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가장 큰 업적(?)이라면 사방 흩어져 있던 20여 분 조상님들의 유택(幽宅)을 한 자리에 모신 것이다. 그 동안은 조상님들께서 뿔뿔이 흩어져 사시기도 어떤 조상님은 사후에도 지방을 달리하고 계신 분도 계셨기에 작년에 대소가를 소집하여 모든 경비는 내가 부담하는 것으로 하고 단독주택에 기거하시던 고조부님까지의 조상님들을 아파트로 이주하시게 했다. 그런 큰일을 재작년 가을에 했고 기왕 하는 김에 아예 나와 마누라 합장 가묘까지 만들어 두었다.
그해였던지 작년이었던지 좀 헷갈리지만, 외출을 하고 귀가하는 중 거의 집 앞 대문 쯤 왔을 때 무녀리였는지 비실거리는 산비둘기 새끼 한 마리 길 한가운데 앉아있다. 갈아 버릴 수도 없고… 크락션을 누르고 했지만 여전히 꼼짝을 않다가 오히려 서 있는 자동차 밑으로 기어든다. 그러는 사이 내 차 뒤로 두 대의 외지인 차가 멈춰서고…
어쩔 수 없이 내려 뒤차에 자초지종 얘기하고 앞바퀴 밑으로 기어들어 간 그 놈을 끄집어내어 날려보았지만 그 자리에 퍼덕거리며 날아갈 생각을 않는다. 그냥 두고 가자니 들(길)고양이가 수 마리 떼 지어 나돌아 다니는 터라 생각 끝에 집으로 데려와 평상 위에 신문지를 깔고 대형 플라스틱 소쿠리를 엎어서 집을 만들고 저녁마다 마시는 와인 안주(나는 와인 안주를 견과류로 한다. 호두. 아몬드. 호박씨. 잣. 피칸 등등…)를 놈의 먹이를 제공하고 일주일 여를 보내고 어느 날 두 손으로 공중을 향해 날렸더니 힘차게 활개 짓을 하고 날아갔던 것이다.
이순(耳順), 공자가라사대,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했던가? 某지방대학 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이제 강단에서 물러난 6촌 동생이 있다. 이 친구 젊은 시절 조상님들이 뿔뿔이 흩어져 계실 당시 저네 부친(내겐 당숙)의 산소가 바로 내 조부님 옆에 있어도 성묘는커녕 벌초하는 걸 못 봤다. 때론 내 몫(?)만하기 그러해서 내가 벌초를 할 때도 있었지만 얄밉기도 하고 웬만하면 그냥 방치를 했고 오죽 답답했으면 출가외인이었던(이젠 고인이 된 나와 동갑내기)저희 누나가 사람을 불러 벌초를 하곤 했다는데, 이 친구가 무슨 맘을 먹었는지 60이 넘어서더니 조상님들을 아파트로 모신 후 아파트 돌보기를 나 보다 더 적극적이다. 언제는 혼자 다녀왔고 어디 어디는 좀 보수를 해야겠고…어떨 땐 그냥 넘어갔으면 하는데 일일이 보고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소소한 경비도 내 지갑에서 나가지만…조상님들 돌보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벌써 한 달여 전이다. 또 이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형님! 장마가 오기 전 산소에 한 번 가시지요?”라며 자꾸 동행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아파트 조성 시 부실공사 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면 조상님들 편히 주무실 텐데….그렇지만 손아랫사람이 자꾸 부추기고 재촉하는데 더 버틸 수가 없다. 그 날짜가 어제였다.
어제 이곳 산간은 새벽부터 소나기가 거세게 몰아친다. 솔직히 약속은 했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엔 길을 나서기가 정말 싫었다. 오호라~! 잘됐다. 새벽 네 시다.“吳교수(그 친구의 호칭이다)비가 억수같이 오는데 그곳(경북상주)은 괜찮을까? 우리 다음으로 미루는 게 어떨까?”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 친구“아! 형님! 그렇잖아도 저는 우의도 다 준비해 두었습니다. 7시까지 꼭 도착하겠습니다.”진짜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하게 결론을 내린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저 보단 낫살(6살)이나 먹은 놈이 괜히 속만 보인 것 같아 창피하기까지 했다.
