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의 제목을 한. 중. 일 비교라고 할까 하다가 위의 제목으로 고쳤다. 사실 비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좀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비교할까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국력(國力)으로 따진다면 특히 군사(국방)으로는 중국에 일본이나 한국이 턱 없이 모자랄 것이고, 경제력 특히 1인당 GDP로 따진다면 중국이 아무리 G2니 뭐니 해도 일본이나 한국엔 족탈불급 일 것이다.
과학은 어떨까?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중국은 70년대에 인공위성(유인우주선이 아닌)을 미.소 다음으로 띄울 만큼 발달했고 핵개발은 60년대에 마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일본이 뒤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2차 대전 종전을 알리는 미조리 함상의 항복과 함께 미일조약에 의거 그런 것들을 제조 할 수 없도록 한 것일 뿐, 일본이 의지만 나타낸다면 당장이라도 제조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좀 웃기는 얘기지만, 60년대에 우리에게 묘한 컴플랙스가 있었다. 일본을 꼭 따라잡겠다는 과도(?)한 경쟁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우리 국력 전반에 걸쳐 일본에게 50년을 뒤졌다고들 공공연히 얘기 했었다.
그 후 과연 절차탁마하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오늘날은 어떨까? 경제력(1인당 GDP)은 아직 많은 간극이 있지만 여타 부분은 많이 따라왔고 일부분은 우리가 앞서기 한 것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을 쪽발이라며 비하하고 우습게 아는 풍조가 만연해 있지만, 우리가 절대 그들을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다. 이 점을 간과하거나 개선하지 않고는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우리는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없다고 단언 할 수 있다.
그들의 질서정연함을 우리는 따를 수 없고, 그들은 국책 앞에 어떤 개인적 불리함이나 부당함에 우리처럼 미쳐 날뛰지 않고, 정치권 역시 국익에 관한 정쟁을 하지 않고, 아무튼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가 정말 노력하고 개선하기 전엔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없기에 이런 것을 감안 한다면 50년 뒤진 국력은 여전히 제 자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간극이 더 벌어졌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네 사회현상이나 시대의 흐름이 좀 먹고 살만 하다고 배부른 개돼지들의 나태함 같은 현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점은 얼마 전 어떤 정부고위인사의 개돼지 타령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님에도 국민 모두가 발끈하며 바른 말한 인사를 질타하고 가래침을 뱉으며 자위하는 꼴은 양국의 국력과 민도의 차이를 더 극명하게 벌려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 뒤졌을까? 아래 비교 할 수 있는 기사 하나를 소개해야겠다. 지난달인가? 캪쳐 해 둔 조산일보기사다.
中 차량 운전자들이 이미 친 보행자를 다시 치는 이유
가게들이 버젓이 영업 중인 중국의 한 상점 거리에서 승합차가 보행자를 치더니, 뒤로 후진해서 다시 한 번 짓밟고 지나간다. 교통사고로 시작한 사건이 ‘살인’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청부 살인’도 아니다.
중국에서 만연한 이 ‘살인’행위를 포착한 CCTV영상들이 온라인에 퍼지자, 슬레이트 등 영미권 매체들은 이런 행위를 “힛앤런(hit-and-run·뺑소니)” 사고를 인용해 “힛투킬(hit-to-kill·‘죽이려고 친다’는 뜻)”이라고 부르며 보도했다.
신고 후 응급실로 후송해야 할 환자를, 사고 차량 운전자가 또다시 치고 가는 이유는 뭘까.
중국에선 교통사고 사망 시, 가해차량 운전자는 우리 돈 3500만~6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살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경우,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계속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렇게 수십 년간 지급한 금액을 합치면, 사망한 경우보다 크게 다친 경우에 배상금액이 더 많아진다.
실제로 교통사고로 장애가 생긴 한 피해자는 23년간 약 4억7000만 원을 받았지만, 노인을 5번 짓밟아 죽인 가해자는 겨우 8200만원의 배상금을 냈다.
각계 전문가와 시민이 ‘사람을 죽인 죄보다 다치게 한 죄를 더 무겁게 처벌하는’ 미비한 피해배상법을 힛투킬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꼽자, 중국과 대만 정부는 나름대로 조치를 취했다. 대만 정부는 민법 제6조를 개정해 피해당사자가 아닌 제 3자(목격자)도 사건을 고발할 수 있게 했고, 중국 입법부는 사법부에 힛투킬 사건에 살인죄를 적용할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CCTV 영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려 한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도 경우에도 재판부는 “고의가 아니었다” “사람인 줄 몰랐다”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계속해서 발생한다.
작년 8월 운전면허도 없는 한 여성이 세 살배기를 차로 치자, 주변에서 사람들이 큰소리로 사고 사실을 알렸지만, 아이를 수차례 더 짓밟아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법원은 “고의가 아니었다.”는 가해자의 주장을 인정해 고작 징역 4년 형을 선고했다.
바로 이거다. 우리도 60년대 아니 70년대 초반까지 이런 기사가 가끔 올라 왔었다. 그 후 보험체계가 확립되며 저런 현상이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우리를 따라 오려면 35-40년 뒤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우리의 민도(民度)를 보다 개선하고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향후 중국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국방도 경제도 과학도 아니다. 민도를 높여야만 중국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마저도 놓친다면 우리는 중국의 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 지정학적 위치가 그렇다.
BY ss8000 ON 07. 23, 2016
中환구시보 “베이징 스모그 비닐에 싸서 서울에 버렸나”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스모그를 중국 탓으로 돌리는 한국 여론이 지나치다고 8일 보도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8/2019030802700.html
중국은 땅덩이만 컸지 대국(大國)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일단 원수를 삼으면 수십 대를 거쳐서라도 꼭 복수를 하고 마는 야만족이다. 특히 땅 욕심은 지구촌 어느 민족보다 많다. 마치 먹고 먹어도 배고픈 야수(野獸) 같다. 그들의 국토가 원래부터 넓기도 했지만 오늘날처럼 저토록 넓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땅 안에 50여 소수민족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많은 소수민족을 핍박하고 정복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주 최근의 일로 1950년을 상기해 보자. 그 해 가을 그들은 티베트를 침공하여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1950년이 어떤 해인가? 625동족상잔이 벌어진 해 소위‘항미원조’라는 이름으로 북괴를 도와 한반도를 침공하지 않았던가. 만약 625때 미군과 UN군의 도움 없이 우리가 전쟁에 패했더라면 고대의 한4군이나 당나라 시절의 안동도호부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 보다 이번 우리를 향한 중국의 비아냥은 아야 소리 한 번 못 내고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게 어벙한 현 정권의 실정(失政)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문명국에게 어떤 충고나 조언을 받는다면 국익에 도움이 되겠으나 야만국의 비아냥을 감내하려니 36년의 압제 보다 더 약으로고 화가 나는 것이다. 인간 하나의 잘못으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워 해 보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