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어떤 분의 글인지 필자를 모르겠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이 글을 보고 나는 전율(戰慄)을 할 만큼 소름이 돋았다. 우연히 발견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일본인 내가 최소한으로 알고 있는 일본인 것이다. 일본인 그들은 결단코 우리의 질시(嫉視)나 폄하(貶下)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을 배우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글쓴이도 모른 채 이 글을 퍼 나르는 것을 그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언제고 기회가 있다면 직접 사과드릴 수 있으면 한다.
KTX 특실에서 만난 네 사람-
지난 2월23일 밤 9시30분에 부산역을 출발한 KTX 특실에 올랐다. 출발하자마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실내에선 전화를 걸지 맙시다』고 호소하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동대구역에서 20세 전후의 여자 두 사람이 올라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 여자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전역까지 가는 동안 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내가 옆자리에 앉은 그녀의 친구한테 『좀 조용히 하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전화 말소리는 다소 약해졌지만 통화는 끊지 않았다. 열차에서는 객실 바깥으로 나가서 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했다. 저 나이에 특실을 탈 정도면 수입이 많은 직장에 다니든지 父母(부모)가 부자일 것이다.
다행히 두 여자는 대전역에서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40代 후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여성 두 사람이 탔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실내가 쩡쩡 울렸다. 그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걸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교정 불능의 수준이었다. 聲帶(성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목소리가 크다고 한 번도 경고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기고만장 그 자체였다. 야간열차여서 승객들은 대부분 잠을 자고 있었다. 두 여성의 목소리는 열차 객실 끝에서 끝까지 들렸다. 충고도 희망이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저 수준이면 포기하는 것이 낫다. 다행히 두 여성은 천안역에서 내렸다.
이날의 문제적 인물 네 사람은 남한테 폐를 끼치고도 폐를 끼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그런 어머니는 그런 20代 딸을 만들 것이다.
지난해 6월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에서 신칸센(新幹線)을 타고 혼슈의 남쪽 야마구치縣(현)의 아사에서 내려 나가토로 가는 支線(지선) 기차로 갈아탔다. 운전사 한 사람이 움직이는 한 輛(량)짜리 원맨 카였다. 승객은 거의가 통학하는 중학생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들을 한 시간 동안 관찰해 보았다. 12명 중 책 읽는 학생이 8명, 조는 학생이 3명, 한두 명은 휴대전화기를 열고 이리저리 누르기만 했다. 한 시간 동안 지켜보아도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도 조용조용하게 했다.
잠을 자는 학생도 단정하게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본식 예절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현장이었다.
불법주차-
지난해 12월 말 일요일 오후 경기도 안성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내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한남대교와 1호 터널을 지나 을지로로 진입하는 데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겨우 을지로로 들어섰으나 시청광장을 지나는 데 30분을 더 停滯(정체)했다.
교통체증의 원인은 서울시청 광장 주변의 不法(불법)주차였다. 광장에 마련된 스케이트장을 찾는 청소년들을 태우고 온 차들이 광장을 삥 둘러 두 車線(차선)을 차지한 채 서 있었다.
경찰이 이런 不法주차를 일시적으로 허용한 것인지, 아니면 집단 不法에 경찰이 손을 들고 말았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한심한 시민이고 경찰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자녀들에게만 즐거움과 편안함을 선사하겠다는 마음 아닌가?
지난여름에 일본 시모노세키의 뒷골목을 한 시간 동안 걸어다녔다. 한국의 거리풍경과 다른 모습이 하나 있었다. 거리에 자동차를 세워놓은 모습이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모든 집이 주차장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마당이나 건물 속을 주차장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좁은 길임에도 마음 놓고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구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오피스텔 빌딩 복도 벽엔 이런 요지의 告知文(고지문)이 붙어 있다.
<밤중에 술에 취해서 고층의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구토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구토물이 강한 酸性(산성)이고, 벽을 타고 내리면서 더럽힌 것은 청소하기도 어렵습니다. 부디 화장실에서 구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오피스빌딩 엘리베이터 안 스크린에는 이런 당부의 말씀이 나온다.
