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설관(爲人設官)의 맨 얼굴.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개인의 능력이나 됨됨이 따위는 무시하고 그 어떤 놈을 위하여 벼슬 또는 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또 소위 낙하산 인사라는 말도 있다. , 굳이 조디아프게 설명하지 않더라도….某정권의개국(?)초에강부자고소영이니 하는 인사가 전형적인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 하겠다. 대저 어떤 나라가 개국(開國)을 한다든가 아니면 어떤 자가 한 단체의 리더가 되었을 때 공로가 있는 자들에게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해 얼마간의 특혜나 시혜를 베푸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고, 어쩌면 인간적으로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소나 개나 아무 놈이나 공로자라고 하여 없는 벼슬자리를 새로 만들고 낙하산부대 즉 특전단을 함부로 투입하면 나라 꼬라지가 형편무인지경으로 변질되거나 나중엔 저희끼리 공훈을 다투다 나라에 큰 변괴가 생기는 법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왕조500년사에 두 번의 반정이 있었으니,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반정이 그것인데 폭군을 몰아내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훈공(勳功)을 다투다 저희끼리 치고받는 과정에서 경국(傾國)에 이르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던 게 조선왕조4대 사화의 하나인 기묘사화가 그것이고, 연공서열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난을 일으켜 인조 임금이 몽진까지 한 사건이이괄의 난인 것이다. 그 난을 수습하느라 국력을 낭비한 나머지 결국 병자. 정묘 양 호란을 겪고 삼전도의 수난까지 당한 것이다.

 

반대로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말이 있다. 그저 제 품신이나 능력에 알맞은 사람을 골라 적당한 자리와 벼슬을 맡기는 일이니, 그러한 인사등용을 지켜보는 사람도 보기가 좋을 것이고, 임용하는 사람도 흐뭇할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인사요 등용이라면, 나이80에 기용된 강태공이면 어떻고, 희수(稀壽)에 발탁된 백리해면 어떻겠는가. 하기는 진()나라의감라라는 아이는12살에 재상으로 등용되기도 했으니, 이런 게 때와 시에 맞는 인재풀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적재적소에 사람을 앉힌 예라 할 것이다.

 

기왕감라얘기가 나왔으니 한 토막 옮겨보자. 감라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얼마 전, 전국시대 합종연횡이 어쩌고 할 당시의 인물이다. 외교적인 문제로 조()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려 했으나 선뜻 나서려는 놈이 없었다. 그때 어떤 자가 반열 속에서 자신이 가겠다고 자청하는데 모두 돌아보니 겨우 열두 살 먹은 감라였다. 진왕과 문무 대신들은 기가 막혀 어린 놈이 나설 곳이 못 된다고 하자항탁은 일곱 살 때 공자의 선생이 되었은즉, 내 나이 벌써 열두 살인데 한번 맡겨주십시오.”라며 당차게 얘기를 하였고, 어쨌든 가상한 의기로 인해 그는 조나라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한 뒤 무사히 귀국하여 재상의 지위에 올랐던 것이다.

 

지난 정권의 인사 등용을 문제 삼아 결국 탄핵까지 한 현 정권의 인사등용 행태가 거의 목불인견의 참상에 가깝다. 이건 단순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내로남불의 수준이 아니다. 문가 정권이 들어서는데 촌치만한 공이 있는 놈이라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짐승 같은 인사도 한 자리 앉혀야 할 만큼 빚을 졌나 보다.

 

전 정권이 태동시킨 미래창조부인지 하는 부서를 없애고 새롭게 급조한 중소벤처기업부라는 간판도 알송달송한 이름의 부처를 만드는 것까지는 또 기왕 권력 쥔 자들의 기고만장함을 어찌 말리겠는가마는, 비리나 편법을 까면 깔수록 아니 깐 걸 또 까도 자꾸 깔 게 남아 있는 놈을 아직도 부여잡고 버티는 인사 행태를 보면, 이 더런 놈의 정권의 악행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앞날이 캄캄하고 이 땅이 아비지옥으로 변할 날이 머잖은 것 같아 그저 한숨만 지을 뿐이다. 보은(報恩)인사로 인한 위인설관(爲人設官)의 맨 얼굴이 도를 넘었으니 과연 이 더러운 참상의 끝은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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