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무시로 맘만 먹으면 다녀오는 미국에 첫 발을 내 디딘 게 86년인가 87인가 그랬다. 그 때만 하더라도 미국을 가기 위해 여권을 받고 강남의 모처에서 소양(素養)교육을 필해야만 할 때다. 미국. 미국… 우리의 맹방, 우리의 혈맹 오늘(당시)의 내가 있게 해 준 고마운 나라. 그 어떤 미사여구(美辭麗句)를 갖다 붙여도 모자랄 원더랜드(wonderland)엘 간다니 가슴이 뛰고 벅찼다. 더구나 그게 내 첫 해외여행의 이정표라니….그곳이 바로 나성이고 LA였던 것이다.
다만 좀 아쉬운 건 여행을 간 게 아니라 보따리장사 차 갔기에 호텔과 컨벤션 센터(좌판 까는 장소)만 왕복하다 왔지만 그래도 미국 땅을 밟았다는 그 감동.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난 영어를 잘 할 줄 모른다. 함께 간 직원과 택시기사가 이동 중(그게 출근인지 퇴근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차량의 연료에 대한, 즉 휘발유 값 얘기를 주고받는데 둘 다 자꾸 개스. 개스라는 단어를 연발하며 얘기를 주고받기에 너무 의심스러워 한마디 거들기를“미국 차는 모두 가스 차냐?”고 물었었다. 그 때 우리 직원이 알려주기를 개솔린(gasoline)을 이쪽에선 앞 자만 따서‘개스’라고 한다는 말에 쪽이 팔리고 얼굴이 화끈 거린 경험이 있다. 미국은 주유소를 ‘gas station’이라고 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그냥 우리 식으로 가스라고 표현하자.
썰제의“가스라이트(Gaslight)”, 얼핏 생각하면 꼴초들의 주머니에 하나씩 있을 만한(절연 이전의 나는 두 개씩 넣고 다녔다),담배를 피기 위한‘가스라이트’인 줄 아시겠지만, 영화제목이다.
이 영화가 원래 전전(2차 대전)시대의 흑백영화로 백치미(白痴美: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의 여신 잉그릿드 버그만(Ingrid Bergman)의 출세작(?)으로 알려진 영화로 우리나라에선‘가스 등(燈)’으로 번역되어 상영 됐으며 참 영화 마니아가 아니면 이름도 기억해 낼 수 없는 쾌쾌 묵은 영화다. 그래도 난 다행히 토요명화니 명절맞이 명화감상이니 하는 프로를 통해 두세 번 본 기억이 있어 스토리를 대충 기억하고 있다.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여인에게 개차반 같은 불한당이 접근한다. 여인은 사랑에 눈이 멀어 놈이 개자식인 줄 모르고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결혼에 성공한 놈은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간다. 사실 그녀의 저택 다락방에는 아주 고가의 보석이 숨겨져 있었으며 놈은 그것을 찾기 위해 아내 몰래 드나드는 것이다.
놈이 보석을 찾기 위해 다락방에 불을 켜면, 그 때문에 거실에 있는 가스등(Gaslight)이 희미해지곤 하는데, 아내가 아무 이유 없이 흐릿해지는 가스등에 대해 얘기하면, 남편은 그녀가 미쳤기 때문에 환각을 본다는 식으로 매도한다. 사실 아내의 어머니는 요즘으로 치면 조울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죽었기에 자신도 조울증 유전자를 받은 것으로 알고 혼란스럽고 겁에 질린 나머지 점차 히스테릭하게 행동하고, 놈의 끊임없는 세뇌를 받으며 실제로도 무기력하고 방향 감각이 없는 사람이 되어 간다. 세뇌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내가 무슨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본지 오래 된 영화를 세세히 기억할 수도 없고, 결론은 어릴 적 이웃으로 지냈던 정의의 사도가 나타났고 그가 내민 구원의 손길을 잡고 자신이 조울증 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간악한 개자식을 빵으로 보내는 해피엔딩의 영화‘가스라이트’. -The end-
가스등(gaslight) 효과(effect)라는 단어가 있다. 자신에겐 아무 잘못이나 하자(瑕疵)가 없다. 그러나 상대는 집요하게 너는 미쳤느니 네가 잘못을 저질렀다며 세뇌(洗腦)를 시킨다. 결국 세뇌를 당한 쪽은 자신이 정말 잘못한 것처럼 믿어버리고 오히려 상대에게 미안해하는 병적인 심리상태를 두고‘가스등 효과(effect)’라고 하는 것이다.
어제도 적폐, 오늘도 적폐, 내일도 또 적폐청산…적폐. 적폐. 적폐….. 우리가 진짜 적폐를 쌓은 것으로 세뇌를 당해 왔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적폐 놈들이 쌓은 거다. 간교하고 간악하게 놈들은‘적폐청산’이라는 교묘한 단어를 우리에게 뒤집어씌우고 가스등(gaslight) 효과(effect)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사자성어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이제 정신 차리자!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 다만 잘못 한 줄 착각을 했을 뿐이다. 깨어라!! 일어나라!!! 봉기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