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영(嬴)이요, 이름은 호해(胡亥)라, 진시황제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승상인 이사(李斯)와 씨 없는 환관 조고(趙高)에게 옹립되어 진나라 제2대 황제가 되었다. 사기에 이르면 시황제가 전국을 순행하는 도중 사구라는 곳에서 죽어가며 큰아들인 부소(扶蘇)에게 나라를 계승하라는 유서를 남겼지만, 조고와 이사가 그 유서를 날조해 큰아들 부소를 자살케 하고 호해를 황제로 옹립했다. 호해는 황제에 오르자 자살한 큰아들인 부소를 비롯해 24명의 친. 서 형제자매는 물론 개국공신들을 몽땅 죽여 버리는 악행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아비 시황제의 능묘와 아방궁, 만리장성 등 어마어마한 토목사업을 서두르며 그에 따른 부역과 과중한 징세로 민심의 빈발을 샀고 결국 이런저런 민란이 가속되며 종래 항우와 유방의 반란군에 관군이 패하자 자살로서 생을 마감하고 나라도 무너진다.
성은 조(趙)가요, 이름은 고(高)라고 했다. 환관이라 그런지 생몰연도가 불분명하다. 다만 진(秦)나라가 망한 해가 BC207년이니 그 해 죽은 것은 확실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간신배는 있겠으나 역사적으로 가장 두각을 나타낸 간신배가 틀림없다. 시황제를 따라 전국을 순행하던 중 황제가 병사하자, 승상 이사와 짜고 거짓 조서를 꾸며, 시황제의 맏아들 부소(扶蘇)와 장군 몽염(蒙恬)을 자결하게 만든 뒤 우둔한 막내아들 호해를 2세 황제로 삼아 마음대로 조종하며 국정을 농단하였다. 호해를 황제에 올리고 온갖 환락의 도가니에 빠뜨려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뒤 이번엔 교묘한 술책으로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한 원로 중신들을 처치하고 자신이 승상이 되어 조정을 완전 한 손에 틀어쥐었으나 중신들의 반감을 사자 어느 날 어전에 사슴 한 마리를 풀어 놓고 말이라고 우겨대자, 그것을 사슴이라고 곧이곧대로 말한 자를 역시 모조리 죽이는 악행을 벌였다. 이때 생겨난 말이 지록위마(指鹿爲馬)다.
결국 민심이반으로 천하의 군웅이 할거 하며 나라의 형세가 위태롭게 되자 호해를 모살(謀殺)하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嬰)을 옹립하여 진왕이라 부르게 했다. 그러나 곧 자영에게 3족을 멸하는 죽임을 당한다. 자영도 겨우 재위 46일 만에 유방(劉邦)에게 항복했고, 뒤이어 쳐들어온 항우(項羽)에게 잡혀 죽으며 진나라는 3대 15년 만에 멸망하는 비운을 겪는다. 이 모두가 어리석은 주인 한 놈과 지독한 간신 한 놈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그제 어제 청와궁에서 文씨 주최로 소위 ‘기업인과의 간담회’라는 것은 열며 대낮부터 음주 파티가 열렸던 모양이다. 간담회의 성과(?)는 차치하고 그동안 청와궁이나 文씨 주변에서 일어난 대소 이벤트성 쑈나 국정 프로모션을 기획하여 票퓰리즘의 극치를 진두지휘한 자가 다름 아닌 고교 때 여중생을 홀려서 거시기하고 머리가 굵은 후엔 매춘행위를 미화하여 자신의 경험담을 도서로 출판까지 한 某 의전담당수석비서관이라는 것이다. 청와궁 의전수석비서관이라는 위치는 文씨의 가장 지근거리에서 양손을 소매에 깃들이고 다소곳하게 시립하여 모시는 지난날 환관의 위치나 다름 아니다.
호해는 조고가 없으면 단 하루도 황제노릇을 할 수 없었다. 조고의 말이라면 X도 된장이 되고 된장도 X이 되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뿔난 사슴을 말로 둔갑시켜도 옳은 것으로 받아 들였겠는가?
진나라가 망하기 전, 문무백관 중 똑똑하고 충성이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 그러나 호해는 간악한 간신 한 놈에게 현혹이 되어 종래는 자신은 물론 나라를 망하게 했던 것이다. 언필칭 입만 벌렸다 하면 국민을 빙자하는 文씨가 아무리 유능해도 국민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그런 자의 기안 내지 초안으로 백주 대낮의 음주 파티를 연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국민정서에 위배 되고도 남는 것이다. 더구나 낮술 취한 놈은 애비 어미도 몰라본다는데…또한 안타까워 해 보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