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트럼프의 용단을 촉구한다.
3월 초 닷새. 내리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가1970년도 이니 정국이 좀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장정이라는 이름으로 신체검사를 받는 과정에 치아에 얼마간의 문제(충치)가 발견되어 물경17일 간을 치과소대에 환자 아닌 환자로 있었다.(당시는 이 기간 동안 복무로 인정이 안 됐음.)그런 우여곡절 끝에28연대 훈병으로 고난(?)의 기초 훈련을 마친 뒤 이등병 계급장을 받고103보충대에 잠시 들려 다시 후반기 교육4주를 마치고 자대 배치 됐을 때는 신록이 한창 무르익어가는 6월의 어느 날이었다. 40년이 훌쩍 넘는 그날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자대 연병장은 미루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촘촘하게 서 있었고, 그 사이로 고목을 반토막낸 간이 의자(벤치)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좀 보태서 거의 내 몸무게에 가까운 따블백을 메고 한 여름의 따가운 햇살에 온몸이 젖은 채로 땀을 흘리며 나는 본 포대 행정반이 있는 막사(내무반)로 가고 있었다. 내무반은 부대의 맨 끝에 자리하고 있었고, 막사를 가려면 부대 식당을 거쳐야 했다. 물론 부대에 막 도착한 신병인 나는 그곳이 식당인 줄도 몰랐고, 앞에는 연병장의 것 보다 더 굵고 키 큰 미루나무가 빽빽하여 아주 훌륭한 그늘이 만들어져 통나무를 반 자른 벤치와 함께 서너 명의 군인이 위통을 벗은 채로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훈련을 막 마치고 그야말로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이 그냥 지나 칠 수 없는 곳이기에 따블백을 얼른 내려놓으며‘타~안~켤!’을 외치며 경례를 붙이자 그 중의 한 사나이가 가까이 오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위통을 벗고 있었지만 계급장이 달린 군모는 쓰고 있었기에 나를 가까이 오라고 한 사나이의 계급이‘중사’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병장 하나 또 다른 중사(나중에 알았지만 이 사람이 취사반장)하나가 있었지만, 나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과 자대에서의 생활과 군대의 요령을 이빨 까는 사람은 그 사나이였다. 어쨌든 그들과 헤어져 본부포대 포대장님께 자대 배치 신고를 마친 나의 군대생활은 시작된 것이다. 본격적인 자대 생활이 시작되며 선임 병들로부터 부대의 소식과 정보를 조금씩 듣고 눈치 채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배치되어 오던 날, 나를 미루나무 그늘 아래로 부른 사나이는 중사가 아닌 이병이며 취사병의 일원이었다는 사실도…..
정xx(나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이하 정 이병),짙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그는 목포 사람이었다. 당시 나이 서른일곱. 탈영4회. 정상적인 군대 생활보다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생활이 더 길고, 워낙 아래쪽 꼴통이라 사령관을 뺀 부대 내의 모든 장. 사병이 그놈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치만 볼 뿐 감히 명령이나 제제를 가하지 못했다. 그래서 놈은 장교를 뺀 모든 계급장을 제 마음대로 달아도 누구하나 탓하지 않는 그런 놈이었고, 내가 자대에 배치되어 오던 날 중사계급을 달고 있었던 것도 그런 연유였던 것이다. 또 주임상사를 제한 본포대장이나 인사계마저도 그놈 보다 나이가 적었으니, 아무리 군대지만 놈을 막대하기 그러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놈의 행패도 행패지만 혹시 있을 놈의 또 다른 탈영으로 문책을 당하거나 진급에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국방부의 시계가 열심히 돌아가기만 일반병사보다 더 기다리며 노심초사 했던 게 분명했다.
자대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무렵’정 이병‘이 나와는 같은 정보소속이라는 것과 취사병으로 간 것은 놈의 희망 반 협박 반으로 배치 된 것이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는 그와는 부딪칠 일이 없었고, 어쩐 일인지 나는CP당번으로 배치되어 사령관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는데, 그러기를 얼마 뒤 아예 부대 밖의 사령관님 숙소 당번병(소위 따까리)으로 영전(?)했으므로 그와 조우할 일이 전혀 없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갔고 복무를 하는 동안 두 분의 사령관께서 임기를 마치고 타(상급)부대로 가셨고, 세 번째 사령관이 취임했을 때, 나의 군대 이력도 꽤 늘어나고 병장이 될 만큼 연륜과 세월이 흘렀다. 군 생활이 지루하고 꾀도 날 그때쯤이었다. 영외에 있는 숙소생활이 지겨워 새로 부임하신 사령관님께 영외 거주보다는 내무반 생활을 좀 하다가 제대를 하고 싶다며 간청을 드렸으나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고, 불만스러운 나머지 몸이 불편하다며 본부내무반에 며칠 처박혀 나름 스트라이크를 하던 중이었는데, 마음의 병(?)이 깊었는지 그만 진짜 몸살감기로 된통 앓게 되었다.
