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건너 이 반장 형님(이하 반장 형님)은 참 외로운 노인네다. 금년 80이란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 허랑방탕한 생활로 형제간의 의가 다 깨진 모양이다. 아래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둘. 남동생은 농아(聾啞)다. 그의 부인도 농아로서 이른 봄부터 산 두릅을 따거나 산나물을 채취하여 인근5일장에 내다팔며 열심히 살아오다가 금년 빗길 오토바이 사고로 부부가 그만….가끔 내 두릅 밭까지 와 채취해 가기에 눈총을 준적까지 있지만, 반장 형님에게 이러저러 사정 얘기를 해도 형제간 말을 섞지 않기에 소용이 없었다. 누이 하나는 충주시내에서 토속식당을 크게 하지만 돈 문제로 거의 인연을 끊고 살고 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이 부분까지는 우리 집구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가 그렇게 형제자매들과 연을 끊다시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들 둘이 있다. 두 아들은 배 다른 형제다. 본부인이 병마에 시달려 죽어갈 때 소위 다방마담이라는 시앗에게 작은 아들이 태났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어디선가 목회(牧會)를 한다는 소문이고 작은 아들은 서울 어디서 3D업종에 종사한다고 했다. 둘째 아들은 추수 때만 되면 슬며시 나타나 여름 내내 피땀 흘려 지은 농사의 결과를 거의 다 훑어간다는 소문이 있고 제 때 돈이 안 나오면 며칠 씩 버티는 꼬락서니를 나도 두세 번 목격했다. 물론 장가는 안 갔단다. 지금까진 객썰(客說)을 풀었다. -.-;;;;
마을엔 친소관계가 있는 사람끼리 돌아가며 식사대접을 한다. 울 건너의 반장 형님도 멤버다. 그날은 반장 형님이 내는 날이었다. 반장 형님은 왠지 아침부터 많이 덜 뜨고 흥분되어 있는 듯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은 큰아들 내외와 손녀가 온단다. 그리고 장소는 바로 여동생의 맛 집으로 정해졌단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약속한 장소에 모여들고 예약된 좌석에 자리했을 때 맨 마지막으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있고 젊은 부부와 대여섯 되는 딸아이가 등장하는데 그들이 반장 형님의 큰아들 내외와 손녀였던 것이다. 3년만의 재회라는 것이다.
혼자 사는 홀아비 그것도 샤워시설도 없는 초막 같은 농가에 사는 홀아비가 농사일로 땀을 흘리다보면 씻어도 체취가 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설이나 또 씻는 기미가 없는 반장 형님이다. 10년 차이로 같이 늙어 가지만 그의 곁에 가면 단순한(?) 노인 냄새가 아닌 정말 악취가 난다. 좀 거시기 하지만 그와 대화할 땐 고개를 좌든 우든 45도 꺾고 대화를 할 정도로…(아무리 씻어도 노인 냄새는 난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간단히 또는 땀 흘리고 수시로 씻으면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은데….모르겠다)
미취학 어린 손녀를 3년 만에 본다는 반장형님, 그런데 그의 아들내외가 좌중에 소개되고 그럭저럭 수인사를 끝냈는데, 그 조그만 손녀 아이가 좌중을 비집고 할아버지 되는 반장형님 무릎에 답삭 앉는 것이었다.
이상은 오래 전 3.4년 전 얘기다. 내(마누라 역시) 생각으로 그 어린 것은 단 몇 분을 못 버틸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식사가 끝나고 헤어질 때까지 어린 것은 할아버지 되는 반장형님의 무릎을 떠나지 않았고 그 감명(?)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친손녀든 외손녀든 구분을 않고 기른다. 첫 손녀 은비는 첫 손녀라는 의미에서 귀엽고 사랑스럽고, 친 소녀 예솔이는 친손녀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쌍둥이 수아. 주아는 지금도 함께 살고, 보고 싶을 때 언제라도 볼 수 있기에 예쁘고 사랑스럽다.
은비는 해외 생활을 5년 째 하고 있다. 이젠 시쳇말로 대가리가 굵어 나와는 허그도 않으려 한다. 그러나 예솔이나 수아. 주아 쌍둥이는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서로 간 꼭 껴안으며‘할아버지(수아. 주아 예솔이) 사랑해요!’라며 인사를 나눈다. 그것도 한꺼번에 경쟁적으로 달려와서… 선착순으로 껴 앉지만 한꺼번에 달려 올 땐 난감한 경우가 많다.
첫 손녀 은비에게 쏟은 정은 말도 못한다. 제 어미 캐나다로 유학 갔을 때 1년 반을 함께 먹고 한 침대에서 내가 키웠다. 그 아인 나 아니곤 정 쏟을 데가 없는 것처럼 내게 붙어 있었다. 솔직히 표현하면 나는 지금도 그 아이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생각했고 아직까지는 그 아이가 가장 사랑스럽다. 그 아이가 있는 곳이라면 필리핀, 뉴질랜드 또 캐나다로 찾아다녔을 만큼 그 아이가 사랑스럽다.