<문을 열고 깡통이나 병을 바깥으로 던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20층에서 아래로 물건을 던지는 것을 자제해 달라니? 금지해 달라고 해야 할 것을 어중간하게 표현한다. 교통방송을 들어보면 「통행금지」를 의미하는 데도 「통제」라고 말한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렇게 분명히 하는 것을 죄송스러워하는 당무자가 있는 한 행패 전문가를 막을 순 없다.
지난 6월 일본의 혼슈 남단 야마구치縣의 新야마구치역에서 하카타(후쿠오카)로 가는 新幹線 열차를 타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깨끗했다. 종착역에 가까이 왔으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 지저분할 텐테 출발역인 것처럼 청결했다.
나는 KTX 열차를 자주 탄다. 특실 화장실도 출발해서 몇 정거장 지나면 지저분해진다. 승객들도 함부로 화장실을 이용하고 열차 관리자들도 청소를 소홀히 한다. 화장실이 그 모양이니 KTX 전체가 불결해 보인다.
일본의 新幹線보다 40년 늦게 개통했으면 모든 면에서 더 좋아야 한다. 定時 출발률이 더 높아야 하고 더 깨끗하고 더 편해야 한다. KTX는 7~10분 연발착이 보통이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지 않다. 新幹線은 全구간의 1년분 연발착 시간을 다 모아도 한 시간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종업원들의 정성, 서비스 정신의 문제다. 그러니 더 창피한 일이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러서 안하는 것이니 더 문제인 것이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KTX 특실을 이용하는 이들은 한국의 지도층일 것이다. 그들이 화장실을 깨끗이 이용할 줄 모른다면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달러까지 올라도 一流국가가 될 수 없다.
여행을 많이 해보니 一流국가의 특징이 이렇게 잡힌다.
- 화장실이 깨끗하다.
-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다(일본의 경우 텔레비전 뉴스 앵커들의 목소리가 특히 낮다).
- 인물을 기리는 銅像(동상)과 기념관이 많다.
- 사람들이 친절하면서도 절도가 있다.
- 옷차림이 간소하다.
- 일을 하는 모습이 즐겁게 보인다.
- 보통국민들도 글을 잘 쓴다.
- 경찰에 대드는 사람이 없고, 경찰도 듬직하고 친절하다.
선진국일수록 목소리가 낮다. 만원인 식당이 조용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댄다. 한국에선 목소리가 커야 제 몫을 찾아먹는 경우가 많다. 銃器(총기) 소지가 허용되는 미국에서 한국식으로 고함을 치다가는 총격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의 유적지에 가 보면 幕府(막부) 시절의 무사가 다이묘(大名)라고 불리는 領主(영주)한테 보고하는 장면을 모형으로 再現(재현)한 것을 보게 된다. 부하도 칼을 차고 보고하고 영주도 칼을 차고 보고받는다.
「이런 관계에선 허위보고가 어렵겠구나, 상관이라도 부하에게 함부로 인간적 모독을 주어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악수와 같은 公衆(공중) 예절의 상당부분은 무장한 사회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몸짓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영국·독일·일본 등 무사, 騎士(기사) 지배, 즉 군사문화가 지배했던 나라에서 공중도덕이 성숙해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일본 택시 기사
1975년 4월 어느 날 저녁 일본을 혼자서 여행하던 나는 유명한 해안 휴양지 아다미(熱海)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나는 근처 여관에 들었다. 저녁을 먹을 겸 도시 구경에 나섰다.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여관으로 돌아가려는데 「아차」했다. 여관 이름을 기억해 두지 않았던 것이다. 명함이나 성냥갑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우선 택시를 잡아 탔다.
『아다미에 여관이 몇 개 있습니까』
『400개입니다』
택시로 400개를 전부 뒤지다간 날이 샐 것 같았다. 택시 운전자에게 여관을 잊어버렸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말했다.