내무반에는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나와는 같은 병과의 정보 소속 후임이 둘 있었다. 당시의 군대 관례라는 게 요즘 같지 않아 일반 사병 간에도 상명하복의 질서 유지와 군기가 삼엄하게확립 되어 있을 때였다. 비록 자주 만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같은 소속의 고참병이 지독한 감기 몸살에 몸져 누워있다면 부대 앞 식당의 사식은 아니더라도 식사를 가져다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요 도리인 것이다.(실제 악랄한 고참병들은 소속 졸병들을 시켜서 삼시 세끼를 내무반에서 식사를 할 만큼 위세를 부리던 때다.)그런데 나의 후임 둘은 식사배달은 고사하고 얼굴 한 번 안 내밀고 의무대의 그 흔한‘APC’하나 타다 주질 않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도 할 말은 있었을 것이다. 고참 이라고는 하지만 영외거주를 하며 사복을 입고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알 수 없을 만치 어쩌다 본부에 올라와 노닥거리다 가고했으니 살갑기는커녕 데면데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또 달랐다. 내가 저희들에게 악랄하게 고참병 노릇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다 죽어갈 정도로 몸이 아프면 같은 소속이 아니더라도 인간적으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나의 아주 작은 바람이었던 것인데…결국 그런 생각 들이 화가 치밀고 분노로 변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막사 뒤편으로 집합(?)을 시켰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내가 목소리가 좀 클 뿐 마음이 참 여린 사람이다. 즉 겁이 많다. 누굴 패고 그런 짓을 못한다. 두 후임 병을 불러 세웠으나 크게 할 말이 없다. 더욱이 후임 병을 팰 기운도 또 그럴만한 일도 아니다. 다만 좀 섭섭하다 그리고 이게 꼭 나에게 국한된 것만 아니고 혹시 두 사람 중 누가 아프더라도 전우애를 발휘하여 보살펴 주는 게 좋겠다는 요지의 아주 간략한 잔소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던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입맛도 없고, 식사도 그른 채 먹은 독한 감기몸살 약에 취해 쇠잔한 기운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취침 점호는 끝났고(하긴 나는 이미 그런 정도의 점호는 열외가 될 정도의 고참 이었지만…)이미 내무반엔 소등이 되어 불침번을 위한 붉은 미등만 졸고 있을 때, 비몽사몽간 내무반 저쪽에서 불침번과 다투는 듯한 소리가 있고, 갑자기“오병규! 오병규 이 개/새/끼 어디 있어!”라는 고함과 함께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내가 누워있는 침상 쪽으로 오는 기척이 들리며, 그 소란 속에 내무반은 다시 불이 켜지고 아수라장이 되어 단잠이 들었든 전우들이 하나 둘 일어나 영문도 모른 채 웅성거리며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고 날벼락이다. 방금 켜진 형광등 아래로 뚜벅뚜벅 거침없이 다가오며‘오병규 개새끼!’를 외치는 사람은 나와는 정말, 진짜로 아무 상관도 없는‘정 일병(그때는 그가 일병으로 진급된 때 였음)’이었다.‘저 양반이 왜 저러나?’식의 생각할 틈도 겨를도 없이‘정 일병’은 침상으로 뛰어 오르더니 단단히 조여 맨 워커 발로 사정없이 나를 조지기 시작했다. 등짝, 옆구리, 허벅지, 정강이…머리를 제한 온몸이‘정 일병’의 축구공이 된 것이다. 사람이 맞아도 이유나 알고 맞으면 변명도 하고 사정도 하며 덜 억울하겠지만, 이건 뭐‘오병규는 개새끼다!’라고만 외치며 불문곡직(問曲直)사람을 조지는 것이었다.“아니!‘정 일병님!’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두어 차례 항의 아닌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대 앞 니나노 집을 다녀왔는지 놈은 역한 술 냄새를 뿜어 대며 더욱 발악을 하는 것이었다.
데레사
2018년 4월 5일 at 12:00 오후
남자들은 군대얘기 빼면 할 얘기가 없다 할
정도로 군대얘기가 비중ㅇ 크다고 해요.
종씨님 군대얘기 재미 납니다.
ss8000
2018년 4월 5일 at 5:39 오후
군대에서 당번병을 했기 때문에 군대 얘기
남들 보단 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세태에 비교할만한 군대 얘기가
있어 잠시 썰을 풉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