지난 번 캐나다에 있을 당시 사돈어르신 86세 생신이었던 모양이다. 사위 강 서방이 어르신 댁을 찾았고 생신축하인사 끝에 은비와의 통화를 요청하셨던 모양이다. 마침 그 순간 자리에 내가 있었다. 생전 처음 목격하는 자리였다. 은비는 갖은 교태 섞인 목소리로“할아버지~이~생신 축하드려요~오!!”라는 코맹맹이 표현을 한다. 네게는 늘 할아버지 아닌 친구 아니면 제 동료 대하듯 하던 은비가… 속으로 어찌나 괘씸한 생각이 드는지(저거 아무리 귀여워하고 정성을 쏟아도 결국 강씨는 강씨(種子)구나)섭섭하기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친손녀 예솔이는 쌍둥이 고종과는 달리 저희 외가 식솔들과 어울리기를 좋아 하는 듯하다. 옛 선인들 말씀에 외손자(손녀) 잘 키워봐야 소용없다고들 했다. 강가 피는 아무리 잘 해도 강가 피고, 오가 피는 당장 무덤덤해도 언젠가 오가 피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길 것이다. 그렇다고 두부 모 자르듯 그 정을 자를 수 있을까?
난 3남매에게 남겨 줄 돈도 크게 없지만 늘 그런 얘길 한다. 내 너희에게 비빌 언덕은 되어 주마고. 큰 금액은 아니지만 어린 손녀들을 위해 용돈 아끼고 보험을 들고 끝난 것도 있고 다시 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것을 해 나가고 있다.
제일 큰 문제는 쌍둥이다. 자랄수록 이 나라의 현실이 그리고 그 아이들의 현실이 다른 손녀들 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하나 뒷바라지하기도 힘든 현실에 둘씩이나 이런 나라에서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등골 빠지기 십상이다. 하여 오래 전부터 나는 쌍둥이의 이민을 종용했었다. 다행히 제 어미가 어려운 시험(언어 포함)에 합격하고 조만간 영주권이(캐나다) 나올 것이란다.
결국 언젠가 박 가로 돌아갈 쌍둥이의 앞날을 미약하지만 힘 쏟고 싶다. 솔직한 얘기로 박가 손녀라기보다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오가 성을 가진 내 둘째 딸을 위해서다. 이런 내 마음에 불협화음이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데레사
2017년 12월 13일 at 7:27 오전
쌍둥이들도 결국 카나다로 보내는군요.
요새는 지구촌시대라 어디가서 살아도 자주
볼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굳이 친.외를 따지지 마세요.
손주고 자식이고 기를때 행복을 주는것으로
만족해야지 더 이상은 바라지 말아야 하는게
세상이치 같더라구요.
모두 할아버지의 물심양면의 사랑을 듬뿍
받으니 잘 자랄겁니다.
ss8000
2017년 12월 14일 at 2:25 오후
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시부모들이 좀 반대를 하는 거 같아
그 글을 올렸습니다.
아니한 말로 동냔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말아야지요?
아직 자리를 못 잡아 처가살이에 쌍둥이 엄마는 제 엄마 가게에서
알바를 하며 어렵게 지내는데,,,, 참, 어떨 땐 꽉 막힌 양반 같기도…
짜증 날 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비사벌
2017년 12월 13일 at 10:32 오전
오선생님 저도 외손자만 2명인데 내년부터 손자들위해서
조그만 적금이라도 들어야 겠습니다.오선생님 글을 읽고 내가 많이 부끄러우네요.
생각만있고 실행을 안했습니다. 글 고맙습니다.
ss8000
2017년 12월 14일 at 2:34 오후
ㅎㅎㅎ….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라고 용돈이 두둑할 리 없지만
쪼개고 쪼개서 네 손녀들에게 골고루 똑 같은 금액의 보험을
들어 주었습니다.
1차 끝나고 거치 중에 있는 것도 있고,
지난 달부터 새로 든 것도 있습니다.
보험이나 적금이 시작할 때는 언제나….하지만
세월이 유수 같으니 금방 다가옵니다.
그나저나 원장님 날씨가 불순합니다.
의사 선생님이시니 당연하시고 노하우 또한 비교가 안 되겠지만
건강 유념하십시오.
김 수남
2017년 12월 20일 at 1:45 오전
네,선생님! 손녀들 사랑이 그 어느 분 보다 따뜻하시고 훌륭하십니다.은비와 예솔이 ,수아,주아 모두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게 될거에요.수아와 주아네가 캐나다로 올 것이 기대됩니다.건강하신 모습 뵐 수 있어 반갑고 감사합니다.행복한 크리스마스 맞으세요.
ss8000
2017년 12월 21일 at 6:19 오전
감사합니다.
수아. 주아는 캐나다 가는 게 확정 되었습니다.
저도 그 아이들이 기대가 됩니다.
크리스마스 인사를받으니 좀 이상합니다.
젊은시절은 그날이 그리 기다려 지고 무슨 큰 행사처럼 치루었는데
세태가 바뀌고 보니 그런 게 있었나(신자 분들껜 죄스러운 말씀이지만…)
아!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ㅎㅎㅎ…
수남님처럼 믿음이 신실하신 분들은
며칠 후의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명절이고 행사이겠습니다.
모쪼록 부군님과 넷의 자녀님들과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 되십시오.
캐나다로 가게 되면 자주 연락 드리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