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감각.

 

 

하느님이‘거룩한 백성’으로 택한 민족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이르는 말 또는 한 사회에서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잘 사는 무리들을 두고 선민(選民)이라고 하며 그런 정책이나 사상을 두고 선민주의(選民主義)라고 하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로버트 콜린스 선임고문은 며칠 전 북한 지역사회의 인권탄압 실상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하고 “평양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일반 주민의 인권이 가정·직장·학교 등 일상생활에서 북한 지방 권력기관에 의해 조직적으로 유린돼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 노동당의 인권정책은 사실상 인권을 대가로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내부 적대세력으로부터 정권을 보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북한이 당 간부 및 고위층과 평양시민들에게만 특별한 혜택을 주고 정권을 지탱해 나가는 경우를 두고 선민정책(選民政策)이라고 하는 것이다.

 

광복과 더불어 정부수립 뒤이어 625사변 다시 휴전협정 이후 북한의 크고 작은 도발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히 제압하고 평화를 유지해 왔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로 인한 위기나 불안으로 죽고 다친 국민이 몇인지 모르겠지만, 그 보다는 살인. 강도. 왕따. 폭행. 교통사고 등등 아니한 말로 우리끼리의 사건 사고로 국민이 죽어 나가며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했던 것이지 북한 때문은 아니었잖아? 평화라는 단어를 두고 김일성 주석을 포함한 왕조 3대와 북한을 얘기한다면 북한은 정말 억울한 측면이 크고 많다.

 

언제 북한이 쳐들어와 세월호를 가라 앉혀 3백 수십 명을 죽이고, 몰래 제천 목욕탕에 방화를 하여 약 30명의 인명을 불태우고, 아들 면회 다녀오는 차량에 교통사고를 내고 일가족 몰살을 (오늘자 기사가 있음)시도한 적이 있었던가? 이 모두가 평화 시에 우리민족끼리 저지르고 일어난 사건 사고로 나라도 가정도 평화가 깨진 것이다.

 

어제 날짜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가 잘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잠정적인 평화일 뿐”이라며 “내년에는 흔들리지 않는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해야 한다”고 말하며 불과 1년 만에 남북이 한반도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대화를 통한 평화 시대를 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는 것이다.

 

평화? 단어 공부 하자는 게 아니다. 평온하고 화목함 또는 전쟁이나 분쟁 따위 없이 평온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 다시 말하면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하여 전쟁 없으면 그것이 곧 평화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시대 이전에 전쟁이라도 있었던가? 북한이 625동란처럼 쳐들어온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위기라든가 항구적 평화를 운운한다는 것은 대통령 혼자만 느끼는 불안과 위기 즉 체감(體感)이 아닌가? 대통령 자신만의 체감을 가지고 어째서 가만히 있는 북한을 평화니 전쟁종식이니 하며 자극하고 침소봉대해서 우민(愚民)을 선동하는가?

 

체감(體感)이라는 단어 앞에 성질이 확 돋는 일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 경제장관회의에서 올해의 경제에 대해 “사람 중심 경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첫해로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자평(自評)한 뒤 “그러나 이런 성과들을 체감(體感)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 국민의 삶이 고르게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이 정도 되면 대통령님의 입(차마 주둥이나 아가리라고는 못하겠고…)을 찢어 놓고 싶다. 체감(體感)이라는 것은 피부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지 입이나 머리로 느끼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머리와 입은 경제성과의 변화가 왔다고 느끼고 자평했는지 모르지만 국민은 전혀 느낌이 없는 것이다.

 

굳이 대통령의 입을 빌려 말하는 국민은 대통령이라면 죽고 못 사는 이른바‘문빠’나 그들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개. 돼지들이 아닐까? 따라서 문재인 교조주의에 빠진 맹신도와 광신집단은 선민(選民)이 틀림없다.

 

문제는 선민주의에 빠진 광신집단들의 강점은 배고파도 추워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교주님의 가식적이지만 인자한 미소만 보고도 등 따시고 배부른 것이다. 그게 바로 평양시민과 이 땅의 개. 돼지들이지, 지방에 거주하는 북한의 일반 인민과 이 땅의 보통국민은 아닌 것이다.

 

우리 속담에‘아복기포불찰노기(我腹旣飽不察奴飢)즉, 내 배부르면 종놈 배고픈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과 선민(選民)이 된 개. 돼지들이야 배고픈지 추운지 逆체감(?)을 못하겠지만 보통국민들의 도탄지고(塗炭之苦)를 두 눈으로 보고도‘나는 열심히 했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못 느끼냐?’고 호통을 치는 꼴이니….

 

또 이런 말도 있다. 범사노복선념기한(凡使奴僕先念飢寒), 무릇 아랫사람을 부릴 때 먼저 그들의 춥고 배고픔을 생각하라는…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개. 돼지들에게만 어떤 혜택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보통국민들의 참상(慘狀)이 눈에 보인다면 호통만 칠 게 아니라 목욕탕의 세신비(洗身費)라도 지급 하던가. 그래야 무감각한 떼를 벗겨 내고 참신한 피부로 느낄 게 아닌가? 국민은 도무지 못 느끼는 감각(체감)을 대통령과 그 패거리만 느끼는 것 같아 해 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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