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산골일기’

연고라곤 1도 없는 이곳은 눈발이 휘날리던(2010년)어느 해 초겨울 우연히 지나다 부동산에 들렸고 첫 눈에‘그래! 여기다.’라고 결정을 해 버린 곳이다. 다음해 늦봄이 되었다. 파리가 한두 마리 날아다니는가? 했는데…하루 이틀 지나자 거짓말 안 보태고 방안이고 밖이고 새카맣게 달려든다. 약을 치고 끈끈이를 매달고…파리 퇴치에 좋다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축사가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고 또 부동산 소개소에서는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육두문자가 튀어 나오고…때늦은 후회를 크게 하고 탈출(손해를 보더라도…)시도를 해 보지만 처음부터 덩어리가 너무 컸던 탓에 용이하지 않았다. 덕을 쌓은 적은 없지만 악행을 저지른 적도 없는 것 같다.(없었다…라고 단정을 짓지 못하는 것은 나도 모르는 악행이 있을 수 있으니…)그래서인지 하늘이 내게 기회를 주신다. 마침 파리창궐의 원흉인 축사를 판다는 것이다. 다행히 당시 축사를 살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원래 거래라는 게 밀고 당기는 것이지만 축사주인 마음 변할 게 두려워 달라는 대로 다 줬다. 그리고 축사를 없애고, 폐가를 없애고…다시 그곳에 25t 대형덤프터럭 150여 대의 흙을 부어 만든 것이 바로 오늘의 농토인 것이다.(하략)

BY ss8000 ON 6. 29, 2015 (산골일기: 6월을 보내며…에서)

 

요즘 나는 산골의 전원생활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 원인이 두 이웃 때문이다.

 

A와 B 그리고 나는 마을에서 인정하는, 시쳇말로‘아삼육’이라고 불릴 만큼 끈끈한 사이였다. 이곳에 자리 잡기는 A가 가장 먼저이고 그 다음이 나 마지막 B가 뒤 늦게 이주해 왔다. B가 이주해 올 당시만 하더라도 나와 B는 오가다 만나면 목례나 할 정도였지 친밀감이 별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A로부터 저녁초대를 받았는데 가보니 A와B는 수십 년 사귄 것처럼 서로가 말을 탕탕 놓으며 친숙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술이 두~어 순배 돌고 취기가 돌 즈음 노래방 기기가 작동되고…아무튼 데면데면했던 나와 B사이도 10년 지기 정도 쯤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호형호제(呼兄呼弟)로 호칭이 바뀌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노래방 기기가 작동을 멈추고 마지막 잔을 들기 전 A는 B를 앉혀 놓고 조용히 내게 청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는 얘기가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어떤 청인지 알만한….사실 B의 집 뒤로 나의 자투리 땅 30여 평이 붙어있었다.(축사를 뭉개고 토지로 만든 땅) 더 하여 그 땅은 내게는 용도가 크질 않았지만 B입장에는 그 땅이 금싸라기 땅이나 다름없었다. 즉 정원을 더 넓히거나 아니면 텃밭으로도 활용가치가 있고 아무튼 그 땅이 있음으로 집의 가치나 시세가 뛰어오를 만큼. 그런데 나와는 데면데면했던 B는 내게 직접 얘기를 못하고 A를 통하여 그 땅을 팔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산골 땅 30여 평 얼마나 된다고….시세 보다 싼 값으로 B에게 넘겨주었다.

 

내 말은,.. A의 중계로 B와 나는 친숙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결국 AB 그리고 나 세 집안은 유. 관. 장 삼 형제처럼 아삼육이 되어 친숙하게 지냈는데, 3~4년 전 아무것도 아닌 일로 A와B가 감정싸움을 하게 된 후 두 집안은 앙앙불락(怏怏不樂) 원수처럼 지금까지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10여 차례 두 집안을 불러 화해를 권하기도 때로는 종용(慫慂)하고….술값이며 밥값이며 적잖이 들어갔음에도 먹고 마실 땐 기분을 푸는 척하고 돌아서면 또 소 닭 보듯… 아무려면 이래도 저래도 다 좋은데 이따금 A와 B는 각기 나와 마누라를 초청을 하는 것이다. 그런 즉 A의 집엘 갈 땐 빤히 내려다보는 B가 의식되고 반대로 B네 집에 가려면 역시 가시권의 A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근간엔 식사를 했다든가 아니면 반주로 취해서 지금 갈 수 없다며 두 집안의 초대나 초청을 거절하고 요즘은 거의 두 집안과는 두문불출하다시피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나의 산골 전원생활이 흥미를 잃을 수밖에. 더 이상은 이럴 수 없다는 판단에 며칠 전 손해를 많이 보더라도 이곳에서 철수하려고 부동산에 지금의 터전과 좀 떨어진 축사를 내 놓았다. 이글을 써가며 날짜를 살펴보니 거의 매일 써 내려가던‘산골일기’가 2017년 7일 이후 딱 끊어졌다.

 

덧붙임,

마지막 산골일기가 안 됐으면 좋겠지만 글쎄다. 산골일기라며 끄적여 놓은 것이 수백 꼭지는 될 것이다. 언젠가는 이것들을 책자로 만들어 뒷날 손자손녀들이 전원생활을 한다면 지침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고…솔직히 얘기한다면 산골일기를 더 쓰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두 집안의 불화가 나까지 미치게 된 건 정말 화가 난다. 이런 게 절 싫은 중이 떠나는 경우일 것이다.

 

마누라와는 다짐을 했다. 중복이나 말복 쯤 삽살개를 잡던지(사실 나는 개고기를 못 먹는다) 아니면 바비큐를 하던지 두 집안을 불러 모아 마지막 자리를 만들 참이다. 그리하여 산골일기를 계속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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