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301호 수창이 아빠의 직업은 정확히 모릅니다. 서초동 어디선가 사업을 한다는 어렴풋한 얘기만 들었지요. 40대 초반인데 사업은 잘되나 봅니다. 국산 자동차 중 제일 좋은 에쿠슨지 하는 걸 몰고 다니는 걸 보니까. 어쨌든 사람이 그렇게 싹싹할 수가 없습니다. 동네 앞 쓰레기 치우기, 빌라 주차장 청소하기 화단 정리하기 가가호호(家家戶戶)점검 해서 건축주에게 하자보수 요구하기 등등….무엇보다도 가끔씩 마주치면‘형님 사거리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쐬주 한 잔 하시죠’라며 곰살맞게 굴 때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돈을 누가 내든지 술 한 잔 하자는 사람이 젤 좋거든요. 아무튼 다정한 저의 이웃입니다.
지난 2월 경 이었습니다. 수창이 아빠와 동네 앞 포장마차에서 한 잔 꺾는데, 돈이 몹시 급하다며 꿔 달라지는 못하지만 모모한 곳에 아파트 딱지가 있으니 몇 장 사달라는 겁니다. 그만 술 기분에‘그러지 뭐!’ 하고 약속을 해 버렸습니다. 다음날 저녁 어제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수창이 아빠가 딱진지 뭔지 하는 서류를 물경7개를 들고 저를 방문했습니다. 사실은 마누라와 전혀 상의도 하지 않았는데….난감하더군요.
사실 저는 부동산 이재(理財)에 밝지 못합니다. 남들 다 한다는 재테크니 부동산 투기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취미 또한 없습니다. 오척 남짓 눕힐 수 있는 집 있으면 그만이지 죽을 때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아무튼 수창이 아빠 방문목적을 눈치 채고, 손사래를 흔들고 눈짓을 아래위로 하는 마누라를 무시하고 은행금리 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 중 3개를 삼남매에게 하나씩 준다는 기분으로 한 장에 천만 원 씩 얹어서 덜컥 사버렸습니다.
그 일로 마누라와는 자주 다투었지요.‘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어찌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느냐?’라는 잔소리와 함께….솔직히 많은 후회가 왔지만 기왕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습니까. 그러구러 시간이 흘러 마누라도 저도 그것에 관한 싸움의 상처는 아물고 또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입니다. 귀국하여 마누라에게 귀국보고 하고 저녁을 먹을 참이었지요. 수창이 아빠와 엄마가 갑자기 왔습니다. 인사치레로 저녁 함께 먹자고 하니까‘형님! 저녁이 급한 게 아닙니다.’라며 다급해 하며 사정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지난 2월에 저에게 판 딱지 좀 다시 팔라며……저는 아~이 사람이 여유가 좀 생겼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얘기하는 게 이상한 쪽으로 흐르더라 이겁니다.
사실 그 딱지를 사 놓고도 주공에 가서 3남매 앞으로 명의 이전만 시켰지 현장이 어딘지 어떤 식으로 아파트가 올라가는지 가보지도 않고 알아보려고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파트 현장이 이번에‘신도시 개발(파주 운정 신도시)’로 발표가 났다는 것을 어제야 듣고 알았습니다. 수창이 아빠 말로는 3개에 대충 1억 이상 올랐다는 전언과 함께….
이런 경우 어쩌면 좋겠습니까? 부부가 함께 찾아와 사정을 하니, 그동안 호형호제하며 지내온 이웃집 하고도 바로 앞집인데… 돈 욕심이 나서 거절할 수도 없고….하여 오늘 2개를 다시 넘겨주기로 하고 수창이네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이야 줄 수 있겠어요? 애초의 가격에 오백씩만 더 붙이고 주기로…물론 보너스로 곰장어에 쐬주 한 잔 더 사는 걸로….
거짓말 같지만 조금도 의혹 없는 사실입니다. 청문회를 열어도 좋고 검. 경의 내사나 국정조사를 해도 좋습니다. 좀 다른 얘깁니다마는 보따리장사의 철학은 그렇습니다. 어떤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사는 입장에는 약간 비싸게 주는 듯한 생각으로 물건을 사야하고, 파는 입장이라면 좀 손해 보면서 아니면 이문을 덜 남긴다는 생각으로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 이 보따리장사부부는 웬만하면 물건을 살 때 가격을 안 깎습니다. 그로 인해 가끔은 손해를 보지만 그게 어디서든 채워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늘”좀 밑지는 듯 살아라! 그러면 훗날 무엇이든 또는 어떻게든 채워지더라!”라고 주문을 지금도합니다. 왈,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라고 하는 겁니다.
2003/05/14 09:29
덧붙임,
제 과거사를 뒤지다가 발견한 썰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수창이 아빠와 그런 거래를 하고 난 후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겁니다. 코딱지만 한 중국의 사업도 정말 잘 되었고, 그 후로 승승장구 했답니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욕심 부리지 않고 은퇴를 했고 이렇게 산골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전원생활을 하며 여유롭게 잘 살아 가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유(餘裕)가 있었기에 호기(豪氣)를 부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라고 다르겠습니까. 문재인과 그 패당은 ‘(촛불)혁명’이라고 설레발을 치지만 혁명은커녕 답보(踏步)도 아닌 후진을 거듭하지 않습니까? 취임 3년 차 이지만 단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간 게 있습니까? 그게 지도자의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탓입니다. 나 이외는 모두 적으로 간주한 겁니다. 적을 죽여야만 내가 산다는 강퍅(剛愎)한 마음이 여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 정권에 대해 병아리 오줌만큼이라도 여유롭게 선(善)이나 덕(德)으로 대한 게 있습니까?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으로 국정을 다스렸지만, 지나간 자리마다‘내로남불’이라는 민폐(民弊)로 오히려 초토화(焦土化)되고 말았습니다. 한반도 유사 이래 가장 큰 이번 동해 쪽 산불은 문재인과 그 패거리에 대한 하늘의 응징(膺懲)이자 징계(懲戒)입니다.
그럼에도 정말 기절초풍할 일은 산천을 다 태워 처먹는 우를 범하고, 저희들끼리 화재진압에 초동(初動)대처를 잘했다며 셀프 훈장이라도 줄 모양 입니다. 하는 일마다 악업(惡業)을 쌓는 적악지가(積惡之家)에 돌아갈 게 무엇이겠습니까? 천벌(天罰)과 망조(亡兆)밖에 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