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고이게 하자!!!

명분(名分)과 실리(實利). 웬만한 초등생도 입에 올릴 만큼 보편화 된 단어다. 그러나 그 진정한 의미도 모르며 마구 뱉어 내기도 하는 단어다. 전혀 무관하고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단어이지만 상반된 개념의 단어이기도 하며 둘 다 얻으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얻어도 성공한 것이고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노력을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개털 될 때가 더 많다. 이런 경우 괜히 수고로움만 더 하고 몸만 피곤해지고 스트레스만 쌓이며 끝내는 똥인지 된장인지 무감각해 지고 좀 거친 표현으로 조또 모르며 미친개처럼 아무한테나 아무 곳에나 닦지도 않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문재인과 그 패당의 말대로‘촛불난동’이 일어난 게 1년이 넘었다. 물론 처음부터 난동(亂動 또는 폭동)이었다. 그런 그 난동은 성공을 했고 드디어 정권 찬탈을 한 것이다. 종북 좌파들에게는 아직도 516군사혁명을‘쿠데타’로 규정짓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반대세력 보수는 쿠데타가 아닌 혁명(革命)으로 못 박는 것이다. 즉,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으로 이름 지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이라면 종북 좌파들의 촛불난동은 그들 표현‘촛불혁명’이 맞다.

 

쿠데타나 난동(또는 暴動)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게 아니다. 그 나름의 명분(名分)이 쌓이고 쌓여 분출할 곳이 없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이름의 실리(實利)를 얻고 그에 상응하는 응당(應當)한 권력(또는 권리)를 쟁취하지만, 그 반대로 진압(鎭壓)을 당하면 역시 개털이 되고 죽거나 빵에 들어가거나….

 

촛불난동이 일어났을 때 웰빙의 보수들은 그 때까지도 민심의 이반(離叛)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박근혜만 연호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촛불은 바람 앞의 등불이라며 저절로 꺼지거나 저러다 말겠지, 더구나 엄동설한의 눈보라 휘날리는 계절도 불리한 그런 시점이라며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부랴사랴 한평생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힘 다 빠진 쭈그렁 할아범 할멈들이 좋게 표현해서‘태극기 혁명’을 시도 했지만, 힘과 패기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민심(民心)이라는 물은 썰물이 되어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즉 민심이 이반된 상태에서 설령 힘과 패기가 남아 있었더라도 동력과 추진력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태극기 혁명과 와 촛불난동, 시기적으로 며칠 늦기는 했지만 촛불난동은 몇 개월 만에 깨끗하게 끝내고 권력을 차지하며 성공한 폭동이 되어 실리(實利)까지 챙기고 흥청망청 이빨까지 쑤시며 여유를 보이고 있지만, 태극기 혁명은 1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말이 좋아 혁명이지 종북 좌파들 눈엔 폭동으로 밖에 안 보이는 것이다. 종북 좌파들 중 외눈 하나 깜짝 하는 놈 있는가?

 

나는 가끔 보수정권이었던 이명박이나 박근혜에게 오부지게 욕을 해 댄다. 이러는 나도 마음이 정말 아프다. 말로는 때려 죽여도 ‘보수’이며 보수로 남겠다며 공개적으로 천명(闡明)을 하는 놈이 이명박이나 박근혜에게 이놈 저년 하며 육두문자를 날린 다는 게 소위 틀딱이나 보수 같지 않은 엉터리 보수들에겐 비난과 비판을 넘어 씹어 먹고 싶을 만큼 얄미운 존재일 것이다. 이러는 나를 두고 오히려 빨.갱.이 첩자 아니면 트로이 목마라며 맹비난을 한다. 각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단도직입적으로 보수는 분노할 줄을 모른다. 태극기 휘두르며 대한문 앞에서 서울 역에서 1년을 넘게 염천지절에 때론 엄동설한에 용을 써 보지만, 그게 분노라고 착각하고 있다. 소위 분노에는 강렬하거나 강력한 임팩트(impact)가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없으면 단순한 시위(示威)나 농성(籠城)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촛불난동을 보면 서너 달 만에 끝냈지만 태극기 혁명은 끝이 없고 그냥 저냥 태극기 시위 또는 농성으로 심지어 늙어빠진 군상들이 짜증 정도 내는 것으로 치부하고 공권력이라는 경찰도 스크람을 짜서 개 무시하고 같이 즐기지 않던가?