출발시점 쯤 되자 다행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방울방울 떨어진다. 삽. 괭이. 낫 등등 필요한 장비를 싣고 집을 나섰는데 집 앞을 벗어나 1k쯤 갔을까? 비둘기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 앉아서 날아갈 생각을 않는다. 일단 서행을 하며 다가가자 그 때서야 다시 날아오른다. 그런데 다시 500여m쯤 갔을까? 아까 그 비둘기가 또 길 가운데 곱게 앉아있다. 역시 차를 서행하며 가까이 가자 또 다시 날아간다. 그때까진 무심했다.
다시 몇 백m쯤 갔을까? 여전히 비둘기는 길 한가운데 앉아 나의 갈 길을 방해한다. 퍼뜩 불길한 예감이 든다. 첨부터 내키지 않는 날 성묘를 간다는 것, 우중에 가고 싶지 않다 것, 비둘기 한 마리가 자꾸 뭔가를 예시한다는 느낌.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나는 종교도 없지만 미신 또한 믿지 않음에도 불길한 예감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뭘까? 왜 저 비둘기는 나를 방해 하는 걸까? 그 생각까지 미치자 년 전 보살펴 준 비둘기 생각이 나며“아~! 저 놈이 그 놈일 수도 있겠다. 비록 미물(微物)이고 금수(禽獸)이지만 그 때의 은혜를 갚으려는 것 아닐까?”그렇다면 무엇을 예시하는 것일까? 내가 워낙 스피드를 즐기니 빗길에 운전조심 하라는 경고(삽살개처럼)일까? 스피드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 불거나 즐겨왔던 것인데….이상하다. 하필 오늘 같은 날?
도대체 뭘까? 운전을 하면서도 그 생각에 집중이 안 된다. 조금만 더 가면 38국도를 들어서고 그 전에…하는 생각으로 길 가에 차를 세우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차! 그래 그거구나.
어쨌든 조상님들 아파트를 돌아보고 합동으로 간단한 제례라도 드리려면 제수를 좀 구입해야하는데 아파트 인근에 있는 마트에서 늘 제수를 구입했던 터라….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본 즉 지갑을(나는 지갑을 한 장소에 두는 버릇이 있다. 외출 시 그곳에서 지갑을 꺼내곤 한다. 그리고 귀가하면 다시 그곳에…)두고 나온 것이다. 제수도 제수지만 원행(遠行)을 하면서 지갑을 안 들고 나왔던 것이다. 집에서 그 거리까진 약3k? 급히 차를 돌려 지갑을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물론 빗길에 안전운전은 덤으로…무사히 다녀온 어제였다.
어제의 그 비둘기가 년 전의 그 비둘기일리 없다. 또 비둘기의 습성 아니 새들의 습성이 그런 자세로 도로 가운데 앉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똑 같은 자세로 한두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할 때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고 옛날의 그 비둘기라고 생각했으니 길을 나서며 낭패(狼狽)를 면한 것이다.
무릇 말 못하는 새 한 마리의 행동을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긍정적인 효험을 한 것이다. 참으로 년 전의 그 비둘기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한 마리의 금수도 보은(報恩)할 줄을 아는데, 하물며 인간으로 태어나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드는 건 아닌지?
오늘날 한일관계를 보면, 길 바닥에 주저앉은 비둘기가 아니라 창공에 날아가는 비둘기를 잡아 족치려는 행태를 보이는 인간들이 있어 해 보는 소리다. 설령 그것이 은혜는 아닐지라도 애써 만들어 부정적인 작태를 벌일 필요는 없다. 길 바닥에 주저앉은 비둘기 주행하는데 방해 된다고 갈아버리면 그 또한 죄업을 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