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 마누라.

자기는 진짜 오래 살 거야!”, “?”, “그런 거 있잖아. 골골 80 이라고… 기계나 자동차 고장나면 계속 수리해서 몇 십 년 쓰는 거처럼…,수명이 다 할 때까지 어떻게든 수리해서 써야지 뭐….”이런 내 말에 마누라는 아무 말도 없다.

 

나의 이런 허접한 얘기는 마누라에 대한 푸념인지 집념인지 모르겠다. 사실 그랬다. 마누라와 삼십하고도 5년을 살아오며 마누라의 몸에 칼(수술)을 댄 게 몇 번이던가?

 

마누라는 연애할 당시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었다. 어느 날 다정히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는 와중에 아랫배가 살살 아프다더니 나중엔 그 곳을 감싸 쥐고 주저앉는다. 택시를 집어타고 병원으로 달려가니 급성맹장이란다. 당시 월급4–5개 월 치를 내가 치르고 감동(?)을 먹인 뒤 결혼에 꼴인 했는데, 첫 아이를 낳을 즈음 정상 분만을 할 수 없다고 또 배를 째고 아이를 낳았지만 자식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세상에 나온 지 보름 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이거만으로도 벌써 두 번째다.

 

아무튼 이것 외에도 마누라의 몸에 칼자국 낸 것을 당장 기억나는 것만,,,,,젖 유종수술, 복강경(요건 순전히 애 덜 낳겠다고, 기왕 몸에 칼자국 있는 사람이 하라며….)수술, 갑상선수술(그러고도 평생 약을 먹고 있다),자궁근종수술, 다리골절(아직도 다리엔 철심이 박혀있다)접합수술, 등등……

 

오래 전부터 마누라는 편두통이 심했다. 뻑 하면 골이 아프다며 맥을 못 춘다. 얼마 전 정밀검사를 해 본 결과 오랫동안 농축된 축농증 탓 이란다. 이게 뇌 밑에 까지 고여서 편두통의 원인이 된 것이란다. 그냥두면 위험하다며 수술을 해야 한단다. 어쩔 수 없이 어제 입원을 시키고 오늘 또 그 지긋지긋한 전신마취수술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금년 하반기엔 자궁경부암(결과에 따라 간단한 시술일 수도 있다지만…)수술이 또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즉 어찌 불량품이 아니겠는가?

여보! 마누라! 불량품이라도 좋으니 내 곁에 오래만 있어주오!

내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수리하고 고쳐서라도 쓸 터이니…

결단코 폐품처리는 안 하리다.

 

여보! 불량품 마누라! 사랑하오!!!!

BY ss8000 ON 3. 21, 2010

 

덧붙임,

8년 전의 이야기다.

그 날 이후 마누라 생산 공장 공동 창업자 두 분 중 한 분(장인어른)은 결혼(우리 부부) 15년 되던 해에 사임을 하셨고, 나머지 한 분(장모님) 작년 315일 공장 폐업을 선언하시고 훌쩍 떠나셨다. 이젠 마누라에게 이상이 생겨도 A/S도 받을 길이 없다. 그러나 정말 다행인 것은 저 썰을 풀고 난 후 마누라에게 어떤 조짐도 없이 거뜬하다. 아마도 지금껏 조심스럽게 다룬 덕이라고 생각한다.

8 Comments

  1. 미미김

    2018년 3월 22일 at 12:57 오전

    저는 수술실 들어갈때는 괜히 서글퍼지고 무사히 마치고 나와서는 또 괜히 약해 지더군요.

    누구라도 아프면 안되지만 더우기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런일이 생기면 아픈 환자도 간호 하시는 분도 애쓰시게 되지요.
    두분 힘내시고 또 무사히 빠른완쾌 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이 세상에 나올때 어떻게 태어나든 그건 조금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늘에서 하시는일.
    그래서 강함이 약함을 돌봐야함은 당연함 인데도, 오늘아침 선생님의 투박한 사랑솜씨가 저를 미소 짓게 합니다.?

    두분의 건강과 사랑이 늘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ss8000

      2018년 3월 22일 at 3:45 오전

      미미님께서 조금 착각을 하셨습니다. ㅎㅎㅎ…

      본문 아래 날짜와 덧붙임을 아니 보셨군요.
      그 덧붙임을 미미님의 댓글의 댓글로 달아 올립니다. ㅎㅎㅎ…

      덧붙임,

      꼭 8년 전의 이야기다.
      그 날 이후 마누라 생산 공장 공동 창업자 두 분 중 한 분(장인어른)은 결혼(우리 부부) 15년 되던 해에 사임을 하셨고, 나머지 한 분(장모님) 작년 3월 15일 공장 폐업을 선언하시고 훌쩍 떠나셨다. 이젠 마누라에게 이상이 생겨도 A/S도 받을 길이 없다. 그러나 정말 다행인 것은 저 썰을 풀고 난 후 마누라에게 어떤 조짐도 없이 거뜬하다. 아마도 지금껏 조심스럽게 다룬 덕이라고 생각한다.

  2. 미미김

    2018년 3월 22일 at 5:52 오전

    제가 북을 조금 일찍쳤군요.???
    제 성격 급한게 나와 버렸습니다.ㅎㅎㅎ
    아무튼 그 이후론 “After service” 받지 않으셔도 됐음을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계속 ” Lifetime warranty” 에 속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감사합니다.

    • ss8000

      2018년 3월 22일 at 2:05 오후

      ㅎㅎㅎ…
      성질 급한 놈으로 치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놈이랍니다.
      근데…. ㅎㅎㅎ

      부부란 서로가 평생을 보장하는 사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신뢰를 쌓으며 살아 왔고 남은 여생도 살아 갈 것입니다.
      훌륭한 말씀 조언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데레사

    2018년 3월 22일 at 7:55 오전

    이제 as는 사용자가 하셔야죠.
    부지런히 도와주셔요.
    늙으막에 함께 살아 갈수 있는게 얼마나 큰
    복인데요.

    • ss8000

      2018년 3월 22일 at 2:11 오후

      넵, 외람되이,,,,나이가 자꾸 널어감에
      역시 마누라밖엔 없음을 알겠습니다.

      a/s 열심히 하겠지만, 안 되는 부분도 안고
      열심히 살아 가겠습니다. 맹세~!!

  4. 백발의천사

    2018년 3월 22일 at 11:30 오전

    골골팔십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지요. ㅎㅎ 저도 그 말을 믿고 대책없는 일생 살아 오고 있습니다. 불량품으로 태어나 걸핏하면 큰 공장 작은 공장 부지런히 드나 들며 거기다 온갖 부식재부터 “구리스” 까지 칠해가며 조심 조심 사용해 왔습니다.
    사모님도 그 숱한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건강한 생활 하신다니 저에겐 복음입니다. 부디 두 분 손 꼭잡고 百年偕老 하시기를 빕니다.

    • ss8000

      2018년 3월 22일 at 2:22 오후

      감사합니다.
      다행히 a/s받아야 할 부분이 널어날수록
      오히려 직접 수리하겠다는 투지와 오기가 생깁니다.

      물론 마누라의 심정도 같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저나 마누라나 서로가 없으면 안 될만큼 깊이 신뢰하고 있음을
      문득문득 느낄 때가 많습니다.

      덕담 주심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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