 

인간에겐 아니 동식물을 포함한 삼라만상엔 학습(學習)효과라는 게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젊은 시절 그 총명함이 모두 소진 되었는지 태극기 부대는 그런 학습효과를 머리나 가슴 또는 육체 어느 한 곳도 체득(體得)하지 못하고 영혼 나간 사람들처럼 ‘박근혜’만을 연호하고 있기에 나는 이게 안타까워 역설적으로 분노를 조장 내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솔직히 우리 노인들 1년여를 개gr떨었지만 얻은 게 있으면 단 하나라도 얘기해 보자. 있나? 그렇게 연호하며 박근혜를 살려내라고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악을 썼지만 종북 좌파들 지금 뭐하고 있지? 기가 막히고 질리고…박근혜 30년…, 주적의 대장군을 초청해서 국빈대우로 극진히 모시고… 아무리 늙다리들이 절규를 해도 종북 좌파들 눈엔 gr발광염병으로 치부하잖아? 이 모든 게 분노하지 않고 화를 안 내며 짜증만 부린 결과다.

 

다음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종북 좌파가 틀딱님들의 요구대로 박근혜를 방면할까? 태극기 휘두르며 시위하고 농성하면 귀찮아서 내 보내 줄까? 이러지 말자. 몸이 늙으니 머리까지 늙은 게 틀림없다. 박근혜가 풀려나면 문재인과 그 일당은 그날이 제삿날인데 그 걸 인정하라고?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턱도 없는 방정식(方程式)을 들이대기에 나 스스로 틀딱이지만 틀딱들의 무지와 무식을 탄(嘆)하는 것이다.

 

요즘 가끔 촛불난동의 주역을 맡았던 2030 세대가 일부 분노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다. 분노? 박근혜 살리라는 분노일까? 착각하지 말자. 우리 틀딱 세대에 비추면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철딱서니들이다. 배가 조금만 고파도, 조금만 불편해도, 조금만 저희 마음에 안 들어도, 조금도..조금도….참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조금만 잘 해줘도, 조금만 마음에 들어도 배반(背反)을 밥 먹듯 하는 아이들이다.

 

소위 보수들이 저 아이들의 아픔을, 슬픔을 생각해 보고 보듬어 준 적 있었던가? 오죽했으면 배고프고 아프면 청춘이라고 했겠는가? 그런 아이들을 꼬시고 선동질 한 종북 좌파다. 공짜 돈 막 퍼주니까 좋아하잖아? 일 덜 시키고 돈 더 많이 주라니까 좋아 죽잖아? 왜 이재명이나 문재인 처럼 공짜로 못주고 안주었을까? 그런다고 국가 재산이 더 널어나고 쌓였던가?

 

생각을 달리하자. 2030 의식 있는 아이들 몇몇 빼면 2030은 이미 흘러 간 물이고 세력이다. 흘러간 물 되돌릴 수 있는 재주 있는 놈 있으면 얼마 안 되는 내 재산을 팔아서라도 스승으로 모시고 따르겠다.

 

어젠가 그젠가도 어떤 썰에 표현 했지만, 민심이라는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2030이라는 흘러 간 물인 것이다. 흘러 간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엎을 수도 없다.

 

이 새벽 장황한 썰을 풀며 비관적인 얘기만 했지만, 아주 방법이 없을까? 그러나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 흘러간 물은 어쩔 수 없되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물을 고이게 해야 한다. 물을 고이게 하는 그 방법은 내일 또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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