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대업을 이루려할 때, 그에게는 창칼을 제법 쓰는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몸통은 있었으나 그 몸통을 유효적절하게 움직일 브레인(두뇌)이 없었다. 어찌어찌 수소문하여 찾아낸 인재가 사마휘(司馬徽)라는 은사(隱士)였다. 유비는 그에게 산에서 내려와 도와주기를 간청하자 일언지하에 이르기를,“산야한산지인불감세용(山野閑散之人,不堪世用: 산과 들에서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이 세상에 쓰임을 어찌 감당 하리…)이라며 부드럽게 거절하는 대신, 복룡. 봉추 양인득일가안천하(伏龍.鳳雛,兩人得一,可安天下:복룡(제갈량).봉추(방통)두 사람 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 할 수 있다)”라며 제갈량과 방통을 소개한다.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제갈량은 논외로 하고, 삼국지정사 촉서(蜀書)방통전(龐統傳)에 의하면,“선주(先主:유비)가 형주를 다스리게 되자, 방통은 미관말직의 신분으로 뇌양현의 현령에 임관되었다. 그러나 방통은 정사를 게을리 하여 면직을 당하였다. 이에 오(吳)나라 장수 노숙(魯肅)이 선주에게 글을 보내어‘방사원(龐士元:방통의호)은 겨우 백리 안팎의 작은 고을이나 다스릴 인재가 아닙니다. 보다 큰 벼슬을 내려 중히 쓰셔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제갈량 역시 유비에게 노숙과 같은 뜻을 아뢰었다. 이에 유비가 그를 큰 그릇으로 여기고 중임을 하니 마침내 제갈량과 나란히 우대하였다”라고 기술되어있다.(오래 된 글 중에서 발췌)
감히 바둑을 둔다고 할 수 없지만, 바둑 두는 것을 흉내 낸 게 하필이면 중2 때였던가? 그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개판이었던 학업이 아주 더 망가지고 말았다. 그래도 소위 5대 공립이라는 곳 한 군데 원서를 냈고, 결국 미역국 먹고 더하여 바나나 껍질까지 밟는 수모를 당하고 미끄러지고 말았다. 이런 걸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해야 하나?
7살 많은 형님이 계셨는데 처음 바둑을 그 형님에게 배웠고 얼마 뒤 천원을 포함한 네 귀의 화점 즉, 다섯 점 접바둑을 두기 시작했는데 반년이 안 되어 스승님이셨던 형님과 대등한 위치까지 도달하여 그 후엔 흑. 백 돌잡이 경쟁까지 벌이는 경지(?)까지 올라 때론 내가 백돌을 잡기까지 했으니 이 게 또한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아니겠는가?
암튼 바둑에 처음 발을 들여 놓고 얼마 뒤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천정의 도배지가 온통 바둑판으로 보이고, 특히 형님에게 패한 날은 그 도배지를 바둑판 삼아 복기(復棋)를 하다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형님 방으로 다시 찾아가 주무시는 형님을 깨우는 오기(傲氣)부리며 하얗게 알밤을 깐 적이 하루 이틀이던가? 근데 형님도 무심하시지 그 오기를 한 번도 거절 않고 다 받아주셨으니…. 그래도 남는 건 사필귀정과 청출어람이라는 성어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한 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사필귀정의 결과를 낳고 바둑을 딱 끊었으니 바둑 안 둔지가 반백년이 훨씬 넘었어도 아직 기억하는 바둑 용어 중에‘꽃놀이패’는 기억한다. (좀 엄한 소리를 했다. ㅋㅋㅋㅋ…..)
드디어 한국당을 이끌고 갈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시작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발발된 총선과 대선의 완패로 지리멸렬(支離滅裂)했던 당을 구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을 맞이하듯 구국(救國)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황교안 .김진태 양인은 한국당에 복룡(伏龍)과 봉추(鳳雛)같은 존재다. 복도 많지…이게 바로 한국당 나아가 보수들에게는 양인득일가안천하(伏龍.鳳雛,兩人得一可安天下)가 아니던가? 이야말로 꽃놀이패가 아니던가? 며칠 남지 않은 그 날까지 느긋하게 음미하며 꽃놀이패를 즐기자. 둘 중 누구라도 좋다. 서로 총질은 말자!!!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