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親日)을 하자!!

 

 

❍나 더러 누가 세상에서 제일 싫고 미운 것 다섯 가지를 고르고 순선대로 나열하라면, 뱀. 쥐(둘 중 순서가 바뀌어도 무관)일본. 북괴. 중국이라고 표현 하겠다. 뱀. 쥐를 빼면 우연히도 나라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일본이 빠지고 남쪽의 자생적 빨갱이들 그 중에서 소위 386세대의 전향(轉向)하지 않은 새빨간 빨갱이들을 일본 대신에 배치하고 싶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당대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황제의 나라 청나라 요지를 여행하면서 당시로선 선진문물과 생활 관습 등 전반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며 배워야 할 것과 조선의 버려야할 습관 등을 비판하며 그야말로 진보적 시각으로 열하일기를 썼던 것이다.

 

❍나는 가끔 주입식 교육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모든 일이나 사물(事物)을 관조(觀照)할 때 객관(客觀)과 주관(主觀)이 있다면, 객관적 판단은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일맥상통한다면 주관적 판단은 왠지 일방적이고 오만과 편견으로 비추어 지는 것이다. 내 말은 주입식 교육이야말로 주관적 판단만을 강조함으로 상대에 대한 양보나 배려가 없는 폐단을 초래한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40대 초반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대충30년 좌우, 그 때만해도 여행자유화가 아니었기에 해외를 나가려면 신원조회를 거쳐 어렵게 여권을 발급 받아도 소위 소양(素養)교육이라는 걸 받아야 했었다. 어쨌든 그 어려운(?) 관문을 뚫고 첫 여행지(유람이 아닌 보따리장사 KOTRA회원사 자격)가 엉뚱하게도 지구 반대편 남미 하고도 칠레였다. 나는 그곳에서 북한 사람을 처음 만났으며 일부러 북한관을 찾아 그림(족자 형)을 사왔고 지금도 그 그림은 집안의 벽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주입식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나로선 그 때까지 북한사람은 뿔난 도깨비는 아니더라도 괜히 차갑고 까칠하고 상종 못할 사람들로만 알았던 것이다.

 

❍나는 일본을 세 번 다녀왔다. 오사카. 도쿄 그리고 후쿠오카다. 물론 유람이 아닌 보따리장사 차 갔었던 것이다. 머나먼 칠레를 첫 여행지로 삼았다면 가장 가까운 일본은 많이 늦은 감이 있다. 이 역시 주입식 교육 탓이다. 일본이 싫었고 왠지 가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은 그런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래서 망설였던 것이다. 당시 일본인 회사와 거래를 하면서도 그런 선입견을 버릴 수 없던 차 용기(?)를 내어 갔었던 게 내 친일(親日)의 자산이고 명분이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단어의 의미를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자. 이웃나라와 친(親)하자는 게 나쁜가? 일본을 숭배(崇拜)하자는 숭일(崇日)이나 무조건 따르자는 종일(從日)을 하자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친일을 하자면‘토착왜구’라는 굴레를 씌우는 게 정상적인 사고(思考)를 가진 나라고 국민인가?

 

❍일본 현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이미 밝혔지만 뱀. 쥐 다음으로 그 나라 그들을 싫어했었다. 일본은 무조건 배척하고 미워해야하는 나라로 국민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저 배운 데로만 알고 있는 데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암 선생이 청나라를 가보지 않았다면 주옥같은‘열하일기’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암 선생은 현지에 당도하여 보고 살핀 즉 오랑캐만의 나라가 아닌 그들의 문물과 문명을 이 땅에 소개했던 것이다.

 

❍일본에 처음 갔던 첫날 밤 거나하게 취한 눈으로 그들의 새벽길을 고층의 호텔방에서 내려다보며 무서울(?)정도로 지켜지는 질서에서 나의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었다. 아! 이런 건 배워도 좋을 정말 괜찮은 나라고 민도(民度)였다. 그리고 얼마를 지난 뒤 일본과는 정말 친해야겠다고(親日)생각한 운명적 사건이 국내 하고도 부산에서 벌어졌다.

 

그 때의 소회(所懷)를 표현한 게 있어 일부 옮겨 본다.

 

부산 사격장 화재로 목숨을 잃은 일본인 유족들의 모습이 간간이 tv화면에 비추인다. 만약 그와 똑같은 사고가 일본에서 일어나 우리 사람이 희생되었다면 어땠을까? 유족들이 주재국의 외교관들이 과연 그토록 절제되고 침착한 대응을 할 수 있었을까? 통곡은 고사하고 일왕이나 총리더러 사죄하라며 악을 쓰지 않았을까? 방성통곡을 하며 살려 내라고 난장을 부리지는 않았을까? 죽음을 미끼로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겠다며 시신운구를 거부하지는 않았을까? 이 모든 것들을 의문부호로 끝맺음 했지만 100% 그랬을 것이고 그렇게 행동들 한다.

 

이 나라의 어리석은 안전 불감증에 영문도 모른 채 졸지에 희생된 일본인 그들 유족들은 대성통곡 대신 슬픔을 냉정할 정도로 인내하는 모습에 나는 진심으로“일본이 존경스럽다.”그런 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 나라의 총리가 달려가 조의를 표하며 문상을 했다고 “총리가 무릎을 꿇었다”라며 개소리 치는 미/친/놈들이 있다. 그것이(총리의 사과)“그토록 중대한 국가차원의 문제냐?”고 분통을 터트리는 인간 말자들이 있음에 나는 분노 하는 것이다. 우리네가 다른 나라에 가서 그 어떤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 과연 일본인 그들처럼 그토록 침착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이 없다. 그래서 한결“일본이 존경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역지사지라 하지 않던가. 모든 걸 상대 입장에 서서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일본인 그들은 우리 스스로를 개조하기 전엔 따를 수 없는 참 1등 국민이라 하겠다. 그래서 또 “일본이 존경스럽다.” BY ss8000 ON 11. 25, 2009(일본이 존경스럽다 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절약을 강조하는 편이다. 용돈도 그냥 주지 않았다. 어떤 일을 또는 심부름의 대가로 주어졌었다. 그러나 단 하나 아끼지 않는 것은 해외여행은 자주가라고 한다. 그리고 유람만 즐기지 말고 그 나라들의 문물과 풍습을 눈여겨보라고 강조한다. 여행지에서 그렇게 하는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 보다는 훨씬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즉 우물 안 개구리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을 기보지도 않고 일본 사람을 직접 접해 보지 않은 우물 안 올챙이 새끼들의 반일(反日)이 더 큰 문제다.

 

❍정말 좋은 기사 불편부당한 시각으로 한일관계를 바라본 정론직필 하나를 소개 한다.

 

[터치! 코리아] ‘新친일 호구’ 탈출법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4/2019081403276.html

 

내가 이 기사를 권독(勸讀)하는 것은, 이 기사를 쓴 조선일보 김수혜 차장을 띄우자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기사를 읽는 동안 그녀가 일본에 특파원으로 상주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바른 시각의 정론직필이 불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기사를 처음 본 게 아니다. 일본에 특파원으로 다녀온 모든 기자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외치는 점이 똑 같다. 그들은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점을 기사화 했을 뿐이다.

 

방구석에 처박혀 마누라 년들 엉덩이 두드릴 궁리만 하지 말고 세상 바깥으로 나가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일본 한 번 안 갔다 온 우물 안 개구리도 못 돼는 올챙이 새끼들아! 친일(親日)을 왜 해야 하는지 눙까리 크게 뜨고 보자. 그리고 친일(親日)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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