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과 이적 그리고 국익.
지난 5월 중순에 있었던 조선일보 기사 한 자락을 소개 합니다.
<<<빵집에 들어가려던 할머니에게 문을 열어주다 숨지게 한 30대가 입건됐다. 17일 CBS에 따르면, 서귀포 경찰서는 과실치사 혐의로 A(33)씨를 입건했다.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관광온 A씨는 지난달 16일 오후 1시 50분쯤 서귀포시 서귀동에 있는 한 빵집에 들렀다. 가게 안에 들어가려던 A씨는 출입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B(76)를 발견했다. A씨가 할머니를 도와주기 위해 출입문을 열자, 지팡이와 문 손잡이를 잡고 있던 할머니는 중심을 잃었다. 바닥에 넘어지며 머리를 심하게 다친 B씨는 사고 직후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B씨는 제주 시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일주일 뒤 뇌 중증 손상으로 숨졌다.>>>
며칠 전 조선일보에 난 또 다른 기사 한 자락입니다.
조 수석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左)냐 우(右)냐’가 아닌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이다”라며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 전쟁이 발발했다”고 적었다. 이어 조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전쟁의 ‘최고 통수권자’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며 “전쟁 속에서도 협상은 진행되기 마련이고 가능하면 빠른 시간 종전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전쟁이다”고 했다.
참으로 삽살개 보다 더 미친놈입니다. 나는 도대체 이런 아류의 인간들이 법학자라고 하고 이 나라 최고명문대 교수 질을 하며 어찌 운을 타고나 권력의 정점에서 제 마음대로 아가리를 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삽살개의 오지랖이나 실정(失政)은 결국 이런 형편무인지경의 대갈빡에서 나온 무지스런 생각과 조언에 지배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A4용지 국정과 외교이며 결국 사달이 난 오늘날의 한일관계입니다.
저 멍청한 엉터리 법학자 조국이 뇌까린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左)냐 우(右)냐’라는 생각과 표현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절대 잊어선 안 될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물론 이 점을 간과한 것은 소위 보수라고 하는 우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좌와 우가 왜 생겼는지를 잊어먹은 것입니다. 이 땅은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좌와 우는 땅덩이가 분단된 이후 파생된 사상과 이념입니다. 지구촌 분단국이 아닌 어느 나라가 좌우로 대립된 국가가 있습니까? 혹시라도 어떤 국가 중 이념적으로 대립각을 세운다면 그것은 좌우가 아니라 진. 보인 것입니다.
둘째, 오늘날까지 이 땅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좌우논쟁을 벌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 없는 평화가 너무 길게 유지된 탓입니다. 솔직히 625이후 또 다른 전쟁이 터져 어느 한 쪽이 승리를 했던 그 속으로 쓸려가고 병합(통일)이 되었더라면 이런 식의 좌우 대립은 없었을 것입니다. 베트남이 그렇잖아요? 어디 베트남뿐이겠습니까? 그렇게 남은 남, 북은 북 그대로 살면 될 것을 굳이 평화니 통일이니 어쭙잖은 개수작을 부리는 가운데 더 하여 설상가상으로 일본과의 외교 분쟁이 발발한 겁니다. 평화가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이웃 나라 일본을 집적거린 것이기도 하고요. 엉뚱한 얘기가 길었습니다.
조국이라는 엉터리 법학자의 아가리 놀림을 조금 더 분석해 보겠습니다. 여태 설명을 했습니다마는 이 땅에는 분명 좌와 우가 상존하며 승부도 안 나는 자웅(雌雄)을 겨루고 있습니다. 누군가 하나는 죽어 없어져야 끝나는 싸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좌우가 없다? 좌우의 생각이 꼭 같아야 하고 애국을 강조합니다마는, 저 자가 정말 무지하거나 무식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남북이 분단국가가 되며 좌우의 이념과 사상도 생겨났다고 미리 말씀 드렸습니다. 결국 좌와 우는 이념과 사상을 달리하는 만큼 각각의 애국심(愛國心) 또는 애국론(愛國論)이 당연히 다른 것입니다. 일반적인 보수는 일본과 선린관계를 유지 하자는 것이고, 소위 좌경 빨갱이는 북쪽을 신봉하고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게 애국으로 알고 있는 만큼 애국하는 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일본을 갈구고 자극시켜 온 것은 좌(左) 파의 이념이기도 하지만 신념이고 좌파적 애국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파적 생각은 그 반대로 일본과는 우방으로 선린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파적 애국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좌우로 갈라진 분단국가의 애환(哀歡)인 것입니다.
애국이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좌파적 애국이든 우파적 애국이든 애국심이 디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이념과 사상의 다툼인 것이죠. 그런데 좌파적 애국에 동조 않는다고 저희가 권력을 쥐고 있다고 우파적 애국심을 이적(利敵)행위로 간주(看做)한다면 뒷날 밝은 세상이 온 후 저 아가리에 무엇을 퍼 넣어야 할까요?
정말 무지막지한 아가리입니다.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 전쟁이 발발했답니다. 일본이 언제 전쟁하자고 했습니까? 그들은 지난 날 조상들의 죄업으로 직접지은 죄 없이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즉 제발 과거를 묻지 말고 잊어달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지도자들은 일본의 아픈 곳을 극악(極惡)스럽게 문지르고 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정치적 자산을 삼아 왔던 것입니다. 그 심도(深度)가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더 깊어졌기에 일본은 인내심의 한계를 표출한 것이 이번 사태인 것입니다.
제가 썰의 맨 꼭대기에 빵집에서 발생된 기사를 왜 했을까요? 인간이 살아가다 보면 정말 본의 아니게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수가 선(善)한 일을 하려다 발생하면 정말 억울한 경우입니다. 그 젊은이 힘든 할머니 도우려고 즉 선행(善行)을 하려다 뜻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 법은 용서가 안 되는 것입니다.
문재인과 조국 그리고 좌파들은 나름의 애국을 하려다 저지른 사태입니다. 그 또한 선행적 애국인 것이지요. 위의 젊은이가 저지른 실수는 충분히 납득이 가고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에는 선처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용서는 없습니다. 문재인 조국의 좌파적 선행 그리고 애국 충분히 이해도 되고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리나 용서가 안 됩니다.
원균이 등 떠밀려 전장으로 갔건 자의로 참전을 했건 그것은 나라를 위한 애국적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졌습니다. 모든 전쟁에서 승리는 영웅이지만 패전은 곧 이적(利敵)이 아니라 역적(逆賊)인 것입니다.
전쟁에 패한 역적이 남기고 간 배 12척을 근본으로 삼고 이순신 장군께서 애국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문재인이 어느 장소인가에서 이 사실을 개구(開口)하며 화제로 삼았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남은 것은 그런 심정으로 승리를 하자는 얘기겠지요?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문재인과 조국은 장렬(壯烈)히 DG는 것으로 오늘의 얘기를 끝내겠습니다.
딱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좌든 우든 이 땅에 사는 인간들은 애국해야합니다. 그러나 애국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애국이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 즉 국익(國益)이 될까 아닐까에 대해 대가리 좀 굴려가며 해야 합니다. 국익이 아닌 애국이야말로 이적(利敵)행위고 나아가 역적(逆賊)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