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골 날씨가 조석으로 제법 차다. 해서 새벽잠에 깨면 시간 또는 시간 반 정도 보일러를 가동시킨다. 원래 화목 보일러와 기름보일러를 병용했지만, 매년 겨우내 15t~20t 정도의 화목을 자르고 패느라 동절기만 되면 양팔에 통증이 심했다. 70나이에 전원생활 즐기겠다고 산골에 들어 왔다가 오히려 육체에 고통이라니, 도저히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아 작년 이른 봄 화목 보일러를 팰랫 보일러로 바꿨다. 그리고 올 초여름까지 그렇게 사용해 왔는데…
그동안은 기름보일러로 초가을의 냉기를 수습해 오다가 며칠 전 지금까지 가동하지 않았던 팰랫 보일러를 시험가동 해 보았더니, 너무 오래 쉬게 했던지 뭔가 접속이 제대로 안 된다며 요란을 떨며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겨울은 다가오고… 급히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하고 AS직원을 요청했는데 다행히 친절하게도 서비스 직원이 전화를 하고 올 것이란다.
무겁고 간푸기만 할 뿐 또 마누라와 주로 통화하는 것 빼고는 전화가 많이 오지 않기에 평소 외출 시에 전화를 잘 휴대 하지 않는다.(혹시 나를 아시는 모든 분들께서는 오해 마시기 바란다. 전화를 제 때 안 받더라도 그런 사정 때문에…)또 다른 이유는 애나 어른이나 전화기에 대가리 박고 돌아 다는 게 정말 마뜩치 않다. 그 놈의 전화 없을 땐 어떻게 살았을까? 아무튼 이런저런 소관(所關)을 보고 집에 돌아와 전화 온 곳을 점검하고 해 줄 곳은 하고 무시할 곳은 무시하고…
요즘 산골은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나 역시 고추 마지막 수확과 그 뒤처리 그리고 밤 및 고구마 수확을 해 나가고 있다. 어제는 수확이 끝난 고추밭의 멀칭 비닐을 거두는 작업을하기로 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보일러 AS기사가 언제 어느 시에 전화를 할 지 몰라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휴대하기로 했다. 그리고 작업복 바지 주머니에 그 놈을 넣고 일을 하는데 밭고랑을 몇 차례 오가다 보니 무겁고 거추장스럽기 시작한다. 더구나 아침이슬을 잔뜩 머금은 비닐을 걷어내자니 작업복이 젖어 들어오며 호주머니까지 젖었다. 퍼뜩‘전화기 물 먹으면 안 된다던데..’하는 생각이 들었고 전화기를 둘 적당한 장소를 찾았지만, 작업현장은 가을 땡볕이 내려 쪼이는 곳 뿐.(비록 커버가 있지만 직사광선도 나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 이 놈을 어디다 둔다? 사방을 둘러봐도 마땅한 곳이 없다. 그런데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곳이 있다. 바로 밭둑에 세워둔 화물차 바퀴다. 그늘지고 그곳이라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실행에 옮겼다. 운전석 앞바퀴에 놈을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나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뒷집 최공 아우님이 내가 혹시 뙤약볕에 변고나 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올라오는데 그의 손엔 토스트와 음료수가 들려져 있다.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토스트와 음료수를 마시며 이런저런 농담 따먹기를 하고 최공 아우님은 물러가고 대충 1시간여 만에 모든 작업을 끝내고 수거한 비닐을 싣고 적치장으로 출발을 했다. 이어 마을 적치장에 비닐을 버리고 돌아서는 그 마음 한 구석이 왠지 허전하고 쓸쓸하다. 갑자기 마누라가 보고 싶은가? 아니면 내가 가을을 타나??? 이번 토요일은 내가 서울 집으로 가기로 했는데…이 나이에 가을을 타다니…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뭔가 잊어 먹은 것 같은….
아차! 전화기. 화물차 앞바퀴에 올려놓은 내 전화기. 급히 조금 전 작업을 했던 고추밭으로 차를 돌리며 온갖 생각이 다 든다. 하필이면 앞바퀴에..차라리 뒷바퀴였다면 희망이 있을 텐데, 마누라와 매일 점심때쯤‘밥 먹었냐? 밥 먹어라!’라며 서로 안부전화를 주고받는데 어쩌지?, 무엇보다 오늘 보일러 AS기사가 오기로 했는데..그 때문에 전화기를 휴대 했었는데…최악의 경우 칩이라도 살릴 수만 있다면…다른 거 보다 친구. 친지. 지인들의 전화번호 특히 조토마 이활 선생 주춘경 선생 그날은 어찌 되려고 그랬는지 김윤길 화백과 밭에서 화상통화까지 했는데.. 등등 1톤 화물차 바퀴에 박살이 난 전화기를 상상하며 급히 올라가는데 저만큼에서 최공 아우님이 나의 다급한 모습을 보고.. 정황설명을 하고‘칩’은 살릴 수 있을까? 물었더니 그 정도는 가능하다는(원래 공기업 IT업계 밥을 먹다가 은퇴한 양반)대답을 듣고 드디어 현장에 도착했다. 찾고 말고 할 필요도 없었다.
곧장 차를 세워 두었던 곳으로 달려가 본즉, 전화기가 있다. 그런데 분명 바퀴자국이 있음에도 박살이 나지 않았다. 바퀴자국을 바지에 쓱쓱 문지르고 커버 뚜껑을 열고 작동을 해 보니 전화기는 살아 있다. 입이 문재인씨 부부 입만큼 찢어진다. 문득 다른 생각은 안 들고‘이래서 삼성인가?’하는…세상에 자동차 바퀴에 갈리고도 전화기가 멀쩡하다니… 세상에…
이게 오늘날 대한민국 국부의 으뜸을 차지하는 삼성의 기적인가? 기술인가? 기적도 좋고 기술도 좋다. 삼성의 총수나 다름없는 이재용이 구속재판 중이다. 풀어 줘라! 죄가 어떤 것인지 확실치도 않으며 구속재판은 가혹한 처사다. 설령 죄가 있어도 그가 그들이 국가에 이바지한 공로를 감안해서 풀러 주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또 다른 기적이든 기술이든 만들어 내지 않을까?
고구마 몇 줄 캐 보았다. 전문 농사꾼이 아니라 작황은 별로다. 그래도 여름 내 나의 땀이 일궈 낸 역작이다.
고구마 밭 옆에는 큰 밤나무 한 그루가 있다. 물론 내 소유다. 밤송이 채 주워와 까보니 제법 된다.
고추밭의 비닐 멀칭을 걷어서 폐 비닐을 적치장에 보내는 작업을 며칠 했다. 며칠 전 사진….
바로 이 놈이다. 먼지며 눌린 자국이 선명하다. 다행히 바퀴 아랜 게을러서 제초작업을 않은 잡초가 무성했지만…그래도 그렇지..
이게 우리의 국부(國富) 삼성의 기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