『같이 찾아봅시다. 그런데 역으로 돌아가서 거꾸로 내려옵시다』
택시기사는 역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오면서 골목을 누볐다. 여관마다 들렀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아닌데요』
『혹시 바다가 보였습니까』
『기억이 안 나요』
이런 식으로 한 시간 정도 헤맨 끝에 눈에 익은 한 여관 앞에 닿았다. 내 여관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다. 택시 기사도 『야, 참 잘 되었습니다』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요금도 더 요구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첫 일본여행에서 만났던 이 택시 기사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만큼 일본 홍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그 택시 기사가 나에게 베풀어 준 好意(호의)는 몇 배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일본회사와 오랫동안 거래해 온 한 기업인은 『나는 일본이라면 세 단어가 생각 난다』고 말했다. 정직, 청결, 친절. 평소 생활이 청결하니 정직하고 친절한 것이다. 청결은 남에 대한 배려다. 친절의 표현이 청결이다. 청결하지 않은 음식점이 친절할 수는 없다. 청결은 형식이고 정직은 내용이다.
지난 1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삿포로 근방의 新치도세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4박5일 동안 尙美會(상미회) 여행단을 태우고 다녔던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30代의 말없는 사나이였다. 눈이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그렇게 부드럽게 달릴 수 없었다. 불평 한마디 없이 暴雪(폭설)과 한파 속 장거리 운전을 해준 것이 고마워 여행객들이 헤어질 때 박수를 쳤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헤어졌던 운전사가 뛰어오더니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尙美會 여행단을 찾았다.
버스를 주차장으로 몰고 가서 정리하다가 손님이 놓고 내린 물건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운전사는 한 30분간 차를 몰고 가 車內(차내) 청소를 하다가 분실물을 발견하자마자 다시 달려온 듯했다. 그가 내어놓은 것은 돋보기 안경이었다.
그때까지도 안경 주인은 버스에 놓고 내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년 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한 여성이 버스 안에 막 구입한 화장품 세트를 놓고 내렸다. 버스 회사에 연락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한 평범한 일본인 운전기사의 정직과 친절은 수십 명의 한국인을 감동시켰다. 이런 친절이 국가경쟁력이다. 안경을 찾은 한국인은 자주 일본을 찾을 것이고, 화장품을 잃은 한국인은 이탈리아에 대한 險談(험담)을 열심히 하고 다닐 것이다.
일본 교수 부부의 친절
2004년 5월22일 나는 일행 19명과 함께 일본 가고시마에 있었다. 현직 일본인 교수 부부가 하루 종일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오후 늦게 그는 우리 일행을 가고시마 시내에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전세 버스에서 내리면서 두 시간 후에 버스가 그곳으로 오게 한 뒤 시내 구경에 나섰다. 일본인 교수 부부와는 작별 인사를 했다.
오후 6시 우리는 내렸던 장소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두 시간 전에 헤어졌던 교수 부부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교수 부부는 우리 일행이 시내에서 길을 잃지 않고 빠짐없이 재집합 장소에 모였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歸家(귀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교수 부부는 일부러 두 시간 동안 시내에 머물러 있다가 점검차 다시 들른 것이었다. 부부는 다시 헤어지면서 과자가 든 봉투를 선물로 주었다. 車中(차중)에서 이 과자를 나눴더니 1인당 하나씩 정확하게 스무 개였다.
생전 처음 만난 사이이고 다시 볼 일 없는 외국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가 습관화한 일본사람들이다. 알수록 무서워지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온천탕에 들어가면 시설이 간단한 데 놀란다. 샤워기가 앉은키와 같은 높이에 붙어 있어 서서 할 수 없다. 쪼그리고 앉아 몸에 먼저 비누칠을 한 다음 옆사람에게 물을 튀기지 않도록 조심조심 샤워기 물을 머리에 뿌린다.
욕탕으로 들어올 때는 호텔방에서 가져온 얇은 수건 하나만 휴대할 수 있다. 이 수건이 특이하다. 때를 미는 데도 쓰고 몸을 닦는 데도 쓴다. 아주 얇은 데도 흡수성이 좋고 빨리 마른다. 한국의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보면 한 사람이 평균 석 장 이상의 수건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일본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하나에 200엔 하는 일본 목욕탕 수건을 몇 장 선물로 사와서 나눠 준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 집 목욕탕의 많은 수건들 가운데 일본 수건이 끝까지 남게 된다.
