감이 잡혔지만 하느님 동창생 명령을 어찌 거역하겠는가?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그렇게 잘 녹지 않은 것으로 기억 된다. 괜히 내가 마음이 급해지고…약간 흰 덩어리가 있는 채로 다소곳하게 그 처자 앞으로 찻잔을 밀어 놓고 빠져나왔던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아야~! 오 일병 일로오이라이~!’말씀에 가봤더니‘아야~! 너는 어째 커피를 씹게(쓰게) 타와부렀냐?’ 그 말과 함께 내미는 커피 잔은 전혀 줄지 않은 커피 잔 그대로였다.
권 병장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 했는지? 감히 여쭙지 못했지만, 요힘빈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을 보면 그 처자가 녹녹치 않았을 것인데,,, 그 처자가 돌아 간 후 권 병장의 뒷 담화는 이랬다. 우선 하얀 알갱이가 떠 다녀 의심을 샀다는 것과 그래도 워낙 권 병장의 강권에 못 이겨 살짝 한 모금 했지만 그 맛이 굉장히 썼다는(안 먹어 봤으니 맛을 모른다.) 그래서 더 이상 마시지 않았기에 약 2년 간 벼른 자신의 원대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뒷얘기다.
18세의 치기 어린 시절‘요힘빈’의 힘을 어디까지 빌렸는지 알 수 없지만(알고 싶지도 않고…)요힘빈을 일반 약국에서 누구나 살 수 있을 만큼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치기어린 시절의 실수를 고해성사한 것을 두고 마치 성범죄자 다루듯 하는 게 과연 합당하고 옳은 얘길까? 그 시절은 그 시절이다. 시절은 지나가고 법이 자꾸 현 시절로 바뀌고 보완 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저지른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도 프랑스도 허리 아래의 일은…..입에 담지 않는다. 그런 게 문제가 될 정도라면…캐고 또 캐도 오히려 홍준표는 그것밖에 없는 청렴한 사람이다. 그만 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