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저서 중 논제자(論諸子)라는 게 있다. 이를테면 춘추전국시대 백가쟁명(百家爭鳴)했던 소위 제자백가(諸子百家)와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온 유명 인사들에 대한 인물평 쯤 될 것이다. 그는 제자백가에 대해 단순히 인물평만 한 것이 아니라 인물평을 통하여 오히려 인재등용의 기초를 삼았던 것이다. 내용 일부에 따르면…
노자는 도교(道敎)를 통한 양생(養生)에는 뛰어났으나 위험과 재난에 대처하지 못했고, 상앙(商鞅)은 법치에 능했으나 백성을 교화하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거열형(車裂刑)에 죽고, 소진과 장의는 합종연회(合從連橫)을 주창할 만큼 언변이 뛰어났으나 쌍방이 동맹을 맺도록 하지는 못했다. 조나라 군사 30만을 하루 저녁에 몰살시킨 진나라의 백기(白起)는 성을 치고 점령하는 것에 능했으나 대중을 너그럽게 포섭하지는 못했고, 오자서(伍子胥)는 적을 막는 계책을 꾸미는 것에 뛰어났지만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지는 못하고 자신이 모신 주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어떤 대통령인가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신뢰를 보였듯 결국 미생은 신용을 지켰으나 변화에 부응할 줄은 몰랐고, 왕가는 명군(明君)을 모시는 데는 뛰어났으나 어리석은 황제를 위해 처신할 줄은 몰랐다. 조조에게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고 한 허소(許劭는 명망 있는 인사들의 우열을 평가하는 것은 능했으나 인재를 양성하지는 못했다.
위의 내용만 보면 제갈량이 마치 옛 사람들의 단점과 실패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나, 문제는 그 다음 구절이다. “여기에 사람들의 좋은 점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즉, 제갈량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단점보다도 오히려 장점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제갈량의 지인지도(知人之道)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이 어느 면에서나 완벽하기를 바라기란 무리인 만큼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사람이라 해도 가능한 한 중용하고자 했다. 가령 위연(魏延)은 훗날 국가에 반기를 들 인물인 줄 알면서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요긴하게 쓰다가 죽고 난 뒤 제거한다든가 그 반대로 마속이나 이엄처럼 만회를 요구할 수 없을 만큼 큰 실책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했던 것이다. 따라서 제갈량의 지인지도(知人之道)는 능력도 무시하지 않았지만 인품을 제대로 갖춘 인물을 선발하는 인재(人材)풀을 가동했던 것이다.
반면 유재시거(唯才是擧)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참패한 이후 모든 전쟁의 승패는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능력 위주의 인사정책을 펼치기로 마음을 먹고 소위 구현령(求賢令)을 내린다. 구현령, 글자 그대로 현명한 인재를 구하라는 명이다. 요즘으로 치면 인재초빙 구인광고라고 할 수 있겠다.
가로되, 예부터 천명을 받아 창업을 하거나 나라를 중흥시킨 군주들은 모두 현인과 군자를 찾아내어 그들과 더불어 천하를 통치했다.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가 여염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진대 어떻게 우연으로 서로 만날 수 있겠는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찾아내어 기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천하는 아직 불안하다. 이런 시기에는 더욱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
춘추시대 노나라 대부 맹공작(孟公綽)은‘조(趙)나 위(魏)의 가노(家老:집사)는 너끈하지만 등(藤)이나 설(薛)의 대부는 감당할 수 없다.’라고 했다. 만약 청렴한 선비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등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제나라 환공이 어찌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천하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 옥과 같은 청결하고 고상함으로 위수 물가에서 낚시질이나 일삼는 인물이 어찌 없겠는가. 또한 형수와 사통하거나 뇌물을 받았다는 오명은 받지 않았지만 재능이 있으면서도 위무지(魏無知)의 추천을 받지 못한 인물이 어찌 없겠는가. 그대들은 나를 도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잘 살펴 추천하라. 오직 재능만이 기준이다. 나는 재능 있는 인물을 기용할 것이다.
조조가 구현령을 내리자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능력이 있으면 누구든지 요직에 등용되었다. 모여든 인재들로 힘을 키운 위나라는 결국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다. 약간의 부정적인 평판이나 도덕적 흠결이 있는 경우라도 재능을 우선시하여 기용하였다. 이 정책은 그의 뛰어난 인용술로 평가되는 한편, 인품이나 자질을 막론하여 윤리성이 결여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다. 유재시용(唯才是用)이라고도 한다.
與 “검증된 적재적소 인사” 野 “소주성 마이웨이 선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1/2019062102294.html
이번 인사를 통틀어 평하기를‘회전문 인사’라 하기도 한다. 솔직히 내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한다면 어떤 정부의 것이라도 인사문제에 대한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주둥이 내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위 인사청문회라는 걸 만든 쪽은 지금의 야당인 한국당 계열 아니었나? 문제는 인사청문회를 열어 덕(?)을 보거나 원했던 대로 된 적은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는 마치‘국회선진화 법’이라는 걸 만들어 제 발등 제가 찍는 꼬락서니가 됐고 이 법이 최종적으로 박근혜를 탄핵하는데 얼마간의 영향을 준 게 아니었던가?
인사정책에 있어 지인지도(知人之道)가 옳은 것인지 아니면 유재시거(唯才是擧)가 훨씬 좋은 제도인지는 사용자 즉 임면권(任免權)자 마음 아닌가? 솔직하게 어떤 지도자든 개처럼 제 말 잘 듣고 입안의 혀처럼 놀아주는 놈을 채용하지, 황제노조처럼 받아 처먹을 거 다 받아 처먹으면서도 주인에게 반기드는 놈 등용할 찌질이가 있을까?
중요한 건 소위 인사청문회를 열어 온갖 비리를 다 끄집어내고 탈탈 털어 부당성을 밝혀내도 뉘 집 개가 짖느냐며 그 자리에 앉히고 마는 빨갱이들의 수법을, 주둥이 내밀고 한탄해 본들 감당할 수 없다면 차라리 조용히 앞길을 열어주고 지켜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인간의 천성(天性)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비리나 비위를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직을 이용한 더 큰 비리나 비위를 저지르게 되어 있다. 그런 게 오늘날 언필칭(言必稱) 아가리만 열었다 하면 적폐가 아니던가?
따라서 야당(한국당)에서 입을 내밀고 반대할 게 아니라, 임면권자나 등용된 놈들의 비리나 비위를 치부장(置簿帳)이나 치부책(恥部冊)을 따로 만들어 요목조목 적어 두었다가 모조리 빵으로 보내거나 적폐청산꺼리로 만들자.
‘내로남불’ 내로남불 하지만 이전의 빨갱이 정권의 똘 짓을 지켜보기만 했을 뿐 제대로 비판이나 했던가? 돌아보면 자신들(야당)이 무슨 대인이나 되는 것처럼 송양지인(松壤之仁)의 어리석음을 보이다 나라를 빼앗겼고 적폐청산이라는 단어를 개발한 것도 박근혜 정권이었지만 단 한 번이라도 적폐청산을 시도해 본 적은 있었던가?
문재인 정권의 인사정책에 입만 비죽일 게 아니라 빨리 망하기를 기원하고 방법을 찾는 게 더 우선일 것 같다. 입 비죽거린다고 눈 하나 깜짝할 삽살이가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