2003년 말 일본의 시고쿠(四國: 막부 시대에 네 개의 藩이 있었기에 그렇게 불린다)에 있는 古都(고도) 高知(고치)의 400년 된 淸酒(청주) 공장을 방문했을 때다. 우리 여행단은 공장 구경을 끝내고 공장 간부와 인사를 한 뒤 골목에 세워 둔 버스에 올랐다.
인사를 끝낸 공장 간부가 갑자기 버스 앞을 지나 골목 입구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다른 차가 골목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 주려고 그러는 것이었다.
차내에서 우리는 『한국 같으면 인사한 뒤 사무실로 돌아가 버렸을 터인데』라고 감탄했다.
?미미김
2018년 12월 25일 at 1:08 오후
“이래도 일본을 미워할 것인가?”
아닙니다, 절대로 일본인 들의 좋은 도덕성은 배워야 합니다.
저는 큰 공공장소에서 근 25년을 일하고 있습니다. 하여, 여러나라 사람들을 접하고 보게되지요.
왜인지 일본인은 걸음걸이 부터가 조용하고 행동반경 또한 어수선 하거나 요란 스럽거나 하지가 않습니다. 정말 왜인지 분위기가 깨끗해요. 부러운 그들의 민족성입니다.
오선생님, 깊은우물 퍼 오심을 감사합니다. 꾸뻑!
ss8000
2018년 12월 26일 at 6:11 오전
감사는요?… 오히려 공감해 주시니 제가 감사드릴 일이지요.
위 썰에 대한 어떤 분의 댓글을 퍼 왔습니다.
이 차이는 기본교육의 차이다.
우리도 어려서부터 교육을 제대로 하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성공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과 오래 같이 근무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 분의 말씀이 지당한 말씀인줄은 알지만, 이 개.돼지의 나라는
전교조라는 개. 돼지 양성집단 때문에 도저히… 안타까울 뿐입니다.
백발의천사
2018년 12월 26일 at 10:48 오전
오선생님 지난 한 해 오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보는 눈을 많이 넓혀 주시어 고맙습니다.
오늘 이 글은 젊은 사람들에게 욕 많이 들을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민감한 시국에 우리와 일본을 직접 비교하면서 일본 사람을 높게 평가했으니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ㅎㅎ
이 글을 쓰신 분의 의도는 일본 사람을 칭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바뀌어야 한다는 충심에서 하신 말씀으로 이해합니다만 글쎄요………. 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대범하고 선이 굵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보다는 “내가 우선, 나 편하면 그만” 이라는 사조가 팽배해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고쳐지겠습니까? 기성세대부터 애들까지 다들 이 모양인데 어떻게 고치지요? 제가 느끼기엔 시민의식이 제가 젊었을 때 보다 훨씬 더 나빠진 것 같습니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 돌리지 못한다니 그냥 보고 넘겨야지요?
별 희망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새해이니 희망을 가져야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ss8000
2018년 12월 26일 at 1:26 오후
위의 글을 올리자 나온 반응 세 가지
1)고소득층과 상류층은 전혀 다른 의민데 같은 의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엔 많습니다.
무식한 고소득층에서 그런 인간들이 많이 보이지요. 상류층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일겁니다.
글에서 ktx 속에서의 그런 여자들이 그런 표본일겁니다.
이런 표본들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이 꽤 걸리거나
영원불멸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에 반대가 없는 걸 보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ㅎㅎ..
2)이 차이는 기본교육의 차이다. 우리도 어려서부터 교육을 제대로 하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성공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과 오래 같이 근무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3) 조회 151 | 스크랩 0 | 찬성 21 | 반대 0
제가 조만간 가제(假題)”일본을 배우자”라는 책을 준비 중입니다.
그들을 숭모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우월성을 배우고 익히자는 것입니다.
위의 류의 글을 모아 보니 한 권의 책이 되겠더군요.
원고 정리 해서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근데 천사님의 기우처럼 그런 글들을 게시판에 계속 올렸습니다마는
95: 5 정도로 찬성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아무리 개.돼지라도 올고 그름 좋고 나쁨을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일본에서도 출판할 계획입니다.
수익금은 100% 위안부할머니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희사할 생각입니다. 이런 글로 인해 친일이라는 굴레를 씌워 안 받겠다고 한다면
불우이웃에 희사할 겁니다. 걱정만 마시고 책 한 권 꼭 사 주십시오.
