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릉(馬陵)전투의 교훈.

 

 

얼마 전 감조지계(減竈之計)라는 병법으로‘손빈(孫賓)과 방연(龐涓)’의 투쟁을 그린 마릉(馬陵)전투를 잠시 소개했지만, 오늘은 그 마릉 전투가 주는 교훈을 다른 시각으로 살펴봐야겠다.

 

마릉대전(馬陵大戰)은 전국시대 중기에 일어났던 전투로,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전투로 꼽힌다. 손빈과 방연의 대결로도 유명한 이 전투가 끝난 뒤 중원의 지도가 바뀔 만큼 영향력이 큰 전투였다. 즉 방연이 활동한 위(魏)나라가 침몰하는가 하며 손빈의 제(齊)나라가 부상하고 변방 국가였던 진(秦)나라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종래 전하통일을 이루는 대업의 바탕이 되는 전황(戰況)이기도 했다. 각설하고….

 

전날 소개했지만, 중원이 전란으로 휩싸인 전국시대 때 귀곡(鬼谷)이라는 산골에 은거하여 놀랄만한 재주를 지니고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이가 있었다. 그에 대한 기록이나 생몰이 정확하지 않아 지명에 따라 귀곡자(鬼谷子)또는 귀곡선생이라고 했다. 귀곡선생의 문하에는 출중한 인물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무관(武官)으로는 ‘손빈(孫賓)과 방연(龐涓)’이라는 제자가 있었고 문관(文官)으로는 전국시대 제국(諸國)에게 합종연횡(合從連衡)을 설파하고 다녔던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이 있다.

 

마릉전투를 미시적으로 관찰하면 방연이 절친 손빈에 대한 질투심이 불러온 전쟁이고 손빈의 방연에 대한 원한의 복수극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귀곡선생 문하에서 동문수학 할 때 방연의 학문과 실력은 뛰어났지만, 항상 손빈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언제나 열등감에 휘둘렸다. 방연은 훗날 손빈이 공부를 마치고 하산하여 자신을 찾아오자 가장 절친 인 체 접근하여 출세는커녕 아예 세상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다리병신을 만들어 주저앉히고 구금까지 시켜가며 손빈의 지적소유권을 훔치거나 불법 이용한다.

 

그 후 모든 사실을 안 손빈은 방연으로부터 적극 탈출을 시도하고 구사일생하며 놈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계략을 펴 나간다.

 

마릉전투 초기에 손빈은 나약한 척 쫒기기만 하고 후퇴를 거듭한다. 방연은 손빈의 계책을 전혀 모르고 자신이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믿으며 오만(傲慢)하기까지 했다. 마릉이 가까워 오자 방연은 군사를 독촉하여 행군속도를 두 배로 올려서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손빈의 척후병들에 의해 수시로 보고되었고, 손빈은 이들이 조만간 마릉에 도착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마릉은 계곡이 깊고 숲이 험준하여 매복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손빈은 마릉의 계곡에 있는 나무들을 모두 베어 요소요소를 막았다. 그리고는 계곡 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는 직접 숯으로 글씨를 썼다.

 

글씨 쓰기를 마친 손빈은 계곡 양쪽에 궁사 일만을 배치하고, 이 나무에서 불빛이 비치는 순간, 그곳을 집중 사격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윽고 방연의 추격 군이 마릉 계곡에 당도했을 때는 마침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계절은 10월 하순이라 해가 넘어가자 주위는 칠흑 같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더욱이 달도 뜨지 않았다.

 

방연이 군사들을 지휘하여 어지러이 널려있는 나무들을 치우고 길을 열려다가 머리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커다란 나무에 껍질이 벗겨져 하얗게 된 부분이 보인다. 그것은 희미하게나마 글자의 형태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너무 어두워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방연이 주위의 군사들에게 명하여 불을 밝혀 비춰보도록 했다. 여러 군사들이 일제히 부싯돌을 꺼내 지핀 불로 횃불에 붙여 나무의 하얀 부분을 비추자 그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무에 적힌 글자는“방연사처수하(龐涓死處樹下), 방연 이 나무 아래서 죽는다.”라고 씌어 있다.

 

45년간 軍이 반대했는데… 연평도 등대 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8/2019050800034.html

 

미쳐도 단디 미치지 않고서야…

“문가사처등대지하(文哥死處燈臺之下) 문재인이 디질 곳은 등대 아래다.”

 

방연의 군사들이 횃불을 밝혀 나무를 비추자 손빈의 일만 궁수가 쏘는 화살은 메뚜기 떼처럼 날아왔다. 방연은 그 화살을 맞고 고슴도치가 되었다는 설도 있고, 혹자는 스스로 목을 찌르고 자결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디진 건 학실하다. 문재인이 DG고 싶어 환장하지 않고서야…..이상 마릉(馬陵)전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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