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고한다.

 

 

오늘 아침 조선사설은“1500만 유권자가 언론에 속아 투표했단 말인가”라는 제하의 정론직필을 올렸다. 즉, 노무현은<<<13일 국무회의에서“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비자가 지배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개혁의 진정한 방향이다. 소비자 주권(主權)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공정한 정보제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5.31 참패의 원인을 보수언론의 불공정 보도로 인한 것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정권이 가장 경멸스럽고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보수언론의 목을 조르고, 팔을 꺾고, 걷어차는,,,마치 프로레슬링에나 있음직한 행위를 할 때 인 것이다. 프로레슬링은 그래도 서로 간 암묵적 약속에 의한 작전(?)이라도 있기에 찢어지고 피가 흘러도 그리 놀라워할 게 아니지만, 사전의 아무런 약속이나 작전도 없이 조르고, 꺾고, 걷어차는 더럽고 야비한 행동에 열 받고 뒤이어 육두문자를 아니 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이 나라엔 졸리고 꺾기고 걷어차여 볼썽사납게 여위고 상처투성이 뿐인 조.중.동이라는 언론매체 외에, 디지털 시대에 가장 강력한 언론매체인 모든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3개 지상파 방송이 현 정권의 마수에 걸려 포로로, 홍위병으로, 나팔수로 그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음에도 무엇이 부족한지 몰골사나운 보수언론을 못 잡아먹어 환장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미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이나, 김대중 정권이나 언론 통제도 했고 많은 실정을 거듭하며, 국민과 국가에 천추에 씻지 못할 한을 남긴 정권이지만, 그래도 이놈의 정권처럼 모든 잘못과 실정의 원인, 민심의 이반, 선거의 패배를100% 보수언론에 팔밀이 하지는 않았기에 동정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조선일보와의 전쟁’을 선언한 노무현이고 보면 어떤 연유로 조선일보와는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가 되어 앙앙불락 하는지 모르되 언론 하나도(그것도 졸리고 꺾기고 걷어차여 볼썽사납게 여위고 상처투성이 뿐인…)용인할 수 없는, 편협하고 옹졸한 저 밴댕이 소갈딱지에 질려버린 것이다. 저 편협하고 옹졸한 심성의 소유자가 어찌 5천만 국민의 대표자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무한경쟁의 국제사회 속을 헤쳐 나갈 지휘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하늘이 노래지고 당장 멱살을 잡아 권좌에서 끌어내려 패대기를 쳐야만 속이 후련하고 직성이 풀리겠지만 그리할 수 없는 노릇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좀 장황한 썰이 되겠지만 고사를 통하여 조선일보나 명맥뿐인 보수언론이 어째서, 왜? 정론직필 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노무현씨에게 알리고자 함이다. 이하각설하고…..

 

동호직필(董狐直筆)이라는 말이 있다. 좌씨춘추(左氏春秋)에 동호(董狐)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諸子百家)영웅 호걸이 부지기수로 등장하지만 동호(董狐)라는 인물은 미관말직인 사관(史官)이니 개인적으로 그리 대단한 인물은 아니나 오늘날 그 이름이 구전(口傳)에 구전을 거듭하여 지금까지 청사에 기록됨은 여느 영웅호걸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굳이 이 인물을 조명하고자 함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이 나라 최고통치권자의 형편 무인지경의 작태에 충직한 고언(苦言)은 고사하고, 심지어5.31의 치욕에도 아랑곳 않고 민심의 이반에서부터 앞날의 향배(向背)를 무시한 채 노비어천가를 소리 높여 읊조리는, 시쳇말로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며 권력의 중심부에 추파(秋波)를 던지는 한심한 행태에 분노를 느꼈기 때문 이기도하고, 그런 곡학아세나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조무래기들을 거느리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들먹거리며 정론직필로 고언을 아끼지 않는 보수언론의 숨통을 조이려는 작태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고자 함이다.

 

춘추시대 진(晋)나라 영공(靈公)때의 얘기다. 진령공은 사치하고 잔인하며 방탕한 폭군이었다. 당시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승상(丞相)으로 있던 조순(趙盾)이라는 사람이 진령공의 개차반 같은 행동을 충직하게 자주 간하자, 오늘날 우리의 최고통치권자처럼 바른말 하는 놈을 귀찮게 여긴 진령공은 오히려 자객을 보내 그를 죽이려 당대의 최고수 자객인‘서여’라는 인물을 보낸다.