저는 책장사로 먹고 살 만큼 용돈이 궁하진 않습니다.^^
대의를 위해….
그리고 연말연시 즐겁게 보내시고 맞으십시오.
감사합니다.
백발의천사
2018년 12월 26일 at 5:19 오후
당연히 책 삽니다. 여러권 살 겁니다.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야지요.
그런데 2) 의 문제에 있어 기본 교육을 통해서 고칠 수 있다고 보시는데 글쎄요….. 누가 교육을 시키죠? 학교? 학원? 방송? 가정? 교육 시킬 사람들이 저 모양인데요.
얼마전 제가 잠깐 실수로 약간의 차량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앞차 뒷 범퍼에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의 흠집을 낸 정말 경미한 추돌이었습니다. 퇴근시 밀리는 길이었으니 시속 10여 키로미터의 속도로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퇴근 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앞차 운전자 옆 좌석에서 내리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목 뒤를 잡고 내리더군요. 그 후에 보험사 직원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애를 먹였나 봅니다. 운전자 분도 오히려 보험사 직원에게 사과를 할 정도였다나요? 결국 상당한 금액의 합의금을 주고 처리는 되었는데 그 분이 어느 학교 선생님이었답니다. ㅎㅎㅎㅎ 전 시험이 모든 것이 되고 만 오늘날의 교육시스템으로서는 그런 기본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緣木求魚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부정적입니까? 안 그런 선생님이 훨씬 많겠죠? 오늘도 기본적인 소양교육에 대해 고민하시는 선생님이 많겠죠? 그러나 이건 선생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시험이 중요한 사회,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을 더 높게 치는 대다수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겠지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오선생님도 답답하긴 저와 같을 겁니다.
ss8000
2018년 12월 26일 at 6:05 오후
그 말씀 나올 줄 알았습니다.
2)의 댓글이 올라오자 천사님 같은 얘기(비슷한)를 하시는 분이 몇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변을 드렸습니다.
‘전교조’만 없이 하면 된다고,,
전교조는 이념이나 사상만 세뇌 시키는 집단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성교육 따윈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에 쥐어져야 할 성과급(?)
그리고 이념 투쟁 뿐입니다.
그런 놈들 밑에서 무얼 배우겠습니까.
위의 선생이라는년 100% 전교조일 겁니다.
제 자랑이 아니라 20여 년 전 청소차가 제 차를 추돌 했는데
제 차가 반파가 됐습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기에 그냥 가시라고 했습니다.
당시엔 자차 손해라고 반파된 차는 보험사에서 고쳐 주었지만,
죄 없는 제게도 5만 원을 부과 시키는 이상한 제도가 있을 때입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다음 날 고개를 못돌리고
등이 아파오는 겁니다. 결국 일주일을 입원을 하고 퇴원 했습니다.
그냥 가라고 했으니 어쩌겠습니까. 제 자비로 병원비를 충당했습니다.
비겁하게 그 땐 몰랐다고 하기가 싫었답니다.
병원에 입원 한 다음 날 전화를 마누라가 했던 모양입니다.
저와는 달리 치료비를 생각하니 억울했던 모양입니다.
다음날 현금 5만원…..
마누라를 혼내 주었습니다.
돈 5만원 안 받고 말지 이걸 받으려고 전화를 하느냐고….
치료비 당시 78만 원인가? 지금도 기억합니다.
인간 나름입니다.
그 년이 선생이든 아니든 그년이 선생이라서
더하고 선생이기 때문에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닐 겁니다.
횡설수설 했습니다마는
저는 자식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조금 모자란(밑지는 듯) 듯 살라고 합니다.
내 것 제 것이라고 악착 같이 하지 않아도 살아보니 다 채워 지더라…라며.
공부 하나 더하고 글자 하나 더 익힌다고 인성이
태나는 건 아닙니다. 인성이야 말로 인간이 갖고 태어나는 기본적 DNA입니다.
다만 교육으로 약간의 변동은 가능하겠지만,
고유의 인성은 절대불변입니다.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일부러 그리 많이 구입하실 건 없고
다행히 한두 권 정도 해 주신다면…정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인사는 나중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