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사령관님! 또 낚시질 가십니까?”, “일마야! 낚시질이 머꼬? 질이..??”그리고 장군님께서는 도둑질, 강도질, 오입질, 서방질, 간통질, 안질, 치질, 괴질 …. 등을 쫘~악 거론하시며“이노마야! ‘질’짜 들어가는 거 중에 존 기 머 있노? 낚시가 질 짜가 들어 갈만큼 나쁜기가?”장군님의 그런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할 말이 없었다.
암튼 장군님은 낚시 광은 아니셨지만 한 달에 두어 번 토요일 저녁이면 예하 부대가 있는 북한강 모처로 낚시를 가셨고 하룻밤을 꼬박 세우시고 귀가를 하셨다. 늘 그러하지만 낚시를 가시기 전 꼭 나로 하여 그 준비를 시키셨는데 장군님의 준비 명령이 떨어진 어느 날 그만 불만(?)이 쌓인 나의 돌발적 질문과 해답을 위에 표현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의 불만(?)은, 일요일 본부의 고참이나 졸병들과 군대축구로 막걸리 내기를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운전병은 고참 이라 차에서 디비져 자고 내가 장군님 곁에서 재미도 없는 장군님의 낚시질을 지켜보며 꼬박꼬박 졸다보면‘오 상병 이 놈 머하노?’라는 말씀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낚시 끝에 지렁이를 매달아 드리곤 했었다. 문제는 내가 비위가 너무 약해 지렁이 꿈틀거리는 거조차도 제대로 못 보는데 살아서 꿈틀거리는 그놈을 손으로 잡아 잔인하게 낚시 바늘에 꿰맨다니….그러나 어쩌겠는가? 지엄하신 장군님의 명을 어찌 거역하고 반하겠는가. 그러다 밤이 깊어지고 별빛이 더욱 찬란해지면‘고마 차에 가 자거라! 내 혼자 하꾸마!’그토록 인자하신 장군님이셨다.
언젠가 후임 병중에 프로기사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몇 단은 되는 바둑 잘 두는 졸병이 전입을 왔다. 장군님의 또 다른 취미는 바둑과 독서(고전병법, 사실 나는 사령관님 부재 시 사령관님의 그런 도서들을 가끔 도둑질 하듯 읽은 것들이 오늘날 썰을 풀며 인용한다.)이셨다. 그 친구는 한가한 주말이면(특히 낚시를 가지 못하는 동절기)장군님의 명에 따라 관사로 소위‘바둑 사역’이라는 걸 나오고는 했었고, 그 때마다 나를 포함한 따까리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부러워하며 자신도 그곳에서 근무했으면 부모님을 졸라 땅 뙤기를 팔아서라도 근무하고 싶다고 애틋한 눈길을 보내기도 했었다.
관사, 전방의 관사(공관)병은 거의 민간인이다. 휴가 또는 상급부대의 위수지역을 벗어나는 외박이나 외출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군복이 아닌 사복차림이었다. 심지어 사복을 입고 인근 도시(춘천)로 시장(식료품)을 보러 갈 때 부대 마크가 선명한 1호차를 타고 지나가면 앞자리에 장군님이 동승하지 않고도 헌병대 앞을 지나면 군대의 저승사자 같았던 헌병들이 거총을 해가며 경례를 보내는 게 너무 신나고 재밌어 어떨 땐 일부러 그 앞을 지나다니기도 했었다.(이것도 다 졸병 때 얘기고…)
매월 군대 봉급 날짜에(당시 병장 월급이 900원 할 때였다. 900원이면 PX에서 캔 음료 두세 깡통이든가? 그것으로 봉급은 날아갔다. 다행히 담배는‘화랑’담배를 이틀에 한 갑씩 지급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인사처에 가면 장군님 별도의 식비가 지급 되었다. 사실 그것으로 숙소에서 한 달을 유지해야 하지만, 본부의 중대장이나 인사계가 부식차가 올 때마다 적당량의 육류나 생선을 관사용으로 배급한다. 물론 이것은 장군님을 위한 것이지만 그것들이 장군님의 입이나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보장은 않는 것이다. 즉, 관사 병들에 대한 배려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관사엔 병참대대로부터 분기별인지 반기별인지? 석유가 1-2드럼씩 배정이 된다. 물론 관사의 석유곤로(취사용, 당시 관사는 화목을 땠음. 역시 적당한 크기로 잘린 것을 병참부대에서 공급해 주면 그것을 도끼질 하는 것은 관사 병들의 몫이었다.)용이다. 석유가 배정되는 날이면 인사계나 본부포대장이 기별을 보낸다. 물론 10L나 20L 정도 준비를 해 둔다. 상부상조(?)인 것이다.(만약 모자라면 병참부대에 한 번은 더 사정할 수 있었기에…)
전생에 고승은 아니더라도 어떤 절간의 불목하니 정도는 되었는지 워낙 비린 걸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군에 입문하기 전 논산훈련소엘 가면 예비연대라고 하여 훈련병이 되기 전 장정(壯丁)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기초정신무장 시키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보름을 묶었다.(당시는 이마저도 군복무에 들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식사가 평생 보도 듣지도 못한 생선국이었다. 갈치, 도루묵, 꽁치…등등 이름만 들어도 비린내가 날 듯 한 생선들이 국으로 나왔다. 잘 양념 된 찌개나 구이도 뭣할 판에 그냥 대충 끓인 국이라니…. 도통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 지나니 소위 사회(집)에서 찌워 둔 뱃살이 등가죽과 붙을 지경이 되니 비린내고 뭐고 간에 배가 고파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속으로 햐! 군대 와서 생선을 다 먹고 나쁜 버릇 고쳐간다…고 생각하며 좋아하며 역시 군대는 사람 되게 하는 곳, 인간 개조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관사로 배치되고 장군님 따까리를 하다 보니 나 먹고 싶은 것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다 보니 사회에서 찌들었던 병폐 따위는 버릴 기회가 없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까운 생각이 든다.
덧붙임,
내가 왜? 이런 잡썰을 널어놓을까? 소위 따까리 병으로 근무한 인간들은 병역의무를 치루며 누구도 누리지 못한 혜택 그것도 특혜를 누린 천운을 타고난 인간들이다. 니들 소위 숙소에서 장군님 또는 지휘관과 그 아내들에게 수모를 당했다고 하지만, 너희들 수모 당하는 그 시간에 다른 병사들은 군대 말로 조뺑이 치고 꼬질대 부러지 있는 걸 모르냐? 부대장 밭에 잡초 좀 뽑기로니…골프. 테니스. 과외 사역 나가면 맨손 맨입으로 보내디? 하다못해 가정식이라도 한 끼 안 먹여 주디? 골프고 테니스고 사역하며 오히려 녹슬지 않은 게 다행 아니냐? 수학인지 영어인지 아니면 국어인지 대갈빡 녹슬지 않게 해 준 공로는 잊고, 이 노무 새끼들 군기가 빠져서 주디 놀리는 거 하고…. 주디를 고마 확 찢어 놔야 할까보다. 이런 심약한 놈들이 전쟁 일어나면 지가 모시던 부대장 쏴 죽이고 착검 대신 하얀 난닝구 벗어서 적에게 항복할 노무시키들….
甲질 보다 더한 甲질이 뭔지 아냐? 그건 바로 꼴甲질이라는 거다. 참…꼴甲질 하는 거도 아니고… 하 답답하고 울분이 터져 해 보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