 

그러나 조순의 집에 숨어든‘서여’는 조순의 애국하는 마음과 사심 없는 행동을 보고 감격한 나머지 임금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면 불충이요, 충신을 죽이자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맨땅에 헤딩이 아니라 큰 나무에 헤딩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식을 들은 진령공은 이번에는 조순을 술자리로 유인해 죽이려고 흉계를 꾸몄는데 요행히 조순의 가병(家兵)과 오래전 조순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영척이라는 인물의 보호를 받고 해외로 망명을 나설 때, 조순이 국경을 넘으려는 순간, 조순의 조카 조천(趙穿)에게 진령공이 파티 석상에서 살해당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도읍으로 돌아왔다.

 

본론은 이제다. 당시의 사관인 동호(董狐)가 나라의 공식기록에 이렇게 적었다.‘조순, 군주를 시해하다.‘였다. 조순이 이 기록을 보고 기가 막혀 항의하자, 동호는 이렇게 말했다.“물론 승상께서 직접 진령공을 시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승상은 국내에 있었고, 또 조정에 돌아와 임금을 쳐 죽인 범인을 처벌 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승상께서 공식적으로 시해(弑害)자가 되는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조순은 자기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동호의 뜻에 따랐다. 훗날 공자는 이 대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동호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다. 법을 따라 굽힘없이 썼다. 자신을 탄핵한 동호를 살려둔 조순 또한 훌륭한 양반이다.“라며……동호직필이란, 이와 같이 권세에 아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을 가리킨다. 줄여서 직필(直筆)이라고도 한다.

 

지난 8년여를 돌이켜보면“조.중.동.”이라는 동호가 가진 박해와 음해를 권력으로부터 받으면서 정론직필을 해왔다. 사관(史官)과 언관(言官)으로서 사명의식을 가지고 역사(기사)를 기술한 것에 한 치의 오차라도 있었던가? 권력의 부정부패, 대북문제, 야당 음해 공작, 대(對)국민기만, 등등 어느 것 하나 사실이 아닌 것이 있었던가?

 

그 와중에 우리의 진령공은 전 왕의 황태자시절부터 동호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역사를 말살기도 해 왔으며, 작금에 이르러서는 일국의 주상으로 등극하여 통치하고 있음에도 지난 날 동호로부터 한 조각의 예리한 파편을 맞았다고 해서 국정은 여념이 없고 동호 죽이기에 총력을 기우리는 못난 행태가 참으로 안쓰러워 이 아침에 장문의 썰을 풀어본다. 제발 이 시대의 진령공은 대오각성(大悟覺醒)하시기 바란다. 끝내 오기와 편견을 버리지 못하면 또 다른 조순과 조천이 없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끝으로 우리네도 연산조 시절 직필로 인한 사건이 있었다. 곧 무오사화(戊午史禍)인 것이다. 김일손 이라는 이는 성종 때 춘추관의 사관(史官)으로, 전라도 관찰사 이극돈(李克墩)의 비행을 직필하고, 그 뒤 헌납(獻納)때 이극돈과 성준(成俊)이 새로 붕당의 분쟁을 일으킨다고 상소하여 이극돈의 원한을 샀다. 또한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앞서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실은 것이 이극돈을 통하여 연산군에게 알려져 사형에 처해졌고, 그의 스승인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직필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정의요 의무인 것이다.

 

BY ss8000 ON 6. 14, 2006

 

덧붙임,

원래 이 썰의 원제목은‘노무현에게 고한다.’였다. 굳이 이 새벽 10여 년 전 위의 썰을 찾아 다시 올리는 이유를 제현께서 상상하시기 바란다. 문재인과 그 패당은 자신들의 치부(恥部)를 감추기 위해 노무현 이상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 이른바‘가짜 뉴스’탐색이다. 저희들이 저지르는 작태와 행태는 모두 진실 된 것이고, 그 허구와 허위를 고발하는 보수언론의 직필은 모두‘가짜 뉴스’로 폄훼하며 단속을 시도하는 것이다.

 

진령공 그 후의 뒤풀이가 남아 있다.

조순은 진령공이 죽고 난 뒤 여전히 승상으로 있으며 국정을 보살피는데, 어느 날 조카 조천이 찾아와 승진을 부탁한다. 물론 자신이 진령공을 죽였으니 생색을 내며….그러나 조순은 자신의 혈육이지만 공사를 분명히 하여 조천에게 진급이나 상급을 주지 않는다. 조천은 분기가 탱천하여 울화병에 등창이 터져 죽고 만다. 이번에는 조천의 아들 조전이 찾아와 아비의 벼슬을 승계 하게 해달라며 청탁을 하나 조순은 이 또한 단호히 거절한다. 조순 반의반만 따라할 수 있는 충신이 딱 한 놈만 있어도 나라가 이토록 개판은 아닐 것이다.

 

현금의 진령공은 이 대목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공로가 있다하여 어중이 떠중이 이놈 저놈 아무에게나 벼슬자리를 주어 국정에 참여케 하다가는 언젠가는 역성혁명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 또한 있겠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반성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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